‘더 작고 소박한 행복을 꿈꿉니다’

와인 전문가 이상황 요리 전문가 배혜정 부부

와인을 너무 좋아해 각자의 전공을 잊고 와인에 푹 빠져 산 부부가 있다. 와인 칼럼니스트이자 와인 전문가로 유명한 이상황 씨와 남편 못지않게 와인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고 와인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음식들을 척척 만들어 내는 요리 전문가 배혜정 씨 부부다.이상황(오른쪽), 배혜정 부부 프랑스 국립 그레노블 건축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대한민국 공인건축사로 한양대 건축공학부 겸임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던 건축가 출신 와인 전문가 이상황 씨와 음식 사이트에서 프랑스 요리 칼럼을 기고하고 각종 잡지 및 레스토랑에 프랑스 요리 자문을 해 준 요리 연구가이자 와인 사이트 와인밸리 이사 출신의 배혜정 부부는 현재 와인 레스토랑 ‘베레종’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베레종’에서는 매주 토요일, 와인과 프랑스 요리가 함께하는 쿠킹 클래스도 진행된다.와인 전문가 이상황 씨와 요리 전문가 배혜정 씨는 현재 대치동에서 ‘베레종’이라는 와인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베레종’은 와인을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꼭 한번 가 봐야 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베레종’을 찾는 이들은 그 맛보다 ‘베레종’이 자아내는 편안한 분위기에 먼저 반한다. 바(bar)나 레스토랑이 아닌 마치 친한 지인의 집에 찾아온 것 같은 그 안락함에 반한 이들이 많다. 사실 이곳은 이상황 배혜정 이들 부부에게도 집이나 마찬가지다.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니까요. 집에는 거의 잠만 자러 간다고 할까요?(웃음)”(배혜정)‘베레종’은 단순히 와인과 음식을 팔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와인 시음회와 와인 메이커스 디너(Wine Maker’s Dinner: 와인 생산자가 직접 참석해 제품 홍보를 겸하는 저녁식사 자리), 이상황 씨의 와인 강의가 열리는가 하면 1주일에 한 번은 배혜정 씨의 쿠킹 클래스도 펼쳐진다. 그 때문에 ‘베레종’은 이들 부부에게 단순한 사업장 그 이상의 의미를 담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또한 건축가였던 이상황 씨가 직접 인테리어를 맡은 곳이기도 하다. “원래는 건축과 와인을 병행했었는데 5년 전 베레종의 문을 열면서부터 와인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죠.”(이상황)그는 한때 건축가 겸 와인 전문가로 많은 화제를 모았었다.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건축사 자격증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면서 건축가로서도 유명했지만 건축 이상으로 와인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결국 건축 대신 와인을 인생의 행로로 선택했다. 아내인 배혜정 씨 역시 서양 미술사를 공부했지만 프렌치 요리에 능할 뿐만 아니라 와인 사이트 ‘와인밸리’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하며 웬만한 와인 전문가들보다 더 전문적인 와인 지식을 갖고 있을 정도여서 두 사람은 ‘와인 전문가 부부’로 통했다. 하지만 그런 아내조차 남편이 대학 강의를 그만두고 건축 일까지 접은 채 와인 레스토랑을 차리겠다고 했을 때 선뜻 100% 동의할 수 없었다고 한다.“와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과 와인과 관련된 사업을 한다는 건 전혀 다른 일이잖아요. 잘될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고요.”(배혜정)국내 최고의 와인 전문가 중 한 명인 이상황 씨가 본격적으로 와인에 심취하게 된 것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대기업에 다니던 시절이었다.“1984년 께였던가? 파리에 출장 갔다가 우연히 프랑스 와인을 처음 마시게 됐는데 그때 비로소 와인의 맛에 눈을 떴죠. 사실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레드와인이니 할 것도 없었거든요. 와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과실 제조주들이 전부였죠. 그 뒤 5년 동안 해외 주재를 하면서 와인을 접할 기회도 많아졌고 휴가 때면 일부러 와인을 맛보기 위해 프랑스를 찾곤 했어요.”(이상황)1989년,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했다. 아내인 배혜정 씨는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결혼한 직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 갔다. “아내에게는 처음 만날 때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갈 것이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당시 일정이 맞지 않아 좀 급박하게 떠난 경향이 있어요. 그 때문에 아내는 다니던 대학원 공부도 채 마치지 못한 채 프랑스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 점이 두고두고 미안하더군요.”(이상황)프랑스 국립 그레노블 건축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와인을 접할 기회가 더욱 더 많아졌다. 건축 공부에 매진했지만 와인은 고된 유학 생활을 잊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가 와인에 빠진 것처럼 그의 아내 역시 전공과 다른 분야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프랑스 요리였다. 프랑스는 와인의 나라이기도 했지만 요리의 나라이기도 했다. 이름난 레스토랑의 셰프가 아닌 가정집 어머니, 할머니의 손에서도 감탄할 만한 지중해식 요리들이 탄생되곤 했다.“그 매력에 푹 빠졌죠.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에게 요리를 직접 배웠어요. 요리책으로 독학도 하고 요리학교에도 다녔지만 요리를 직접 하나하나 만들며 가르쳐 주신 그분들 덕분에 진짜 가정식 프랑스 요리에 눈을 뜰 수 있었죠.”(배혜정)뒤늦게 와인의 풍미에 빠진 이상황 씨와 달리 배혜정 씨는 와인 애호가인 부친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와인을 접해 왔다. 그 때문에 힘든 유학 생활 중에도 부부는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와인과 함께하는 소박한 데이트와 조촐한 와이너리 투어를 통해 행복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1998년 6월, 귀국한 후에는 이들의 취미인 와인이 특기가 됐다.건축사사무소도 운영하고 한양대 겸임교수로 출강하는 등 바쁜 생활을 보내면서도 이상황 씨는 한국 최초의 와인 인터넷 동호회 중 하나인 ‘비나모르’의 2대 운영자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2003년부터는 와인 전문 잡지에서 편집위원을 맡기도 했고 다수의 잡지와 신문 등에 와인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아내인 배혜정 씨 역시 마찬가지다. 요리의 특기를 살려 프랑스 음식과 와인, 치즈 등에 관한 칼럼을 기고하기도 하고 2001년부터는 요리와 와인에 대한 자신의 특기를 살려 와인 사이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와인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와인에 대한 흥미가 더욱 깊어졌다. 흥미가 깊어질수록 더 많이 공부하게 됐다. 그 덕분에 그들은 남부럽지 않은 와인 전문가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다. 1년에 몇 차례 씩 와이너리 투어로 이상황 씨가 자리를 비우는 날이면 그 빈자리를 아내인 배혜정 씨가 너끈히 채운다. 배혜정 씨의 와인에 대한 식견은 전문가들이 먼저 인정할 정도다.“옛날에 비해 와인 전문가들이 꽤 많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잡지와 신문에 와인 이름이 틀린다든지, 와인 생산자와 생산 업체 이름이 틀린다든지 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그래서 더욱더 늘 바른 와인 정보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죠.”(이상황 배혜정)시간이 지날수록 와인은 점점 두 사람의 인생에 있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아니, 두 사람만이 아니라 공동의 친구들과 함께 인생의 가장 소중한 부분들이 되어 갔다. 2004년에 와인바&레스토랑 ‘베레종’을 오픈하면서부터는 더 그랬다.“다른 모든 것을 떨치고 오직 와인에만 집중하게 돼 행복하죠. 우리 부부에게는 유난히 공동의 친구들이 많은데요, 좋은 와인이 들어오면 그 친구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곤 하죠.”(이상황 배혜정) 둘만의 오붓한 분위기보다 마음 가는 정인(情人)들과 함께하는 그 밝고 따뜻한 분위기가 좋다는 부부다. 아마 많은 와인 마니아들이 ‘베레종’의 와인과 요리에서 ‘밝고 따뜻한’ 맛이 난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게다.“그래서 장차 우리의 꿈은 베레종을 좀 더 작고 오붓한, 정말 와인을 즐기는 이들만의 장소로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그리고 활동하면서 모은 각종 와인과 요리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해 책으로 펴내는 것도 생각 중이에요.”(이상황 배혜정)김성주·객원기자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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