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맨주먹정신이 인재를 키운다

승자의 법칙 ⑥

히로나카 헤이스케, ‘학문의 즐거움’풍족한 환경은 때로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목표와 열정을 식게 하기도 한다. 오늘의 김연아를 만든 것은 역설적으로 전용 링크 없이 훈련한 데서 성공의 비결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연아 어머니 아직 멀었어요? 불 꺼야 돼요.” 전용 연습장이 없어 손님이 없는 밤 10시 이후에서 새벽 1시까지 연습을 해야 했던 김연아와 그의 어머니가 지난 13년 동안 수없이 들었던 소리다. 김연아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을 때 제대로 된 신발조차 살 수 없었다. 반면 라이벌인 일본의 아사다 마오는 첨단 시스템이 갖춰진 빙상장에서 홀로 연습했다.어쩌면 오늘의 김연아를 만든 것은 지독한 훈련이겠지만 그보다 훈련의 ‘악조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용 링크에서 연습하면 언제라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긴장감이 풀어질 수 있다. 돈을 주고 빌린 링크에서 연습하면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연습해야 한다. ‘본전’ 생각에 일초도 그냥 허비할 수 없다. 여기서 이른바 ‘헝그리 정신(맨주먹정신)’이 나온다.아사다 마오가 김연아를 결코 따라올 수 없는 게 바로 헝그리 정신이 아닐까. 김연아에게 아빠의 실패 또한 장애가 되지 않았다. 앞서 ‘실패자 아버지’가 자식들의 성공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공헌’한다는 주장은 김연아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김연아의 성공 비결은 바로 ‘헝그리 정신’과 넘어져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끈기’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역경은 뜻밖의 경우에 닥치게 마련이다.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정신적인 깊은 고뇌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역경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가 하는 데서 출발한다.일본 출신의 세계적 수학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쓴 ‘학문의 즐거움(김영사 펴냄)’을 보면 가난과 역경이야말로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인자(因子)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일전에 ‘메모광 안철수’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어 이 책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쉽게 읽을 수 있고 감명도 깊다고 전했다.일본의 벽촌에서 장사꾼의 15남매 중 7번째 아들로 태어난 히로나카는 대학 3학년 때 수학자의 길을 걸은 늦깎이였지만 하버드대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따고 수학의 노벨상인 필드 상을 수상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그의 아버지는 “대학은 공부하지 않더라도 합격할 수 있는 사람만 가는 곳”이라며 히로나카를 상인으로 키우려고 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을 밭으로 데리고 가기 일쑤였다. 틈만 나면 뭔가 심부름을 시켜서라도 공부를 못하게 했다. 히로나카는 이때 조그만 책상을 들고 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 예를 들면 이불장 같은 데 들어가서 손전등으로 불을 밝히고 책을 봐야 했다. 이게 김연아처럼 히로나카를 세계적인 수학자로 만든 ‘헝그리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에게 엄하고 남에게 관대한 사람은 흔하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에게 엄하면 남에게도 엄하게 마련이다.그는 수학을 연구할 때 ‘끈기’를 신조로 삼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까지에는 남보다 더 시간이 걸리지만 끝까지 관철하는 끈기는 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보다 끝까지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그의 신조다. 인간은 140억 개나 되는 뇌세포 중에서 보통 10%, 많아야 20%밖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잠자고 있는 세포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히로나카는 교토대학 시절 초등학생 과외를 할 때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가 가르친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전혀 복습하지 않아서 다음날이 되면 전날에 배운 것을 깨끗이 잊어버렸다. 그런 일이 계속돼 어느 날 참지 못하고 “지난번에는 잘했는데 왜 지금은 못하지?”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태연하게 “난 바보니까요”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만일 그 아이가 “복습을 하지 않았으니까요”라고 대답했으면 “왜 복습을 하지 않았느냐”고 야단쳤을 것인데 “난 바보니까요”라고 말하니까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이후 그는 수학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난 바보니까”라고 말하면 이내 머리가 한결 가벼워진다고 한다. 눈앞이 밝아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고 김수환 추기경도 자신을 ‘바보’라고 했다. 어차피 나는 바보니까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것이다. ‘나는 바보다’라고 자기 자신을 바로잡음으로써 경직된 상태에서 해방된다.그는 컬럼비아대 교수로 있을 때 2년 동안 연구해 온 수학 이론이 젊은 학자에 의해 풀렸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얼마 후 그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왜냐하면 ‘상대가 안 된다’고 체념하고 ‘나는 바보니까’라고 자세를 바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다음의 새로운 문제에 손댈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새로운 창조의 여행을 떠날 수 없다.니노미야 긴지로는 일본 에도 시대에 가난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출세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이 세상에는 주어진 조건이 모두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두 자기에게 유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또 해결 방법이 차단되면 일단 물러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쓰시다 고노스케 씨였다고 생각되는데 그는 언젠가 “호황도 좋고 불황도 좋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을 인생에 적용하면 “행운도 좋고 역경도 좋다”는 뜻이다. 벽에 부딪쳤을 때 내가 그랬듯이 한발 거리를 두고 아이를 지켜보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창조라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 느긋하게 기다리고(鈍) 기회를 잡을 행운이 오면(運) 나머지는 끈기(根)다. 나는 남보다 두 배의 시간을 들이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해내는 끈기를 의식적으로 키워 왔다.끝으로 히로나카는 ‘이학(耳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학은 ‘귀동냥’이라는 뜻으로 듣고 묻고 토론을 통한 학습을 말한다. 이학이라는 것은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람과 접하면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이나 사고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질문하는 기술이 좋다. 기술이 좋다기보다 모르는 것은 무엇이든지 질문하는 습성이 있다며 질문만 잘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령 300~400페이지 분량의 책도 교수에게 질문을 통해 책의 요점을 파악하기도 한다.히로나카의 수업을 들은 한 컬럼비아대 학생은 지적 수준이 다른 학생보다 낮아 형편없는 질문을 던졌지만 끊임없는 질문은 결국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되는 밑거름이 됐다. 여기서도 바로 배움의 갈증으로 인한 ‘헝그리 정신’과 ‘끈기’의 교훈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인들은 좋은 질문이나 시시한 질문에 상관없이 모르는 것은 무엇이든지 묻고 할 수만 있다면 질문만으로 다 배워보겠다는 자세가 있다. 수학의 세계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에서도 제일 중요하고 기본적인 이론은 모두 단순 명쾌하다. 그래서 수학은 아름답다.역설적으로 복잡하고 수식어가 많은 것은 추하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세계적인 것들은 모두 단순하고 명쾌하다.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특히 매사에 말이 많은 사람 가운데 명쾌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최효찬 소장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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