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비료 남용, 와인업계 골칫거리 될 것’

‘세계 와인업계 큰손’ 존 로크 프레데릭 로크 대표

프랑스 부르고뉴의 명물 로마네 콩티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급 와인이다. 와인에 문외한인 사람조차 만화 ‘신의 물방울’에 나온 이 와인이 세계 최고 반열에 올라 있다는 사실은 잘 안다. 그만큼 로마네 콩티는 전 세계에서 한 모금 마셔본 이가 0.001%도 안 될 정도로 귀하다. 국내 판매가는 한 병에 대략 1000만 원이다. 원·유로 환율이 오른 요즘은 1000만 원에 구입하기도 힘들다. 국내에 유통되는 수량도 10여 병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마시는 와인이라기보다 장식용에 가깝다.한 해 생산되는 수량이 6000여 병이기 때문에 국내 와인 숍에서 실제 제품을 보기조차 힘들다. 세계 최고가(最高價) 와인답게 판매 방식도 독특하다. 로마네 콩티는 이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기타 와인 11병을 사야 1병을 주는 ‘끼워 팔기 식’으로 판매되고 있다. 로마네 콩티를 사려면 다른 와인 11병을 동시에 구입해야 한다. 물론 끼워 판매되는 와인도 하나같이 프랑스 와인 최고 등급인 그랑 크뤼(Grand Cru)급이다.이 때문에 로마네 콩티를 만드는 본 로마네 와인 1세트는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뭐 그렇게 까지 하며 사야 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놓는 와인 모두 5년 이상을 기다려야 맛볼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돈만 있다고 해서 구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와이너리 마음이다. 구매자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기준에 부합된다고 판단될 때만 거래를 허락한다. 이 때문에 국내 수입사들도 매년 이 와이너리를 방문해 지속적으로 눈도장(?)을 찍어야 어렵사리 몇 병 구입할 수 있다.어찌 보면 ‘이렇게 구차하게 매달려야 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쨌든 로마네 콩티를 한 모금 마시고 싶다면 치밀어 오르는 굴욕감 정도는 참아야 한다. 만약 구매자가 구입과 동시에 크리스티, 소더비 등 해외 유명 경매에 출품하면 그것으로 거래는 끝난다.부르고뉴 포도 품종 ‘피노 느와르’로 만드는 로마네 콩티는 우아함과 역동적인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몇 개의 단어로 이 와인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비결은 자연주의에 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유기농 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와인은 100% 자연의 힘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 프랑스 말로 이를 테르와르(terroir)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와인을 결정하는 기후 습도 수분 토양 등 모든 요소가 함축돼 있다.“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제조 방식에도 인위적인 요소가 철저하게 배제됩니다.”현재 본 로마네의 지분 50%를 소유하고 있는 존 로크 씨는 프레데릭 로크 와인의 장점을 설명해 달라고 하자 대뜸 ‘화학비료’ 얘기부터 꺼냈다. 와인에 함유된 타닌 성분이 심장병 예방에 특효가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왠지 와인이라고 하면 100% 유기농 건강식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세계 최고급 와인을 만드는 오너 입에서 처음부터 ‘화학비료’ 이야기가 나온 것은 의외였다.“최근 한국 언론에 프랑스산 와인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있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사실 이 문제는 현지에서도 쉬쉬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와인 수요가 급증하면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와이너리마다 무분별하게 화학비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토양 오염이 걱정될 정도죠. 와인은 2세기 무렵부터 만들기 시작했는데 생산량이 굉장히 적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한국에도 와인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었잖습니까. 수요를 맞추기 위해 와이너리 입장에선 화학비료에 손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그는 “화학비료 사용 문제는 후대에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며 “화학비료를 생산하는 기업들의 로비가 심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우려했다.그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는 “프랑스의 어떤 와이너리는 화학비료를 너무 많이 사용해 땅이 사실상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며 “일부 지역에서는 오염된 지하수를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농약에 오염된 와인이 우리 몸속으로 그대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것”이라고 밝혔다.이런 이유로 그는 ‘자연주의 와인’ 생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1988년 3헥타르(ha)에서 시작한 프레데릭 로크를 20년이 지난 지금 12.5ha로 키웠지만 전통적인 제조 방법을 따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고문서로 전해지는 시토회 수도사(Cisterician Monks)들의 제조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프레데릭 로크는 그가 100% 자본을 투자해 설립한 와이너리다.“포도를 손으로 수확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운반할 때도 포도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상자를 사용합니다. 제초제, 부패 방지제, 이산화황 사용도 엄격히 금지합니다.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땅속 살아 숨 쉬는 미생물까지 파괴되기 때문이죠.”우리 속담을 빚대 설명하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얘기와 같다. 그는 “순산을 도와주는 것이 산부인과 의사이듯 우리의 역할도 자연이 만들어준 포도를 순리에 맞게 양조하는 것 뿐”이라며 “라벨에 별도로 유기농(Organic)이라고 표시해야 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이 때문에 포도나무도 듬성듬성 심는다. 그는 너무 촘촘히 포도나무를 심으면 생산량은 늘지만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 결과 그의 와이너리는 1에이커당 포도 수확량이 1톤에 불과하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일일이 잡초를 손으로 뽑아 땅속 깊은 곳의 미생물 하나까지 보호한다. 포도나무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양질의 미네랄을 흡수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 모든 것은 와인의 맛과 직결된다.그의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포도 수확량은 다른 곳의 40%에 불과하다. 여기에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임금도 다른 곳에 비해 10배가량 비싸다. 경영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그다지 남는 장사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최근 미국 유기농 인증 기관인 QAI(Quality Assurance International)로부터 유기농 제품임을 공식 인증한 ‘ECOCERT’ 마크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품질은 최상급을 자랑한다. 만화 ‘신의 물방울’저자는 ‘프리에르 로크’를 부르고뉴 명품 ‘앙리 자이에(Henri Jayer)’나 ‘임마누엘 루게(Emmanuel Rouget)’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톱클래스 와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라벨 로고도 프랑스 언어학자 샹폴리옹이 해독한 이집트 상형문자 히에로글리프(hieroglyph)를 사용했다. 왼쪽의 초록색 형상은 포도나무, 노란색 점은 신의 눈, 인간의 눈이며 맨 아래 빨간색 점은 포도 알을 형상화했다. 이런 이유로 그의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글로벌 경기 침체 외풍을 전혀 받지 않고 있다. 오히려 수요가 늘었다.“와인은 단순한 공산품이 아닙니다. 1970년대 코카콜라사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와이너리 하나를 인수했는데, 4년 만에 포기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철학이 없기 때문이죠. 어떤 생각으로 와인을 만드는지 소비자들은 혀로 금세 판단합니다. 그것이 우리 업종의 매력이자 힘든 부분이죠.”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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