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 아이는 없죠’

아동심리 상담 전문가 김현주 교수

요즘 신문 사회면에는 유독 아동들이나 학생들에 대한 사건 사고 기사가 많다. 청소년 범죄라는 말도 이젠 낯선 단어가 아니고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연령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살이라는 끔찍한 선택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험한 세태에 한숨지으면서도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심지어 해당 아이들의 부모들 또한 왜 자신의 아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줄 몰랐다”라는 것이 한결같은 반응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아이들이 보이는 문제 행동들은 대부분 가정이나 부모님에게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아동들을 상담할 때 그 부모님들의 심리 상담을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죠.”서울특별시립 아동 상담소 상담원으로 10여 년을 활동하고 현재는 라파심리상담센터 소장으로 있는 아동심리 상담 전문가 김현주(45·남서울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1만여 명에 가까운 아동들의 문제점들을 다뤄온 아동심리 상담 전문가다. 그녀가 하는 일은 다양한 문제 행동들을 보이는 아동들을 상담해 원인을 알아내고 마음을 치유, 문제 행동들을 바로잡는 일이다.“흔히 문제 아동이라고 하지만, 저는 문제 아동이란 말을 쓰지 않아요. 대신 부적응 아동이란 말을 쓰죠.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그 스스로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뿐이거든요. 저는 그 부적응 아동이나 청소년들이 적응을 잘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고요.”그래서인지 그녀가 상담한 사례들을 들어보면 우리 사회, 우리 가정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어느 형제가 있었어요. 형은 성적이 뛰어난 모범생이었는데 동생은 공부를 못했죠. 그러다 보니 부모한테 늘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고 학업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살하게 됐죠. 공부를 잘하는 형은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늘 동생이 꾸중 듣는 모습을 보아 온 터라 이미 ‘관찰학습’이 돼 있는 상태여서 동생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받고 성적이나 부모에게 공포감을 지닌 채 상담소를 찾아 온 경우도 있었어요.”그 외에 부모 모두가 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엘리트 회사원임에도 불구하고 맞벌이 때문에 각기 다른 베이비 시터 집에 양육을 맡겨 함께 살게 된 이후에도 늘 불안해하는 어린 자매들에서부터 술 담배는 기본이요, 싸움이나 도둑질까지 서슴지 않는 비행 여고생에 이르기까지 오늘을 살아가는 다양한 ‘부적응’ 아이들이 상담소를 찾아왔다.“정말 가슴 아픈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특히 옛날에 비해 요즘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우울증 때문인 게 대부분이어서 더욱 안타깝죠.”톱스타에서부터 평범한 소시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무서운 병인 우울증을 우리 아이들이 겪고 있다. 쉬이 믿어지지 않는 얘기지만 사실이다.“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주변 상황에 가장 민감한 것이 바로 그들이에요. 그 때문에 원만하지 못한 부부관계나 가정불화, 부모의 잘못된 양육 방법, 공부에 대한 중압감 등으로 우울증에 빠진 아이들이 많죠.”그렇다면 아이들이 우울증에 빠져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생활 속에서 아이들의 행동을 보고 증세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학생들의 우울 증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과민이에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지나친 반응을 한다는 거죠.” 사람을 만나는 것을 기피한다거나,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낸다거나, 이유 없는 반항이라든지 분노,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면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아동들의 우울증은 흔히 ‘가면우울증’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유난히 산만하다거나 공격성을 띠고 있다거나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분리 불안 증세를 보이기도 하죠. 부모님들은 흔히 ‘사춘기니까’ ‘아직 어린 아이니까’라는 말들로 평범하게 받아들이곤 하는데 또래 아이들, 또래 학생들에 비해 반응이 과하다면 우울증이라고 볼 수 있어요.”이 우울증을 치유하고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기 위해서는 따뜻한 배려와 끈기가 필요하다. 실제로 심리 치료는 보통 7, 8개월에서 12개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지속된다.“심리 치료는 일단 상담과 검사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놀이 치료라든지 모래 놀이 치료, 미술 치료, 요리 치료 등의 방법을 활용해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죠.”“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부모님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부모님을 통해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부모님들의 상담과 함께 올바른 교육 방법을 알려주기도 합니다.”‘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 아이는 없다’는 말처럼 아이들의 문제는 대부분 부모들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부모를 통해 바로잡아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다.그렇다면 올바른 자녀 교육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김 교수가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바로 ‘긍정적 자기 표상 심어주기’다.“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산만한 아이에게 ‘너 왜 이렇게 산만하니’라고 꾸짖는 게 아니라 ‘어머 예전에 비해 많이 집중하고 있구나’라는 식으로 좋은 점을 자꾸 이야기하는 거죠. 또 칭찬을 하더라도 결과 중심의 칭찬이 아니라 과정 중심의 칭찬을 해 주세요. ‘~했니? 잘했어!’가 아니라 ‘~하니까 좋아 보이는데?’라는 식으로요.”그녀는 부모들에게 아이와 함께 ‘놀이’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의 기본은 바로 부모의 자녀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란다.그녀는 강의가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동심리 치료에 쏟고 있다. 심리 치료를 하고 있는 아동들만 해도 하루에 다섯 명 꼴이다. 이 숫자는 1년이면 거의 몇 백 명으로 불어난다. 많은 아이들이 그녀의 보살핌을 통해 다시 제자리를 찾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치료를 마친 후에도 계속 연락하는 부모님들이나 아이들이 많아요.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들을 보내 주는 분들도 많고 아이들이 어떻게 잘 생활하고 있는지 일부러 알려주는 분들도 많아요. 고맙고 감사하죠. 보람도 크고요.”그래서 그녀는 더 많은 아이들의 적응을 도울 수 있게 되기를 꿈꾼다. 한 명의 아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이 튼튼한 자아를 기르고 당당히 세상과 마주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그래서 지금은 비록 유료로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기초 수급자들을 대상으로 하거나 사회복지 개념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제 꿈이랍니다.”약력: 숙명여대 교육심리학과 졸업. 숙명여대 교육심리전공 석사. 한양대 아동심리치료전공 박사. 1992~2001년 서울특별시립 아동상담소 상담원, 심리검사실장. 대한 부모교육학회 이사. 한국 임상 모래놀이치료학회 이사. 미국 AP협회 공인 AP(적극적 부모역할훈련) 강사. 남서울대 아동복지학과 겸임교수(현). 라파심리상담센터 소장(현).김성주·객원기자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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