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는 배’ 등 창조적 보트로 ‘명성’

이희재 우성아이비 대표

지난 1993년 2월, 서울 성산대교 밑. 겨울 강바람이 매서웠다. 이곳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변엔 고무보트가 있었고 그 주위에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외국인도 한명 끼어 있었다. 한국인 10여 명은 각각 저울에 몸무게를 단 뒤 앞가슴에 자신의 몸무게를 표시한 천을 붙였다. 63kg, 75kg 등등.“전부 합쳐 봅시다. 그럼 1000kg은 넘을 겁니다.”이들은 보트의 부력을 시험하는 중이었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강에서 사람을 저울추 삼아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일 듯했다. 이 보트가 정해진 규격인 800kg 이상의 부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중이었다.테스트하는 주체는 보트 업체인 우성아이비(대표 이희재)였다. 워낙 작은 업체여서 전 임직원이 모여도 목표 중량을 채울 수 없었다. 급기야 임직원의 아내와 아이들까지 동원됐다. 이곳에 온 외국인은 스페인의 보트 바이어인 엠메리토 씨였다. 여기에 끌려오다시피한 엠메리토 씨는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며 화를 내고 있었다. “게다가 8인승 보트에 15명이나 승선시켜 위험하게 테스트를 하다니…”라며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을 지어보였다.잠시 후 ‘무슨 일인가’ 하고 경찰이 달려왔다. 그는 당장 중단하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우성아이비의 이희재 대표는 경찰관을 설득했다.“우리 회사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 테스트를 통과해야 수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이 대표는 15명을 다 태워도 목표 중량에 미달하자 경찰관의 등을 떠밀다시피 해 보트에 태웠다. 그제야 전체 탑승자의 몸무게는 기준 규격인 800kg을 훌쩍 넘은 것은 물론 1000kg도 웃돌았다.엠메리토 씨는 해외 보트 전시회에서 이 대표를 만난 뒤 생산 현장과 제품을 볼 겸 인천에 있는 우성아이비를 찾은 터였다. 그는 그전에 나이키 운동화를 한국에서 많이 수입해 간 적이 있어 한국인들의 손재주를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성아이비가 부평공단 내 청천동의 지하 단칸방에서 10여 명을 데리고 작업하고 있는 소기업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게다가 창업한 지 1년여밖에 되지 않았고 각종 인증조차 받지 못한 업체임을 알고 너무 실망해 그냥 귀국하려던 참이었다.하지만 이 대표는 그를 순순히 돌려보낼 수 없었다. 이 대표는 고려대 농경제학과를 나와 국제상사와 아시아콘트롤스를 거쳐 세계적인 보트 업체를 만들겠다고 1992년 1월 우성아이비를 창업한 터였다. 1년여 동안 몇 가지 고무보트 제품을 개발했지만 제대로 주문을 받은 적이 없었다. 자금은 바닥났고 종업원들의 임금은 다섯 달 치나 밀린 상태였다.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애당초 고무보트라는 게 옷을 만들 듯이 천을 사다가 잘라 본드만 붙이면 되는 줄 안 게 큰 착각이었다. 보트는 인명과 직결되는 것이어서 각종 인증을 받아야 했고 창업 후 적어도 5년은 돼야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는 기술집약적인 제품이었던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자신의 마지막 재산인 지프차를 팔아 350만 원을 마련해 이날 시제품 제작 등에 투입한 상태였다.이날 주먹구구식 테스트에서 우성아이비의 고무보트는 이들을 충분히 태우는 것은 물론 몇 명이 양쪽으로 급히 왔다 갔다 해도 뒤집어지지 않았다.까다롭기로 이름난 엠메리토 씨는 이 대표의 열정과 끈기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테스트 과정을 전부 촬영한 뒤 귀국했다. 그로부터 1개월 뒤 4만 달러어치의 주문서가 도착했다.이것이 우성아이비가 해외로부터 받은 첫 주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엠메리토 씨는 그날 기록한 사진 등을 근거로 자국 내에서 이 고무보트에 대한 인증을 받는데 앞장섰다.그 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ARE(All River Equipment)사의 웨인 사장이 찾아왔다. 공장 인근의 부평호텔에 투숙한 그는 3일 동안 머무르며 상담을 벌일 생각이었다. 스페인으로 수출하는 업체인 만큼 번듯한 규모를 갖췄을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 역시 우성아이비 공장을 본 뒤 마음을 바꿔 다음날 비행기 편으로 출국하겠다고 통고해 왔다.“설계도를 주기만 하면 반드시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겠다”고 이 대표가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하도 매달리자 웨인 사장은 자신이 지닌 3장의 보트 도면 중 가장 까다로운 도면 한 장을 휙 던져 줬다. “당신네 회사가 만들긴 뭘 만들 수 있느냐”며 아무 생각 없이 던져 준 것이었다.그 다음날 새벽 5시쯤 되었을까. 시차 때문에 잠자리에서 일찍 일어난 웨인 사장은 호텔 주변에서 조깅을 하다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우성아이비 옆을 지나가는데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자신이 던져 준 도면대로 보트가 벌써 모양을 갖춰가고 있지 않은가.세계 최고 수준의 보트 업체도 적어도 보름 이상 걸리는 시제품 제작을 우성아이비의 임직원들은 하룻밤 사이에 완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웨인 사장이 떠나기 전에 그에게 보여줄 요량이었다. 웨인 사장이 감동해 스페인 업체의 10배가 넘는 50만 달러어치를 주문했다. 이런 식으로 우성아이비는 하나 둘씩 거래처를 뚫기 시작했다.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우성아이비는 전 세계 60여 개국에 연간 1200만 달러어치 이상을 수출하는 고무보트 분야의 세계적인 업체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작년 11월 말 무역의 날에 1000만 달러 수출탑을 받기도 했다.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급류 타기용 고무보트(래프팅용 보트)를 비롯해 인명 구조용 보트, 요트 텐더(해안에서 50~100m가량 떨어진 곳에 정박한 요트로부터 해안에 닿기까지 이용하는 보트), 바나나 보트, 비상용 구명 보트, 워터파크용 물놀이 용품 등 다양하다.특히 래프팅용 보트는 고무보트의 백미다. 고무보트의 정식 명칭은 공기 주입식 보트(Inflatable Boat)다. 이 가운데 래프팅용은 좁고 경사가 가파른 계곡에서 타는 제품이어서 펑크가 나거나 뒤집힌 뒤 원상회복이 되지 않으면 탑승자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우성아이비 제품은 몇 년 전 47개국 래프팅 선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경기용 보트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다”고 이 대표는 설명한다. 그는 “지금도 그랜드캐니언 밑을 흐르는 콜로라도 강에선 우성아이비의 ‘제벡(ZEBEC) 보트’를 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덧붙인다.이 회사는 특이한 제품을 속속 개발해 보트 업계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예컨대 하늘을 나는 보트인 ‘플라이 피시(Fly fish)’가 그것이다. 바나나 보트의 스피드와 패러세일링의 쾌감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제품이다. 모터보트가 시속 30노트로 이를 끌고 달리면 공기저항 덕분에 ‘플라이 피시’는 수면 6m 위까지 떠올라 날아간다.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미국 유럽 캐나다 등 해외특허도 갖고 있다.손 대신 발로 젓는 카약인 ‘미라지 카약’도 개발했다. 손으로 노를 젓는 것에 비해 힘이 10분의 1밖에 들지 않는다.이 회사는 지금의 인천 효성동 공장에선 신제품 개발과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글로벌 마케팅에 주력하고 일반적인 제품은 해외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베트남 불가리아에 4개의 현지 공장을 설립했다. 또 웨인 사장이 운영하던 ARE를 인수해 미국 현지법인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웨인 사장을 현지법인 책임자로 앉혔다.이 대표는 “공기 주입식 보트는 군용, 요트용, 어선용, 레저 스포츠용 등으로 시장이 무궁무진하다”며 “그동안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밑거름 삼아 이제부터 본격적인 도약에 나설 것”이라고 포부를 밝힌다.약력: 1956년생. 고려대 졸업. 국제상사 국제 금융부 및 사우디아라비아 주재원. 아시아콘트롤스 기획관리 담당 임원. 92년 우성아이비 창업 및 대표(현). 수상;중소기업인상 무역협회장상 대통령표창 베트남정부우호훈장 등 다수.창업: 1992년본사: 인천 효성동해외 법인 및 공장: 중국 베트남 미국 불가리아 생산제품: 경기용 고무보트, 인명 구조용 보트, 구명조끼 등수출액: 약 1200만 달러(2008년)거래처: 미국 유럽 등 약 60개국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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