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젠 범계역점 한성혜 사장
경기도 안양 범계역 중심 상권에는 오후 4시만 되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집이 있다. 한겨울 눈보라가 치는 날에도, 장맛비가 내리는 날에도 어김없이 장사진을 이룬다. 작년 10월 창업할 때부터 이곳은 소위 ‘대박집’이었다. 고객들은 20분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워하지 않는다.수많은 이가 기다림을 감수하고 찾는 것은 바로 크림생맥주.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회사원에서부터 20대 초반까지 연령도 다양하다.크림과 생맥주의 환상 궁합으로 큰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이는 바로 한성혜 사장이다. 20대 후반의 두 아들과 같이 창업을 시작한 그는 창업 6개월 만에 크림생맥주 전문점 약 5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비수기인 겨울 매출액은 월평균 6000만 원선. 여름 장사인 점을 감안하면 꽤 높은 매출액이다. 날씨가 따뜻해진 요즘 들어선 월매출이 8000만 원에 달한다.하지만 화려한 매출액과 달리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눈시울은 젖어 있었고 인터뷰 내내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슬픈 사연이 있었던 것. 바로 남편과의 사별이었다. 2005년 소중한 배필을 잃은 뒤 그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책을 한 권 내도 모자랄 정도라고. 이러한 슬픔과 고난이 오히려 패밀리 창업의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남편을 잃고 혼자서 헤쳐 나가는 저를 보며 큰아들(윤선욱, 28)과 대학 졸업을 앞둔 작은아들(윤민욱, 26)이 업종 선택에서부터 입지 선정까지 발 벗고 나섰습니다. ‘플젠’도 작은아들이 추천했죠. 두 아들이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저를 생각해 주는 자식들을 보며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악바리 근성이 더 생겼어요. 동생 친척 등 주위 사람들에게 거의 2억 원 가까이 빌린 것도 바로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강한 힘 때문이었습니다.”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적지 않았다. 여름 장사인 생맥주집을 겨울에 오픈하면 분명히 순이익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게다가 중심 상가 지역이기 때문에 월세가 비쌀 뿐더러 호프집이라는 업종에는 가족들 모두 문외한이었기에 지인들의 걱정이 컸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오픈하자마자 손님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12월 추운 날씨에도 매출액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다. 날씨가 한층 더워진 요즘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쉴 틈 없이 바쁘다. 뙤약볕 더위가 기승을 부릴 7~8월에는 월매출 1억 원을 기대하고 있다.한 사장은 그동안 여러 사업을 했지만 이렇게 성공한 건 처음이다. 성공의 비결은 ‘핏줄’에 있었다고 강조한다. 마음이 맞는 가족들과 함께 운영하다 보니 효율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아들을 보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이유다.“주인의식으로 서로 책임감을 갖고 해요. 그러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큰 것 같습니다. 업무 속도도 빠르고요. 서로의 성격을 잘 알아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뭐가 필요한지 알기 때문에 손님이 많아도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죠. 이러한 점이 매출 상승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큰아들은 계산을, 공익근무요원이라 격일로 일하고 있는 작은아들은 홀 서빙을 담당하고 한 사장은 믿음직한 아들 덕분에 주방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가족들이 각각 3명의 몫을 책임지니 인건비 절감 효과도 크다. 178㎡(54평) 점포에서 순익만 2000만 원을 올리고 있다.다른 호프집과 차별화된 것도 성공 비결이다. 동네 여느 호프집과 전혀 다른 맛과 분위기가 고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대부분 선호하지 않는 거품을 크림으로 소화함으로써 거부감을 없앴다. 인테리어 또한 고급스럽다. 중세 중부 유럽풍의 고급 인테리어와 플젠이란 도시의 벽화가 기존의 생맥주집과 다른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플젠 가게만의 독특한 풍경도 있다. 직원이 생맥주를 따르는 장면을 매장 한가운데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오크통을 절반으로 자른 듯한 생맥주 추출기 위에 얹어진 얼음 조각들이 단순한 장식용이 아니라 실제로 생맥주를 차갑게 만든다. 일반 호프집과 차원이 다른 것이다. 플젠의 냉각 방식은 보통 호프집에서 쓰이는 전기 냉각 방식이 아닌 얼음 냉각 방식을 사용한다. 이로써 얼음의 차가운 냉기가 곧바로 생맥주에 전달돼 섭씨 0.5도의 차가운 생맥주를 맛볼 수 있다.이러한 점들 때문에 이 가게를 한 번이라도 방문한 고객들은 바로 단골손님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고.“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맥주 맛이 좋아 남성들도 많이 찾지만 여성들이 더 많이 찾아요. 기존의 톡 쏘는 맛 때문에 거부감을 느꼈던 여성들에게 톡 쏘는 맛이 덜한 크림 생맥주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어요.”고급 현미유로 조리한 안주, 신선하고 상큼한 샐러드 역시 여성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안주가 깔끔하고 담백해 많이 먹어도 느끼함이 적고 바삭바삭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그들의 평이다.여기에다가 빼놓을 수 없는 게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직원들의 친절함이다. 그들의 밝은 인사와 상냥한 웃음은 손님들을 저절로 이 가게에 발걸음을 돌리게 만든다. 이 이면에는 직원을 향한 한 사장의 교육이 있었다. 한 대표는 직원들에게 항상 ‘손님을 먼저 생각하라’ ‘손님이 왕이다’ 등을 강조한다. 손님이 없으면 가게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게 이유다. 두 아들에게도 교육을 시키는 것을 잊지 않는다. 간혹 고객이 불평하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대처하라고 타이르고 밝은 인사성을 유지하라고 충고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들의 친절함에 반해 오는 손님들도 많다.사업이 잘되면 거만해지기 쉽지만 그는 자만을 가장 경계하고 항상 겸손한 경영자(CEO)이고 싶어 한다.“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고, 좋지 않는 날도 있잖아요. 인생은 정말 새옹지마라고 생각해요. 사업도 마찬가지로 계속 잘될 수도 없고, 항상 잘 안 풀릴 수도 없는 것 같아요. 현재 일이 빠르게 진척된다고 교만할 필요가 없는 이유죠. 항상 초심을 잃지 않은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사업이 더욱 번창한다고 해도 겸손한 자세를 잊지 않을 거예요. 그게 바로 제 인생관이기도 하죠.”한 사장은 가족형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유의할 점도 귀띔했다. 가족이라고 만만하게 대하거나 자신의 업무를 미뤄서는 안 된다는 점, 이익 배분에 대해서도 확실히 해 둬야 한다는 점,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업종을 제대로 선택해야 하는 점 등이 그것이다.“공사(公私) 구분을 뚜렷이 해야 합니다. 역할 분담도 개인의 능력이나 적성을 고려해 처음부터 명확히 하는 것이 바람직해요. 이익 배분에 대한 원칙도 확실히 해 두는 게 좋습니다. 특히 돈 문제는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대충 넘어가면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길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아울러 경쟁시대라는 것을 인식하고 타 가게와 차별화되도록 전략을 짜야 합니다. 같은 업종이라도 뭔가 독특한 점이 있어야 하죠. 그래야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요.”그의 올해 목표는 9억 원 매출액 달성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훨씬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도 한 사장은 게으를 틈이 없다. 밤 업무이다 보니 새벽 5시까지 일하고 나서야 잠을 청한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한다.“부모는 자식을 바라만 봐도 힘이 생겨요. 육체적으로는 피곤해도 정신적으로는 항상 힘들지 않죠. 가족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사업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더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김선명 기자 kim069@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