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천국’ 싱가포르 이기려면

지난 정부에서 시작된 핵심적인 금융 정책 중 하나는 금융중심지법(금융중심지의조성과발전에관한법률) 제정을 통한 금융 허브 구축을 들 수 있다. 한국을 동북아 금융거래의 중심지로 육성, 외국계 금융회사를 대거 유치하고 고용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자산운용 시장 성장의 여러 경제적 의미들을 생각해 보건대 자산운용 시장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우선 자금시장의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시장의 성장을 통한 경쟁과 혁신은 투자자에게 보다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낮은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숨겨진 알짜 기업들의 자금 조달 통로 확대에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고급 인력 수요 증대와 함께 펀드 판매, 자산 보관 및 사무 수탁 등 유관 산업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문제는 육성 전략이다. 정부는 해외 유수의 자산운용 회사들이 우리나라에 법인을 설립해 내국인을 고용하고 펀드를 만들어 국내에 등록하는 소위 금융 허브형 육성 전략을 지향하고 있다. 금융중심지법은 이러한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정부가 주도하는 금융 허브형 자산운용 시장 육성 전략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이미 싱가포르가 선점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상대적으로 작은 자국 경제 규모를 고려해 자국 내 펀드 수요를 확충하는 전략보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 자산운용 회사들이 자국에 진출, 펀드를 등록하고 자국에 등록된 펀드를 여타 국가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도록 하는 전략을 선택했다.싱가포르 정부는 해외 자산운용 회사들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등록 요건을 크게 완화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함과 동시에 등록된 펀드에 외국인이 투자할 경우 투자 소득에 면세 혜택을 제공하는 등 파격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펀드 규모는 아·태 지역 최고 수준이 됐고 투자자의 대부분은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는 등 싱가포르는 아·태 지역의 명실상부한 자산운용 허브로 부상했다.여기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을 아·태 지역 자산운용 허브로 구축하려는 전략은 냉철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외국계 자산운용 회사와 우리나라에서 설정된 펀드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재정 여건의 뒷받침을 필요로 하는데, 향후 수년간 적자예산이 예상되고 있어 만만치 않다.또한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팽배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외국 자산운용 회사 및 외국인 펀드 투자자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산운용 허브 구축에 필수적인 언어와 문화적 이질감 극복 또한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반면 한국 자산운용 시장의 수요 창출 잠재력은 대단히 우수하다. 한국은 세계 5대 자산운용 시장 중 하나인 호주에 버금가는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2010년 이후 국민연금 및 퇴직연금 등 자산운용 시장의 잠재 고객이 될 연금자산이 본격적으로 축적될 전망이어서 미래는 아주 밝다.따라서 당분간은 잠재력이 높은 내국인의 펀드 수요를 확충하는데 정책적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국내 시장의 성장을 통해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해외 자산운용 회사들에는 가장 기본적인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호주도 연금 시장의 성장을 바탕으로 자산운용 시장이 급격하게 커졌고, 그 결과 많은 해외 자산운용 회사들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국내 펀드의 수요를 확충하기 위해서는 장기 투자에 대한 상시적인 세제 혜택, 국민연금의 외부 위탁 운용 확대, 퇴직연금 가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및 운용 규제 완화 등 지금까지 많이 논의해 오던 과제들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약력: 1967년생. 영신고, 경희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1995년 현대경제연구원. 1999년 포스코경영연구소. 2002년 삼성금융연구소. 2003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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