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 전략으로 위기 돌파…투자 ‘올인’

제2의 천지개벽과 상하이의 꿈

“중국은 금융 방면에서도 국제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상하이가 출발점이다.”1991년 1월 중국 개혁 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이 상하이를 시찰하면서 던진 말이다. 다음해 중국 공산당은 14대 당 대회에서 상하이를 국제경제 금융 무역 허브의 하나로 육성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상하이는 중국 최대 경제 도시로 급성장했다. 갈대밭 푸둥에 고층 빌딩이 즐비해지면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천지개벽’이라고 부른 변화가 일어난 것. 하지만 이는 금융보다 외자 유치를 통한 수출 제조업 성장을 발판으로 했다.20여 년이 흐른 지난 3월 중국 지도부는 상하이 허브론을 다시 꺼냈다. 중국 국무원(중앙정부)이 오는 2020년까지 상하이를 국제금융 및 물류 허브로 키우는 정책을 승인한 것. 이어 4월 말엔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담은 로드맵까지 내놓았다. 여기에 중국 통신 업체인 차이나텔레콤은 상하이를 아시아의 통신 허브로 만들기 위해 6조 원을 투자하는 계획까지 세웠다.국제금융과 물류 허브는 물론 통신 허브까지 되겠다는 상하이의 야심 뒤에는 개혁 개방 이후 최대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상하이 경제는 지난해 17년 만에 처음으로 성장 률이 한자릿수대로 추락했다. 위기 돌파를 위해 제조업 중심의 지역 경제 구조를 개혁하겠다는 의도가 허브 전략에 담겨 있다. 상하이 허브 전략은 한때 동북아 금융 허브를 꿈꿨던 한국에는 커다란 도전이다. 하지만 동시에 상하이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 상하이를 미국의 뉴욕 월가와 영국의 런던 시티와 같은 금융 허브 반열에 올리기 위한 프로젝트는 △금융시장 다원화 △금융회사 개혁 △금융 환경 개선 등 세 갈래로 진행된다. 외국 기업이 중국에서 위안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물론 상하이 증시에 상장하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밝힌 건 금융시장 다원화의 대표 사례다. 국제기구가 중국에서 발행을 시작한 위안화 채권에 대해서는 한도를 더욱 확대하겠다고 했다. 적절한 시기라고만 밝혔지만 상하이 증시의 외국 기업의 중국 기업공개(IPO) 허용은 한국 증시의 국제화 전략에 도전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외국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에서 연구·개발에서부터 생산 판매는 물론 자본 조달까지 할 수 있는 일체형 기업 전략을 짤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전략 변화가 요구된다. 여건이 성숙된 후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지수 선물을 비롯해 환율 금리 주식 채권 은행 대출 등을 기반으로 한 금융 파생상품도 우선적으로 상하이에서 허용하기로 했다. 세계적인 재보험 업체와 중국 기업과의 합작을 적극 유도하고 중국 은행의 보험사 투자를 허용하는 등 겸업 범위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상하이에 있는 합작 증권사와 합작 자산운용사에 우선적으로 시장 개방 범위를 확대 적용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국제 경쟁력이 있는 금융 그룹을 키운다는 전략도 수립했다. 상하이에서 위안화로 무역 결제를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금융 허브 만들기의 일환이다. 상하이에 금융 전문 법원과 중재 기구를 설립하고 개인 신용 정보망을 개선하기로 한 것은 금융 산업의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중국 정부는 상하이의 금융 허브 부상이 홍콩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의식해서인지 홍콩과 협력해 증권 상품을 개발해 나간다는 계획도 포함시켰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저장성과 장쑤성을 날개로 황금 수로로 불리는 창장(양쯔강)을 잇는 항공 및 해운망을 구축한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항운이 발달한 국가의 지원 정책을 거울삼아 국제항운발전종합시험구를 세워 중국 항운 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상하이의 심수항인 양산항 보세구에서 국제 항운 업무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서는 영업세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양산항보세구에서 창고 물류 서비스로 올린 수입에 대해서도 영업세를 면제하기로 했다.또 사모 투자 펀드 등의 방식을 통해 해운사는 물론 관련 제조업에 대한 융자를 적극 유도해 나기로 했다. 특히 대형 조선업체가 금융 리스 회사 설립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상하이에 설립된 보험사가 국제 항운 관련 보험 업무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서는 영업세를 받지 않기로 했다.= 차이나텔레콤은 상하이에 최근 향후 2년간 260억 위안(약 5조7200억 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계약을 상하이시와 체결했다. 내년에 열리는 상하이엑스포를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투자 예산 가운데 절반을 정보기술(IT) 인프라 구축에 쏟아 부어 상하이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통신 허브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차이나텔레콤은 상하이엑스포를 위한 콜센터 요원을 400명에서 5000명으로 늘리는 등 이번 투자 확대를 통해 내년까지 상하이에 1만개 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도 밝혔다.특히 상하이의 평균 인터넷 접속 속도를 현재의 초당 2메가바이트에서 2012년까지 10배 수준인 20메가바이트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3세대 이통통신망과 함께 중국이 독자 개발한 무선통신 표준인 WiFi망을 구축해 상하이시를 ‘무선 도시’로 만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 같은 전략은 상하이를 국제금융 허브와 국제 물류 허브로 만드는데 필요한 인프라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상하이데일리는 전했다.= 상하이는 기존의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첨단화하는 데도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연구·개발과 혁신 및 고부가가치가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자동차 기계장비 조선 전자정보 등 경쟁력을 갖춘 제조업의 연구·개발 능력과 핵심 경쟁력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와 함께 항공기 제조 및 바이오 신에너지 신소재 등 신흥 제조업과 전략산업도 적극 육성하기로 했다.특히 푸둥신구에 기술 선진형 서비스 발전 정책 시험구를 세워 △소프웨어 개발 △제품 기술 개발 및 설계 △IT 아웃소싱 등의 기술 선진형 서비스업을 키우기로 했다. 기술 선진형 서비스 기업으로 인정받은 기업에 대해서는 15%의 법인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중국의 법인세율은 25%다. 특히 이들 기술 선진형 서비스 기업이 사용한 직원 교육비는 전체 임금의 8%를 넘지 않는 선에서 세액공제 혜택도 받는다. 기술 선진형 서비스 업체가 해외 아웃소싱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에 대해서는 영업세가 면제된다. 또 정부가 벤처기업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펀드를 만들어 기술 선진형 서비스업은 물론 선진 제조업 분야의 창업 초기 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기로 했다.= 상하이 변신의 동력은 위기 의식이다. 상하이의 1분기 성장률은 3%대로 추락했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보다 3.1% 증가한 3150억 위안(약 69조3000억 원)에 그친 것. 이 같은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11.53%)에 비해 무려 8.43%포인트 둔화된 것으로 1분기 중국 전체 경제 성장률(6.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상하이 푸단대 루밍 교수는 “상하이 제조업체들이 글로벌 경기 둔화에 큰 영향을 받은 수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상하이의 1분기 산업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8.1% 감소했다. 상하이의 같은 기간 수출과 수입도 각각 20.8%, 32.1% 급감했다. 세계 1위인 상하이의 화물 처리량은 1분기에 전전 동기보다 12% 감소했다. 매년 20% 이상 증가하던 화물 처리량이 감소세로 바뀐 것.상하이는 지난해에도 성장률이 9.7%를 기록해 17년 만에 처음으로 한 자릿수대로 밀렸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각국의 경제 제재를 받아 성장이 둔화됐던 1991년 7.1% 이후 처음이다. 상하이의 허브 전략이 위기를 뚫고 제2의 천지개벽을 이룰 발판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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