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먹고 알먹고’ … 너도나도 ‘고치자’

서울의 랜드마크 빌딩들이 속속 새 단장을 하고 있다. 건물의 내·외부를 대대적으로 개·보수하는 ‘리모델링’ 작업을 통해서다. 서울의 많은 건물들이 노후화됐지만 리모델링은 그간 별 인기가 없었다. 여러 규제로 인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 신공법을 통한 공사 기간 단축 및 공사 후 가치 상승, 친환경 건물에 대한 입주자들의 선호 등 여러 이유로 리모델링 사업이 서서히 주가를 올려가고 있는 것이다.소설가 신경숙은 그의 소설 ‘외딴방’에서 작중 화자의 말을 빌려 서울역 앞 대우센터빌딩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날 새벽에 봤던 대우빌딩을 잊지 못한다. 내가 세상에 나와 그때까지 봤던 것 중에 제일 높은 것. ’1977년 완공돼 근 20년간 한국 최대의 오피스 빌딩이라는 지위를 누리며 많은 이들에게 추억의 대상이 돼 왔던 옛 대우센터빌딩이 새 단장을 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으로부터 9600억 원에 이 빌딩을 인수한 모건스탠리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올해 11월까지 이 빌딩의 리모델링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새 단장이 끝나면 약 6000명의 상주인구를 가진 이 빌딩은 지하 2층~지상 23층 연면적 13만2807㎡의 규모로 재탄생된다.새 옷으로 갈아입는 만큼 이름도 새 이름으로 바꿨다. ‘서울스퀘어(Seoul Square)’가 바로 옛 대우센터빌딩의 새 이름이다. 국내 대표 기업으로 흥망의 질곡을 경험한 대우그룹의 본사 건물이던 이 빌딩의 본래 이름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매수자인 모건스탠리 빌딩으로 하느냐에 대한 말들도 많았다. 하지만 모건스탠리 측은 해외의 랜드마크 빌딩들이 ‘스퀘어’라고 불리는데 착안해 새 이름을 지었다.서울스퀘어 측은 “인천국제공항철도와 KTX로 한국 전역을 연결하는 입지적 우수성, 한국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옛 대우센터빌딩의 역사성은 연면적 13만㎡의 규모와 함께 서울스퀘어만이 가지는 독보적인 위상”이라며 “친환경적인 인테리어와 각종 편익시설은 물론 입주사만을 위한 고급 서비스를 제공해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오피스 빌딩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서울스퀘어는 또 주변의 다양한 인프라 개선 계획들과도 연계해 기존의 명성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먼저 서울역 북쪽 5만여㎡의 부지는 ‘서울역 북부 역세권 개발 기본 구상안’에 따라 2014년까지 대규모 컨벤션센터로 조성될 예정이다. 또 서울역 앞에 조성 중인 ‘대중교통 환승공원’ 사업도 올해 말께 완료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역 주변 10여 곳에 분산돼 있던 87개 노선 버스승강장은 서울역사거리~남대문경찰서 사이 250m 구간에 들어설 환승센터로 통일된다.이 빌딩의 상업 시설 임대 마케팅을 하고 있는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 김낙균 이사는 “건물의 상징성, 교통 편의성 등으로 인해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입점을 원하는 브랜드가 많다”면서 “획기적인 시설 구성을 하고 동선 관리에 신경을 써 새로운 개념의 오피스몰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비단 서울스퀘어뿐만 아니라 최근 서울 도심 속 대형 랜드마크 빌딩들의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특히 사대문 안 건물들은 더욱 분주하다.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곳만 해도 명동을 중심으로 이비스호텔이 입점해 있는 하나명동허브빌딩, 극장체인인 CGV는 물론 국제적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H&M 국내1호점이 입점을 예정한 눈스퀘어(옛 아바타몰), 미국계 패스트 패션 브랜드 포에버21 국내1호점과 스페인계 패션 브랜드 자라가 입점한 M플라자 등 다양하다.빌딩 리모델링이 힘을 받고 있는 이유는 먼저 ‘비용’ 때문이다. 최근의 빌딩 리모델링은 단순히 인테리어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선다. 신축이나 마찬가지로 재탄생한다. 하지만 공사비는 신축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공사 기간 역시 신축과 비교해 절반에 불과하다. 20층 규모 빌딩 신축 시 공사 기간이 2년이라면 리모델링할 때는 10개월이면 족하다.제도적인 측면도 리모델링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게 하는 이유다. 대다수의 빌딩들이 건축 당시 660~670%의 용적률을 적용받아 높게 지어졌지만 지금 신축하면 남산 조망 제한으로 오히려 층수가 낮아진다. 일례로 서울스퀘어의 경우 용적률은 1132%에 달한다.또 리모델링 후의 수익성도 건물주가 계산기를 다시 두드리게 하는 큰 요인이다. 사무실 임대료를 적게는 10%에서 20% 정도 높여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더 고급스럽고 다양한 상업 시설을 유치할 수 있다. 실제로 자라, 유니클로, 포에버21 등의 국제적 패션 브랜드들 대다수가 리모델링을 바로 끝마친 빌딩에 들어와 있다.또 명동이비스호텔이 있는 하나명동허브빌딩의 경우 일본인 투숙객들 덕분에 건물 내 편익시설, 스킨케어 숍, 음식점 등의 상업 시설 매출이 평균 20%가량 늘었다. 당연히 이 건물에 입주하려는 상인들도 늘어났다. 이 건물 관계자는 “지하 1층~지상 2층 상가 중 70%가 임대됐고 나머지 부분도 5월 중 임대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중충한 분위기로 업체들이 입점을 꺼리던 리모델링 전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이와 함께 롯데백화점 옆에 있는 한컴빌딩(옛 삼화빌딩) 역시 리모델링 후 임대 수익이 늘어났고 1층에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입점해 건물 이미지가 크게 개선됐다.발전한 건축 기술도 리모델링을 활성화하는 요인 중 하나다. 서울스퀘어와 함께 서울의 대표적 오피스 빌딩이었던 교보생명 본사 사옥도 최근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준공된 지 27년 만의 일이다. 공사비를 합친 총사업비는 1285억 원으로 대우센터빌딩 사업비 1000억 원대(추정치)를 넘어서는 국내 최대 오피스 리모델링 사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지하 4층~지상 23층 규모로 연면적 9만5244㎡의 이 빌딩에서 추진되는 리모델링은 건물 외관의 경우 교보생명의 전통적 건물 형태인 현재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창호를 밝은 톤으로 교체해 개방적인 느낌을 주도록 할 계획이다. 또 벽으로 막힌 건물 좌우측을 유리창으로 마감하는 ‘커튼 월’ 방식을 도입할 예정이다.교보생명 측은 “이번 리모델링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폐쇄적이었던 기존 건물 외관을 개방해 이미지를 높이는 것은 물론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시큐리티 확보, 교보생명 본사 사용 층과 외부 입주자 동선 분리, 대강당 시설 향상, 전면 로비 확장, 실내 사무 환경 개선 등으로 입주자가 가장 선호하는 건물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에 따라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면 인근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빌딩 수준의 임대료 책정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 빌딩에는 호주대사관 네덜란드대사관 등 외국 기관들이 다수 입주해 있어 임대료 상승에 대한 저항도 적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무엇보다 교보생명 본사 사옥은 대형 빌딩 중에는 국내 최초로 ‘재실(在室) 리모델링’이라는 신공법을 사용하고 있다. 재실 리모델링의 경우 제일 먼저 꼭대기 층부터 4개 층을 비운 상태에서 리모델링을 진행한다. 비워 두는 4개 층 가운데 가장 아래층은 버퍼(buffer) 층이라고 한다. 그 아래층 사무실에 전달되는 소음 진동 분진을 차단하는 층이다. 이 때문에 버퍼 층에서는 최소한의 공사만 이뤄진다. 교보빌딩의 공사를 맡은 대림산업은 3개월에 1개 층의 내부 공사를 완성하는 사이클로 상층부에서부터 아래층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위층의 공사가 끝나면 아래층 입주 회사들이 올라가는 순환 방식이다. 어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교보생명 본사 사옥처럼 초대형 빌딩에서 입주 업체를 둔 상태에서 진행되는 리모델링은 대단한 실험이다. 이 때문에 대림산업은 도면과 설비, 전기 시스템을 이해하고 적용한 경력직 현장 직원들을 현장에 대거 파견하고 있는 중이다.사실 최근 대형 빌딩을 대상으로 리모델링 바람이 불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작은 빌딩에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리모델링에 대한 범위가 제한적이고 규제가 매우 까다로웠기 때문이다.그래서 서울시는 지난 4월 8일 서울시내 일반 건축물에 대한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시는 이를 통해 건설 경기를 살리고 도시 미관을 개선하는 동시에 내진 설계 및 에너지 효율성도 높이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린다는 계획이다.우선 리모델링 가능 연한을 준공 후 20년에서 15년으로 줄였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현재 준공한 지 20년 이상 된 서울 시내 일반 건축물(20가구 이상 아파트 제외) 57만3888동 가운데 리모델링 가능 건물은 50%(28만6758동)에서 78%(45만3309동)로 크게 늘어났다.리모델링을 통한 증축 규모도 건물 연면적 10%에서 30%로 확대되며 그동안 금지돼 온 층수 높이기도 가능해졌다. 또 증축도 과거에는 계단이나 승강기만 가능했지만 지금은 사무실 등 실제 사용 공간도 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증축 시 추가로 만들어야 하는 주차장 규모도 줄여 주거나 설치 의무를 아예 면제해 주기로 했다.시 측은 이 경우 리모델링에 대한 사업성이 크게 높아져 리모델링 시장이 재건축 재개발만큼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15년 이상 된 6층 이상 일반 건축물 5000채 중 5%만 리모델링해도 생산 유발 효과가 1조8000억 원, 취업 유발 효과는 1만6500명에 달한다”고 분석했다.이 밖에 시는 리모델링 건축물들이 단열, 냉난방, 조명 시설을 개선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지난해 건물당 5억 원 한도였던 융자 지원을 올해부터 10억 원(연리 3%, 8년 분할 상환)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김효수 서울시 주택국장은 “그동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던 리모델링 시장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 침체된 건설 경기를 활성화하고 외관 디자인도 개선돼 디자인 도시 서울의 매력이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에너지 절약, 폐자재 절감, 친환경 자재 산업 활성화 등 리모델링을 녹생 성장을 통해 저탄소 도시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세계적 부동산 컨설팅 기업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의 김낙균 이사는 “곧 더 많은 빌딩들이 리모델링에 들어갈 것”이라며 “특히 트렌드에 뒤진 오래된 건물의 경우 새로 짓기에는 경제 여건상 위험부담이 많으므로 리모델링이 더 선호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친환경 녹색 빌딩’에 대한 안팎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리모델링 붐을 예상하게 하는 큰 요인”이라고 덧붙였다.리모델링이 가장 활성화됐다고 볼 수 있는 홍콩의 경우 대다수의 빌딩들이 트렌드에 발 맞춰 건물을 재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여러 여건상 건물 전체에 대한 리모델링이 힘든 경우가 많으므로 대다수의 빌딩들이 눈에 확 띄는 1~2층의 상업 시설을 그때그때 새 단장하며 경제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규제’ 때문이다. 서울스퀘어의 경우 애초에 건물 구조를 포함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추진했다. 하지만 산재해 있는 각종 규제들이 발목을 잡았다. 일례로 건물의 외형까지 바꾸려면 규제에 따라 건물을 세로로 두 동강 내야 승인이 날 정도다.철저한 사전 조사와 시장 예측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건물주의 ‘직감’에 의해 리모델링의 성격이 확 바뀌는 경우가 많다.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이 때문에 리모델링 후 오히려 건물의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례로 서울 최고 상권인 명동에서도 리모델링 후 제대로 된 상업 시설 입주가 안 돼 ‘땡처리’ 업체들이 1~2층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눈에 자주 띈다.뭐니 뭐니 해도 ‘친환경 빌딩’이 대세일 것이다. 서울시는 물론 국토해양부도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비교적 건축한 지 오래된 강북권 빌딩은 외형이나 내부 디자인이 중점이라면 강남은 새 건물이 많기 때문에 이 시장을 주목해야 한다.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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