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선택, 남성의 스타일 척도

술자리에 어울리는 패션 연출법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라는 말이 있다. 요즘처럼 경제가 불황일 때 저가인데도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특정 상품의 판매가 늘어나는 현상을 표현한 말이다. 하지만 본래는 여성들이 립스틱만 바꿔도 표정 및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이처럼 경기 불황에도 여성 소비자들은 작은 구매를 통해 분위기를 바꾸며 기분을 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남성들의 현실은 어떤가.자동차, AV 시스템, 운동기기, 남성 슈트 등 남성들의 주된 소비 아이템이지만 가정에서 허리띠를 졸라맬 때 가장 먼저 구매를 줄이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 남성들은 집에서 눈치만 본다. 그러다 회사 회식이나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생기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즐기며 회포를 푼다.하지만 이런 술자리에서도 술 좀 즐길 줄 아는 남성들은 자세부터 남다르다. 그들은 술자리를 더욱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그 술에 어울리는 스타일과 매너를 지킬 줄 안다.예전에는 주사 없이 주도를 잘 지키는 남성이 신사였다면 요즘은 술자리와 술 종류에 어울리는 스타일까지도 이해하는 남성이라야 젠틀맨이다. 이런 문화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더욱 다양하고 근사하다.그렇다. 이젠 술자리에도 분명히 어울리는 스타일과 문화를 존중해 줘야 한다. ‘그냥 마시고 취하자’는 술 문화는 몸만 버리고 비즈니스도 성공할 수 없다.대표적인 대한민국 국민주, 소주. 추가적인 설명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 남성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최고의 술이다. 필자의 젊은 시절엔 두꺼비 진로가 내 청춘과 함께 있었고 요즘은 소주도 고급화 바람이 불어 3개월에서 길게는 10년간 숙성해 증류와 블렌딩을 거친 고급 소주, 와인처럼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소주, 바다 깊은 곳에서 채취한 해양심층수를 사용하는 소주 등등 다양한 소주들이 나오고 있다. 소주가 좋은 건 언제 누구와 마시든지 부담 없고 편하게 인생의 고통과 기쁨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이처럼 어디에서 누구와도 다양하게 어울릴 수 있는 소주가 있는 자리라면 내추럴하면서 편안한 ‘컴포트 캐주얼 룩’을 추천한다. 말은 조금 어렵지만 알고 보면 베이직 아이템으로 매치할 수 있는 룩이다. 세월이 가도 유행을 타지 않는 폴로 랄프로렌의 치노 팬츠(13만 원대) 혹은 빈폴의 네이비 노턱 팬츠(12만8000원)와 함께 합리적인 가격이면서도 몸에 착용감이 좋은 유니클로의 옥스퍼드 셔츠(3만 원대)나 라코스테의 클래식 피케셔츠(9만 원대)를 매치한 뒤 스트라이프 캔버스 톰스 슈즈(4만9000원) 정도를 잘 신어준다면 최고의 소주 모델 이효리나 송혜교도 당신에게 흔들릴지 모른다.‘리큐어’라고 하면 다소 생소한 사람들이 많을 줄 안다. 최근 클럽이나 라운지 바에서 많이 판매되고 있는 리큐어는 증류주를 증류하는 과정에서 각종 약초나 향초를 넣어 그 향이 우러난 술이다. 과일, 천연 허브 등을 주원료로 하기 때문에 높은 도수지만 맛과 향은 쓰지 않다.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대표적인 리큐어는 오렌지 과피로 만든 ‘캄파리’나 커피 리큐어 ‘깔루아’, 감귤 리큐어 ‘만다린’, 허브 리큐어 ‘예거마이스터’ 등이 있는데 필자가 평소 즐겨 마시는 리큐어는 바로 ‘예거마이스터’다. 독일이 원산지인 예거는 허브 리큐어로 섭씨 영하 18도에서도 얼지 않아 시원하게 마실 수 있다. 클럽이나 바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이사이에 마시면서 분위기를 한방에 끌어 올리는 술인 일명 ‘비어 체이서(Beer Chaser)’로 미국에서 많이 애용되고 있으며 한 잔의 평균 가격은 5000~8000원 정도이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또한 에너지 음료와 혼합해 만든 칵테일 ‘예거밤’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우리의 폭탄주 문화와 비슷한 효과를 준다. 하지만 다음날 두통이 거의 없어 신나는 일이 있어 마음껏 취하고 싶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회식 자리엔 아주 그만이다.리큐어 샷은 클럽이나 바에서 마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날 만큼은 정제된 섹시룩이 적합하다. 리바이스 인디고 데님(17만 원대)을 살짝 롤업하거나 피트감이 좋은 클럽모나코 블랙 팬츠(10만 원 후반대)에 타이트한 화이트 셔츠나 블루 셔츠를 매치해 보면 어떨까. 이때 셔츠 단추는 세 개쯤 풀어줘야만 섹시하게 보일 수 있다.마지막으로 곱게 다듬어진 수염과 검정 뿔테 안경은 당신을 더욱 섹시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 정도면 ‘예거밤’ 같은 리큐어를 거칠게 마신 당신이 여자 친구의 눈에는 다니엘 헤니처럼 보일 것이다.“샴페인도 와인이야?”라고 묻는 사람들이 아직 가끔 있다. 샴페인은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발포성 와인에만 붙일 수 있는 스파클링 와인의 지명이 특허처럼 붙어 생긴 이름이다. 쉽게 말하면 샴페인은 상파뉴에서 생산되는 발포성 화이트 와인인 것이다. 이 밖에 미국 호주 칠레 등지에서 생산되는 발포성 와인은 그냥 스파클링 와인(Sparkling Wine)이라고 부른다.인류 최초로 샴페인을 발견한 맹인 수도사 ‘돔 페리뇽’은 샴페인 발견 당시 별을 봤다고 한다. 그가 느낀 혀 위의 샴페인은 그만큼 빛나면서도 깊었을 것이다. 이런 샴페인을 따른 잔을 손에 들고 있는 당신은 하늘에 빛나는 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자리에선 빛나야 하지 않을까. 여성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기도 하는 샴페인은 남성들만의 술이라기보다 남성이 여성의 마음을 품위 있게 사로잡을 때 아주 효과적인 소위 ‘작전 주’다.황금빛 수려한 액체를 담은 샴페인 잔과 어울리는 건 당연히 시크한 블랙 슈트다. 이번 시즌 ‘띠어리맨(100만 원대)’이나 작년 국내에 정식 론칭한 브랜드 ‘존 바바토스’의 톤업된 그레이 슈트에 화이트 셔츠를 입고 체크 보타이로 마무리한다. 이때 주의할 것은 화려한 타이나 행커치프, 셔츠 커프스링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미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황금빛 잔 자체가 너무나 멋지게 빛나는 액세서리가 되어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아직 국내에 마니아 층이 얇은 싱글 몰트위스키는 한 증류소에서 한 가지 품종의 보리(100%)만으로 증류한 위스키를 일컫는다. 그래서 싱글 몰트위스키는 숙성 연도와 상관없이 남성들을 위한 최고의 술이다.국내에 판매되고 있는 대표적인 싱글 몰트위스키는 ‘글렌피딕’ ‘맥캘란’ ‘글랜모렌지’ 등이 있는데 필자가 좋아하는 것은 단연 맥캘란(Macallan)이다. 싱글 몰트위스키마다 각각의 향과 빛깔이 있는데, 특히 맥캘란은 한 잔을 따르면 그 향이 공간 전체에 퍼지게 하는 신비로운 능력을 갖고 있다.연수가 낮으면 여물지는 않지만 고소하고 담백한 흥취가 느껴지고 18년산 이상은 정열적이어서 열감은 덜하지만 연륜이 있어서인지 세월을 담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조용한 바, 혹은 집에서 혼자 가볍게 마셔도 오래된 친구와 한잔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어 지친 남성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기특한 술이다.이런 근사하고 남성적인 싱글 몰트위스키의 멋과 흥취를 헤아릴 수 있는 당신이라면 무슨 패션 스타일이 더 필요할까. 싱글 몰트위스키가 주인공인 술자리는 약간의 카리스마와 클래식함이 묻어난다. 이런 술자리에선 무엇보다 술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욱 신경이 쓰인다. 다행히도 작년부터 불어온 클래식 슈트의 열풍 덕분에 예전보다 클래식 슈트를 구매하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 클래식과 기본에 충실한 ‘키톤’의 블랙 슈트나 ‘체아제 아똘리니’ 스리피스 슈트를 입은 당신은 방금 나폴리에서 도착한 인상을 심어줄 것이다.친구들과의 만남에 슈트가 조금 불편하다면 ‘브룩스 브라더스’의 금장 단추가 달린 네이비 더블 브레스트 재킷(64만9000원)이나 ‘로로피아나’가 리넨 소재로 만든 코르도바 재킷(200만 원 후반대)을 콤비로 입어준다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당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서 상상할 것이다.그간 취하기 위해서만 술을 마셨다면 오늘은 무슨 술을 마시고 어떻게 근사한 기분으로 이 세상을 용서할까 고민해 보자.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도 매우 지친 대한민국 남성들이여! 술 한잔의 여유 속에서 남성적인 멋과 스타일을 안주 삼아 새로운 미래를 위해 에너지를 재충전하자. 단, 과음은 간을 위해 금물이다.1994년 호주 매쿼리대학 졸업. 95~96년 닥터마틴·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지큐·앙앙·바자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버블 by 샴페인맨’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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