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과 투자

몇 해 전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마야의 태양력을 사 왔다. 둥근 원판에 화려하면서 복잡한 마야 태양력은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곁들여져 있었다. 그 후 여러 나라의 고대 달력을 찾아보는 취미가 생겼다. 우리나라는 달이 삭망(朔望)하는 1개월로 1년을 만든 음력을 사용해 왔다. 농사 때를 맞추기 위해 24개의 절기를 만들고 제때 해야 하는 일을 부지런하게 챙기며 살아왔다.이제는 세계적인 공업국가로 탈바꿈했지만 아직도 설날, 추석 등 명절은 음력으로 지내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달력이 말하는 1년이라는 기간을 넘기지 못하는 투자 경향을 갖고 있는 듯하다. 2007년 주식시장이 호황일 때 펀드 투자자들의 평균 투자 기간을 조사해 보니 330일 정도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지금과 같은 침체장에서 큰 손실을 보고 있는 동안은 본의 아니게 투자 기간이 2년으로 늘어나는 현상도 발견됐다.우리의 투자 문화는 상당히 열악하다. 개인이나 기관투자가나 모두가 1년 단위로 자산을 운용한다. 더구나 유행을 심하게 타기 때문에 주가가 상승하면 밀물처럼 자금이 몰려들고 주가가 하락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이런 단기 투자, 유행을 타는 투자 문화는 지난 20~30년간 지속돼 오고 있다.우리 경제는 수출 주도형 경제이므로 주가와 금리가 대외 변수에 의해 급등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은 세계적으로 변동성이 높은 자본시장을 가진 국가에 속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우리의 투자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첫 번째로 기대 수익률을 낮춰야 한다. 3%대로 떨어진 정기예금 금리와 2.5%에 불과한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본다면 물가상승률과 이자소득세를 빼고 나서 투자자들이 찾는 실질 수익률은 마이너스 상태다. 아무리 주식, 채권, 부동산에 분산 투자하더라도 10%대의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둘째, 최소한 5년 이상의 장기간 투자하는 마인드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해 말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웠던 신용 경색기에 채권에 투자했다면 우량 회사채를 10%대에 매수할 수 있었다.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자금을 운용하다 보면 저금리나 주가 폭락기에 걸려들 확률이 높아진다.셋째, 역투자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나라 주식 펀드의 경우 거의 절반에 가까운 자금이 코스피지수가 1800선에 이르렀을 때 유입됐다고 한다. 주가가 폭등할 때 비싼 값에 주식을 매수하고 주가가 폭락하면 헐값에 주식을 매도하는 방식으로 투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금과 같이 미래가 불투명하고 시장이 침체돼 있는 어려운 시기에 내재 가치보다 훨씬 싼값에 우량한 증권을 매수하는 역투자가 필요하다. 이런 속성 때문에 역투자를 가치 투자(value investment)라고 부르는 것이다.넷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념을 바꿔야 한다. 세계 최고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 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부동산 가격에 대한 우려를 버릴 수 없다. 1994년 고령사회가 시작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 있는 일본의 사례를 굳이 들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노후 자금이 부족하고 연금제도와 같은 사회보장이 부실한 우리 사회에서 유일한 재산인 부동산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미래가 짐작될 수 있다.경제 위기로 해소되지 않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투자 자세를 되돌아보고 자산관리 방법을 새롭게 진단해 보는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세계적 투자 명인인 워런 버핏도 ‘시장의 공포를 사고 낙관을 팔아라’고 말하고 있다. 1년이라는 달력에 얽매이는 투자가 아니라 5년, 10년 후를 바라보고 큰 그림을 그리도록 하자.동양종금증권 자산관리컨설팅 연구소장약력: 1961년생. 연세대 경영학 박사(투자론). 89년 대한투자신탁. 97년 투자신탁협회. 99~2008년 한국펀드평가 대표이사. 2008년 동양종금증권 자산관리컨설팅연구소 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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