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족 급증…‘아껴야 살아남죠’

‘불황? 우리는 그런 거 몰라요.’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미소 짓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몰라 오히려 표정을 관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들의 공통점은 다소 생소한 용어인 ‘6R 산업’에 종사한다는 것. 그렇다면 6R 산업이란 무엇일까?불황 속에서 호황을 맞고 있는 6R 산업을 심층 분석한다.한국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으며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불황 속에서도 떠오르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6R 산업이다. 6R는 수선(Reform) 재충전(Refill) 재활용(Recycling) 위험관리(Risk) 보상(Reward) 오락·도박 (roulette) 등 6가지 분야를 말한다. 실제로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2009년 트렌드 중 하나로 6R 산업의 성장을 예상했다.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소비자들은 ‘아나바다(아끼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식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다. 신제품을 구매하기보다 기존 제품을 재활용하거나 수선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수선, 재충전, 재활용 산업이 떠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 기업들도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수선, 재충전 중심의 상품 구성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며 리스크 관리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소비자들은 ‘아나바다’ 외에 보상을 기대하며 한탕주의식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경품, 마일리지, 쿠폰 등 리워드(Reward) 이벤트에 적극적이다. 오락 산업과 사행성 산업 또한 붐을 이루고 있다. 6R를 분야별로 하나씩 소개한다.의류나 가구를 리폼해서 사용하는 ‘알뜰족’이 증가하고 있다. 알뜰한 소비자들은 신제품 소비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있다. 특히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신제품과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온라인을 통해 알려지면서 리폼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20여 년간 의류 리폼 일을 전문으로 해 온 리폼하우스의 대표 이나연 씨는 “작년 상반기 기준으로 하반기에는 15% 정도 리폼 의뢰 건수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리폼 대행 업체를 통한 의류 리폼은 전문가와의 코디네이션 과정을 통해 유행이 지난 옷을 새 옷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또한 게스는 명동 매장 2층에 기존 제품을 고객 취향에 맞춰 고쳐 주는 ‘리폼 하우스’를 선보였다. 석보애 게스코리아 차장은 “실용적인 소비를 원하는 기성세대와 자신만의 옷을 입고 싶어 하는 신세대를 위한 신개념 서비스로 리폼 하우스가 생긴 이후 방문 고객이 20% 늘고 매출도 12%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직접 리폼하는 DIY(Do It Yourself)의 증가와 함께 DIY 관련 산업도 불황 속 호황을 누리고 있다. 국내 대표적 온라인 쇼핑 업체인 옥션에 따르면 재봉틀과 신발 밑창 관리 등 리폼 상품이 작년 12만5000개가 팔려 ‘옥션 2008년 히트상품20’ 1위로 뽑혔다. 옥션 홍보팀 관계자는 “리폼 상품 판매량이 전년 대비 90%가량의 상승을 이루는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접 리폼한 작품을 온라인에 올리는 블로거들도 증가했다. 노하우를 공개해 네티즌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네이버 2008 파워블로그’로 뽑힌 ‘희나네집‘이다. 기업의 새로운 제품 판매 채널로 인기를 끌고 있는 블로그에서 리폼 관련 블로그들도 새로운 영역으로 인정받고 있다.불황의 상징 중 하나인 ‘리필’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단연 판매량이 가장 많은 리필제품은 샴푸, 세탁용 세제, 주방용 세제 등 가정용 소비재다. 롯데마트의 주방 세제 상위 5개 제품 중 5개 제품 모두 리필용이었다.노원구에 사는 주부 이미경 씨는 “가계 지출을 줄이기 위해 리필제품 위주로 구매하고 있으며 된장 고추장 등도 리필제품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또 이 씨는 “돈도 절약하고 환경도 생각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밥은 싼 것을 먹어도 커피는 비싼 것을 마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양한 계층에 걸쳐 커피가 사랑받고 있다. 리필 열풍에 새롭게 합류하게 된 주자가 바로 이 ‘커피’다.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는 고객은 물론 데이트 비용을 아끼려는 연인끼리 커피를 한 잔만 시키는 등 다양한 고객들이 리필을 활용하고 있다.크리스피 크림 도넛은 스무드 커피를 무료로 리필해 주고 있으며 버터핑거 팬케익은 일부를 제외한 모든 커피를 무료로 리필해 주고 있다. 탐앤탐스와 세븐몽키스는 아메리카노를 500원에, 할리스커피는 1000원에 리필해 주고 있다. 화장품 리필제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기초 제품과 파우더는 물론 립스틱 리필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화장품 리필제품의 경우 일반 제품보다 가격이 10~20% 싸며 불황이 시작된 2008년의 경우 전년 대비 매출이 18~20% 상승했다. 또한 육류 탕류 주류 등 먹을거리 리필과 잉크 등 사무용품 리필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리필제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리필이 확실히 절약에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경기 불황으로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서울 시내 식당 중 폐업한 곳은 545건, 휴업 6201건, 명의 변경은 1420건 있었다. 또한 10곳의 새로 연 가게 중 7~8곳은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폐업 컨설팅 업체와 폐업 정리 업체 등의 재활용 산업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자영업자들은 폐업할 때 임대료와 중고 물품 처리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폐업 컨설팅 업체는 자영업자들의 폐업 정리와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점포 정리 업체는 폐업 후의 중고 물품 정리와 거래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고경진창업연구소의 고경진 소장은 ‘망할 때도 잘 망해야 한다’며 폐업 컨설팅은 단순히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으로 나아가는 재활 프로그램의 일부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폐업 업체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다시 창업한다. 경기 불황으로 인해 창업 시 폐업 정리 업체를 통해 중고 물품들을 이용하는 알뜰 창업주들이 많아지고 있다. 중고 물품들을 모아 수선해 되파는 일을 하는 차모 씨는 “경기 불황이라는 지금 오히려 일거리가 늘어나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라며 불황 속에서도 즐거운 웃음을 짓는다.폐업 시 폐업 컨설팅을 받거나 폐업 정리 업체를 이용하는 비율은 3~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앞으로 폐업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창업을 하기 위해 폐업 전문 업체를 이용할 고객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기업들은 글로벌화로 외부 변수가 증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경기 불황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임원 임금 삭감과 예산 감축에 나서는 등 생존을 위해 초긴축 경영에 돌입했다.하지만 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과 다르게 컨설팅 자문 건수는 증가했다. 컨설팅 수요 증가에 발맞춰 중소기업청은 ‘쿠폰제 컨설팅 지원 사업’에 참여할 중소기업을 2월 1일부터 10일까지 모집했다. 이 사업은 컨설팅을 받는데 어려운 중소기업에 전문가를 파견해 경영, 기술 분야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해 주는 것으로 1200여 중소기업에 총 175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의 경영 혁신을 지원한다.국내의 대표적 컨설팅 업체로는 KMAC, 와이즈포스트파트너즈, 어니스트경영컨설팅 등이 있다. 리스크 컨설팅을 담당으로 하는 컨설팅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경기 침체로 작년부터 리스크 컨설팅 자문 건수가 꾸준히 늘었고 최근에는 그 수가 더욱 많아졌다”고 말했다. 관계자가 밝힌 대표적인 컨설팅 업무는 구조조정 컨설팅이다. 구조조정의 본래 목적은 기업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지만 최근에는 기업 회생을 위한 것으로 변형돼 쓰이고 있다. 기업들은 컨설팅에 대한 적절한 타이밍을 잡기 어렵지만 생존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컨설팅을 받는다. 그 가운데 컨설팅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불황 속에서도 강세를 띠는 것이다.소비자가 지불하는 일정의 금액에 대한 보상으로 기업들은 경품, 마일리지, 쿠폰 등을 제공하고 있다. “고가의 제품보다 많은 수의 고객에게 생활필수품을 경품으로 주는 추세”라는 홈쇼핑 업체 관계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경품 트렌드는 생활필수품이다.CJ홈쇼핑은 지난 1월 10일 홈쇼핑 상품을 구입한 모든 고객에게 신라면 20개들이 1상자를 사은품으로 주었으며 1월 17일에는 뽀삐 화장지 12롤을 전 구매 고객에게 지급했다. 또한 지난 1월 21일까지 제품 구매자 중 2009명을 추첨해 참그린 주방 세제, 크리넥스 티슈 등 생활필수품을 주는 경품 행사를 진행했다.현대홈쇼핑은 지난 1월 11일 상품과 액수에 상관없이 홈쇼핑 방송을 통해 상품을 구매한 모든 고객에게 삼양라면 20개들이 1상자씩을 무료로 증정했다. 또한 경기 침체로 호주머니가 얇아진 고객들은 마일리지, 쿠폰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수원에 사는 대학생 윤소영 씨는 “귀찮더라도 카드 지갑에 자주 가는 레스토랑의 마일리지 카드, 쿠폰 등을 챙겨 똑똑한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윤 씨는 “학교 앞에 있는 커피숍에서 2000원씩 10번을 이용하면 2000~3500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과 카드사들도 리워드에 적극적이다. KB카드는 고객들이 카드 실적으로 모은 KB포인트리로 G마켓, 옥션(Action), 신세계 몰, 롯데닷컴, Yes24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결제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기업들이 고객들의 경제 상황을 고려한 보상형 마케팅을 늘림에 따라 똑똑한 알뜰족이 증가하고 보상형 비즈니스도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소득 감소로 인해 저렴한 비용으로 취미 생활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온라인 게임 산업이 붐을 이루고 있다. 불황 여파로 한탕주의적 경향이 짙어짐에 따라 사행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경기방어주라고 불리는 온라인 게임 업체의 대표 주자인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최근 3달 사이에 2배 이상 상승했다. 아직도 건재한 대표 게임 ‘리니지1, 2’와 신작 게임 ‘아이온’의 상승세 덕분이다.신작 ‘아이온’은 경기 불황 속에서 게이머들의 외면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접속자가 늘어나 서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2만 원이면 한 달 동안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의 특징 때문이다. 국내 대표 게임 포털 사이트 한게임을 운영하고 있는 NHN 역시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16% 상승하며 고속성장하고 있다.경마장, 카지노, 로또 등의 사행성 산업도 불황을 모른다. 강원랜드는 지난해 4분기 순이익이 시장 대비 30% 상승하며 780억 원을 기록했다. 서울의 한 경마장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불황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마사회는 2008년 작년보다 13% 증가한 7조40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로또 판매량 또한 경기 침체가 본격화된 지난해 9월 이후 전년 동기 대비 4% 이상 증가했다. 2003년 이후 해마다 로또 판매율이 12%씩 줄었던 점을 감안하면 판매량 증가 폭은 엄청나다.불황 속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과 심리를 공략한 오락, 도박 산업은 경기가 호전되지 않는 한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취재= 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 / 박시온·장현진·황지현 인턴기자(경희대 경영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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