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비틀’…1달러 커피 팔아

스타벅스의 굴욕

세계 최대 초콜릿 회사인 허쉬초콜릿은 불황 속에서도 ‘달콤한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4분기 순익이 전년 동기 대비 51% 급증한 8220만 달러(주당 36센트)를 기록했다. 매출은 13억8000만 달러로 3% 늘어났다. 스위스 초콜릿 업체인 린트 앤드 슈프륑리도 지난해 매출이 5.8% 증가했다고 발표했다.불황 속에도 잘나가는 초콜릿 회사들의 배경엔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가 자리 잡고 있다. 립스틱 효과란 경기 침체로 전체적인 소비가 감소할 때 일부 저가 아이템은 오히려 매출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사람들이 자동차 카펫 가구 같은 고가 내구재 소비를 자제하는 대신 립스틱 등 상대적으로 적은 지출로 위안을 삼는다는 것이다. ‘불황 속의 작은 사치’를 즐긴다는 얘기다.립스틱 효과는 꼭 립스틱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초콜릿 한 조각일 수 있고,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일 수도 있다. 초콜릿에는 행복감과 관련된 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과 아난다마이드(anandamide)가 소량 들어 있다. 달콤 쌉싸래한 초콜릿 맛이 행복감을 주는 이유다. 적은 돈으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인 만큼 오히려 불황에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허쉬초콜릿 측은 경기 침체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고가 프리미엄 제품 판매가 줄었지만 저가 제품의 판매 증가가 이를 상쇄하고 남았다고 설명했다. 허시의 데이비드 웨스트 최고경영자(CEO)는 “소비자들이 허시초콜릿바와 과자류인 킷캣, 리즈피넛버터컵 등의 저가 제품으로 소비 패턴을 바꿨다”며 “키세스 등 프리미엄 제품의 매출은 정체 상태”라고 밝혔다. 불황기에 주머니가 얇아진 소비자들이 저가 식료품을 선호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가격은 불황 속의 가장 확실한 성공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기류를 타고 떠오르는 곳이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업체인 맥도날드다.맥도날드는 1달러 메뉴와 저가 커피 등의 매출 증가에 힘입어 양호한 성적표를 내놓았다. 이 회사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55억7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3% 감소했지만 신규 점포를 제외한 13개월 이상 된 동일 점포 매출은 전 세계에서 7.2% 증가했다.특히 맥도날드가 불황을 이기는 원동력은 2007년부터 꾸준히 추진한 맥카페 사업이다. 맥도날드는 기존 커피보다 한 단계 수준을 높인 라테 카푸치노 모카 프라페 등을 경쟁 제품보다 20~30% 싼값에 내놓으며 불황기에 립스틱 효과를 누리려는 소비자를 유인하는데 성공했다.이런 불황기 트렌드 앞에 커피의 명가 스타벅스도 손을 들고 말았다.스타벅스는 그동안 고수했던 고가 브랜드 전략을 접고 다음달부터 1달러짜리 인스턴트커피를 판매하기로 했다. ‘스타벅스 바이어’라는 이름의 인스턴트커피는 별도 포장에 들어 있어 바로 물을 붓고 타 마실 수 있도록 돼 있다. 1팩에 3봉지가 들어 있으며 팩당 가격은 2.95달러다. 한 봉지에 1달러도 안 되는 셈이다.스타벅스는 또 매장의 바리스타(커피를 만드는 전문가)들에게 스타벅스의 평균 음료 가격이 3달러 밑이라는 점을 손님들에게 주지하라는 내용의 교육도 진행해 ‘고가 이미지’ 벗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와 함께 오는 3월 3일부터 미국 내 스타벅스 매장에서 간단한 아침식사에 카페라테 한 잔을 곁들인 아침 메뉴를 3달러95센트(5500원 상당)라는 저렴한 가격에 선보일 예정이다.콧대 높은 스타벅스도 사상 최악의 위기 앞에 자존심을 접고 립스틱 효과에 편승한 셈이다. 매출 부진에 허덕이는 스타벅스는 최근 국내외 300개 매장을 폐쇄하고 7000여 명의 인력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뼈를 깎는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위기의 스타벅스를 구하기 위해 다시 경영 전면에 등장한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창업자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수년간 불황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며 “이런 환경은 소비자들의 행동 양식도 바꿔놓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불황기에 자존심을 벗어던진 스타벅스의 전략이 성공할지 주목된다.유병연·한국경제 기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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