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등의결권 주식과 주주 민주주의

최근 글로벌 금융 위기로 우리나라의 기업 가치가 하락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다른 나라들에 비해 경영권 방어 수단이 취약한 상황이다. 법무부는 가장 효율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알려진 포이즌필(기존 주주들에게 신주를 발행해 적대적 매수자 지분율을 낮추는 수법으로 기업 인수에 드는 비용을 늘림으로써 적대적 매수를 저지하는 방어책)을 도입하기 위한 상법 개정 초안을 마련해 곧 국회에 상정할 예정이지만 반대 의견이 많아 전망은 불투명하다.더구나 포이즌필과 같이 논의돼 왔던 차등의결권 주식은 개정 초안에서 아예 제외된 듯하다. 그러나 포이즌필과 마찬가지로 차등의결권 주식도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는 관점에서만 볼 경우 제도의 본질을 흐릴 위험이 있다.차등의결권 주식은 우리나라 회사법의 기본 원리로 자리 잡고 있는 ‘1주1의결권’과 ‘주주 민주주의’라는 더욱 근본적인 원칙들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1주에 2개 이상의 의결권이 있는 차등의결권 주식은 이러한 기본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므로 현재로서는 발행될 수 없다. 이것은 주주의 지위에 대한 다음과 같은 논리적 설명의 당연한 귀결이다.주주들은 회사의 다른 이해관계인들이 사전적으로 회사와 계약을 통해 확정해 놓은 계약상 권리를 모두 충족시켜 주고 남은 회사의 잔여 이익에 대해 자신의 소유 주식 수만큼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므로 회사의 경영 성과에 가장 민감한 이해당사자들이다.따라서 회사의 통제 수단인 의결권을 주주들이 소유한 주식의 수만큼만 부여해야 모든 주주들이 회사의 잔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영진을 철저히 감시하려는 최적의 인센티브가 생긴다. 그리고 회사 지배권 시장(적대적 M&A)을 통한 경영진 감시 기능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1주1의결권 원칙이 전제돼야만 한다.그러나 1주1의결권과 주주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논리적 설명이 타당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만 한다. 첫째, 모든 주주들이 회사의 잔여 이익 극대화라는 목표에 대해 동일한 이해관계와 동일한 선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경영진은 틈만 나면 주주의 눈을 피해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고 할 것이므로 주주들의 강력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우선 주주들은 회사의 단기 이익과 장기 이익, 배당과 지배권 등에 대해 다양한 선호를 가지고 있으므로 첫 번째 조건은 타당하지 않다. 회사 지배권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히려 싼 가격에 주식을 구입해 더 많은 배당을 받기를 선호하는 주주와 그 반대의 경우를 선호하는 주주 사이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 바로 차등의결권 주식이다. 또한 새로운 금융 수단의 발전으로 일반적인 주식 증권에 파생상품(옵션, 선물, 스와프)을 내장해 주주들의 다양한 선호에 보다 잘 부응할 수 있게 됐다.경영진은 주주들의 철저한 감시가 없으면 항상 사적 이익을 추구할 것이라는 두 번째 조건 역시 경제학에 심리학이 접목되며 최근 발전하고 있는 행동경제학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여기서는 인간 행동 원리에 대한 다양한 실증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은 항상 자신만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주주 민주주의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영진을 감시하기 위해 모든 주주들이 1주1의결권 원칙을 원하고 있다고 가정하며 이것을 제도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시장에서 다양한 성향의 주주들이 계약을 통해 자신들의 선호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이러한 선호가 ‘회사 전체’의 이익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약력: 1970년 서울 출생. 중앙대 경제학과 졸업. 연세대 법학석사·박사. 2005년 연세대 법학연구소 연구원. 2007년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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