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서 정통 사극으로…‘일지매’의 귀환

연기자 정일우

“황인뢰 감독님이란 얘기만 듣고 아무것도 안보고 (주인공 제의를) 오케이했죠.그런데 촬영하면서 엄청나게 혼났어요. ‘정일우가 나오면 안 된다, 정일우는 없다고 생각하라’며 정말 저를 쥐 잡듯잡으셨거든요.”(웃음)MBC 일일 시트콤 ‘거침 없이 하이킥’의 ‘윤호’로 일약 청춘 스타덤에 오른 연기자 정일우(22)가 1년 반 동안의 공백을 깨고 MBC 수목 미니 시리즈 ‘돌아온 일지매(김광식 도영명 극본, 황인뢰 김수영 연출)’로 안방극장에 컴백했다.고(故) 고우영 화백의 만화 ‘일지매’를 원작으로 제작된 ‘돌아온 일지매’는 지난해 7월 종방된 SBS 드라마스페셜 ‘일지매’가 퓨전 사극을 표방한데 비해 고 화백의 만화적 상상력에 황인뢰 감독의 극적인 상상력이 더해진 정통 사극. 사실(fact)에 근거한 픽션(fiction)이어서 ‘팩션 사극’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대만 일본 한국으로 이어지는 3개국 로케이션 촬영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1월 첫 방송 때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순조롭게 출발한 ‘돌아온 일지매’는 오는 4월까지 총 24부작으로 방송될 예정. 야외촬영 분량이 많다 보니 1주일 내내 강행군은 기본이다. 탐관오리의 재물을 훔쳐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이자 협객인 ‘일지매’ 역할에는 시대의 영웅이 겸비한 강렬한 카리스마와 함께 노련한 무술 솜씨까지 요구된다.“목소리 톤은 물론 눈빛 연기도 중요한데 눈에 힘만 준다고 카리스마가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사실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는데 처음 시작할 때보다는 제 자신이 한결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고수는 여유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 여유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발현된다면 눈에 힘 줄 필요가 없죠.(웃음) 작품을 하는 동안은 ‘일지매’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어차피 연기는 정일우가 하니까 그렇게 보면 ‘일지매’도 정일우의 한 부분인 셈이죠. 사실 ‘욱’하는 다혈질 성격은 일지매랑 저랑 비슷한 부분이에요.(웃음)”의적 ‘일지매’는 광해 4년 참판까지 지낸 아버지와 노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난 인물로 아버지의 출세를 위해 버려진 뒤 열공 스님에 의해 청나라로 입양됐다. 여자 못지않은 수려한 외모를 지녔지만 사실상 최고의 무예를 갖춘 협객으로 중국의 ‘응조권’, 일본 닌자들의 ‘인술’, 조선의 ‘장백검법’을 겸비한 무예의 고수로 그려진다.“하도 많이 다쳐서 이제 타박상 정도는 부상이랄 수도 없어요.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운동으로 단련했던 터라 무술 수업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편이었어요. 단, 한 가지 원작 속의 일지매는 키가 작고 호리호리한 체구인데 비해 저는 키가 큰 편이라 기생 분장을 하니까 여자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랄까요.(웃음)”촬영이 한 템포 느슨해질 때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액션스쿨에서 하루 7시간씩 연습한 덕분에 웬만한 액션 신은 대역 없이 소화할 실력을 갖추게 됐다.연기자 정일우를 일약 청춘 스타덤 대열에 올려놓은 작품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시트콤 ‘거침 없이 하이킥’. 그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까지 촬영이 강행됐지만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이왕 연예계로 발을 들일 때부터 사생활은 없다고 각오했었거든요. ‘하이킥’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얻었고 또 정일우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던 고마운 작품이죠. 연출을 맡으셨던 김병욱 감독님은 은인이자 제겐 아버지 같은 분이죠.”고교 1학년 때 우연히 연극부에 들어가면서 연기와 인연을 맺은 그는 고2 때 스스로 기획사를 찾아가 소속사를 섭외한 ‘준비된’ 연기자였다. 2년간의 트레이닝 과정을 거치며 50여 차례 이상 오디션에 탈락한 뒤 얻은 결실이 영화 ‘조용한 세상’의 어린 정호 역. 중간 중간 그만두고 싶다는 유혹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한번 시작한 일을 스스로 포기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일련의 조용한 행보 속에 비교적 빨리 ‘안타’를 터뜨린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MBC 일일 시트콤 ‘거침 없이 하이킥’이 그것이다.“사실은 ‘하이킥’ 종영 후 ‘윤호’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다가왔어요.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고, 또 초조하고 불안해하기도 했죠.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여기저기서 출연 제의가 많았지만 다 뿌리치고 저를 위한 성숙의 시간을 가졌어요. 소위 ‘떴다’고 해서 ‘윤호’랑 비슷한 캐릭터를 우려먹는 것도 싫었거든요. 서울예대에서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학교를 옮기고 영어와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기본기를 다졌어요. 그러다 ‘일지매’를 만난 거고요.”다시 신인의 자세, 배우겠다는 자세로 돌아간 그는 시청률이란 숫자적 잣대에 연연해하지 않을 작정이다. ‘돌아온 일지매’를 통해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며 자신이 업그레이드됨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했다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지난 공백이 좀 길었는데 앞으로 2~3년간은 작품을 계속하고 싶어요. 아마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진 딴생각하지 않고 연기만 할 것 같은데요.(웃음)”연기 3년차인 정일우는 드라마 외에도 ‘햇반’ ‘애니콜’ ‘비타500’ ‘꽃을 든 남자’를 비롯해 10여 편의 CF를 찍은, 광고모델로서도 상한가를 달리는 ‘블루칩’ 연기자다. 20대 초반에 CF 수입만도 상당할 것 같은 그의 재테크 전략이 궁금해졌다.“일단 부모님께 모두 드리고 용돈 받아 써요. 친구들이 아직 학생들이라 밥도 사고 하다 보면 부족하지만 어쩔 수 없죠, 뭐. 재테크요? 물론 관심이 많죠. 그런데 펀드는 위험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주식시장이 좋을 때 하도 펀드, 펀드하기에 저도 부모님과 상의해 적지 않은 돈을 넣었는데 지금 70% 정도 손해 보고 있어요. 하하하…. 펀드보다 부동산이 나은 것 같아요. 땅이든 집이든 한 가지는 제대로 마련해 놓은 뒤 기회가 오면 적당한 곳에 여윳돈을 투자할 수 있게 준비해 둬야겠다는 생각이에요.”펀드 투자로 ‘큰코’다친 뒤 그는 다시 개미처럼 차곡차곡 모으는 전통적 재테크 방식을 고수하는 중이다. 아직 종신보험은 없지만 한 차례 큰 교통사고를 당한 후 상해보험만큼은 든든한 옵션으로 들어둔 상태.“가장 존경하는 연기자는 이순재 선생님이에요. 특정한 역할이나 작품에 대한 욕심보다는 어떤 것이든 제게 어울리는 역할이라면 도전해서 소화해 보고 싶어요. 매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한 단계씩 성장해 가고 싶습니다.”서늘한 ‘일지매’의 눈빛 뒤에 숨겨진 선하지만 뜨거운 연기자 정일우의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약력: 1987년생. 184cm의 훤칠한 외모로 2006년 영화 ‘조용한 세상’으로 데뷔. MBC 일일 시트콤 ‘거침 없이 하이킥’의 ‘윤호’역으로 일약 청춘 스타덤에 오름. 2007년 영화 ‘내사랑’ 이외 10여 편에 이르는 CF 출연. 현재 지난 1월 방영을 시작한 MBC 수목 미니 시리즈 ‘돌아온 일지매’에서 ‘일지매’로 출연 중.장헌주·객원기자 hannah3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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