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처럼 경영하라① - 메디치의 위기 경영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월례 인문학 조찬 모임인 ‘메디치 21’이 요즘 인기다. 메디치 가문의 경영 기법을 응용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메디치 효과’란 책도 있다. ‘현대인이 알아야 할 부(富)와 경영의 모든 것’이란 다소 과장된 부제를 단 이 책은 메디치 가문을 “역사상 최고의 부자다. 그들은 빌 게이츠보다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 신에 버금갈 권위를 가진 교황청은 물론 절대왕권을 가졌던 유럽 각국의 왕들도 그에게 머리를 숙이고 돈을 빌려갈 정도였다”며 마음껏 메디치 가문을 치켜세운다. 여기저기서 메디치 가문을 부러워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메디치 효과’를 이야기하면서 메디치 가문의 경영술을 배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10회에 걸쳐 연재될 ‘메디치처럼 경영하라’ 시리즈는 메디치 가문의 경영술을 21세기의 기업 환경에서 재해석하는 인문학과 경영학의 통섭적인 시도다. 메디치 가문과 연관된 예술적 모티브에서 출발, 그 속에 숨어 있는 메디치 코드의 비밀을 경영 기법과 연결해 풀어내는 방식으로 연재될 예정이다. 르네상스 미술과 16세기 연구 전문가인 김상근 교수(연세대 신과대학)가 메디치 가문의 코드를 예술 작품 속에서 풀어내면 이를 최선미 교수(연세대 경영대학)가 21세기 경영과 연결하는 형식을 따를 것이다.위의 그림은 이탈리아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팔라스와 켄타우로스’다. 합리성과 이성(理性)을 상징하는 지혜와 승리의 여신 팔라스가 반인반마(半人半馬)의 괴물이며 동물적 본능을 상징하는 켄타우로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있다. 힘깨나 쓸 것 같은 괴물이 연약해 보이는 지혜의 여신에게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창을 든 팔라스는 전쟁과 승리의 여신 아테나를 말한다. 아무리 힘이 센 괴물도 지혜의 힘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그림이다. 1482년께 보티첼리가 로마에서 돌아와 메디치 가문을 위해 피렌체에서 그린 작품이다.이런 그림을 우의화(寓意畵)라고 한다. 그림을 통해 사실을 은유하거나 풍자하는 방식이다. 이 그림 속에는 메디치 가문에 대한 극도의 존경과 찬양의 코드가 숨어 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지혜의 여신 팔라스는 1479년 나폴리와의 전쟁에서 피렌체를 승리와 평화로 이끈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를 상징한다. 로렌초는 적진인 나폴리에 혈혈단신으로 뛰어들어 흉포한 적장이었던 나폴리의 왕 페란테와 석 달 동안 협상을 벌여 위기에 빠졌던 피렌체를 구한다.당시 로렌초에게는 동원할 군대도 없었고 대규모의 용병을 고용할 수 있는 자금도 없었으며 전통적인 우방이었던 밀라노 공국도 지원에 미온적이었다. 모든 것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당당한 행동, 개인이 가진 고매한 가치관, 높은 교육 수준, 위엄, 카리스마’뿐이었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 자기 목숨을 건 것이다. 그리고 혈혈단신의 몸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승리를 쟁취했다.따라서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는 그림 속의 항구는 나폴리다. 작품 뒤쪽에 나지막하게 보이는 산은 그 유명한 베수비오 화산일 것이다. 서기 79년 이 화산이 폭발해 폼페이 최후의 날이 왔던 것으로 유명하다. 작품 속 항구 앞 바다에는 로렌초가 타고 왔을 것 같은 작은 배가 떠 있다. 보티첼리는 이 그림을 통해 불굴의 용기와 지략으로 피렌체를 구했던 로렌초 데 메디치의 위기 경영 리더십을 마음껏 찬양하고 있다.지혜의 여신 팔라스가 입고 있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겉옷에는 메디치 가문의 문장인 다이아몬드 반지가 새겨져 있다. 아예 노골적으로 팔라스가 메디치 가문의 아들 로렌초임을 공개하고 있다.로렌초 데 메디치가 보여준 위기 경영의 진수는 ‘자신을 던진다’는 것이다. 언변이나 말재주로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 아니라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기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달려드는 것이 바로 로렌초 데 메디치가 보여준 위기 경영의 리더십이었다. 그는 모든 피렌체 시민들과 원로들이 전쟁의 공포 속에 숨 죽이고 있을 때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자기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전쟁의 공포를 평화의 노래로 바꾸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을 시도한 것이다. 나폴리로 떠나기 전 그는 피렌체의 원로들에게 이런 감동적인 편지를 보냈다. 거의 유언장에 가깝다.“친애하는 원로 여러분. 위기와 절망에 처한 피렌체를 구하기 위해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 우리 피렌체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평화입니다. 다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지금, 피렌체가 더 큰 재난에 봉착하기 전에 제 목숨을 걸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폴리로 제가 가겠습니다. 저를 그토록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들끓는 그곳으로 제가 가겠습니다. 우리 피렌체에 평화를 가져 올 수 있다면 적의 손에 저를 맡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나폴리 국왕이 우리 도시에서 자유를 빼앗을 계획이라면 피렌체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 재앙이 닥치기 전에 제가 먼저 그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겠습니다. 저 혼자서 그 희생을 먼저 감당하는 것이 오히려 영광일 뿐입니다.”세상은 지금 묻고 있다. “나, 지금 떨고 있니?” 공장은 가동을 멈추고, 길거리는 실업과 구직난에 숨을 죽인 사람들로 넘쳐난다. 디플레이션은 결국 세계경제의 총수요를 심각하게 위축시키면서 기업의 실질 채무를 늘릴 것이고, 이는 곧 금융회사의 부실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첩첩산중에 오리무중일 뿐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오로 2009년 한 해가 시작됐다. 이 위기의 순간에 CEO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떤 위기 경영의 리더십으로 올 한 해를 버틸 것인가.별수 없다. 자신을 던져라. 디플레이션과 불확실성의 한파 속에서 우리는 나폴리로 가는 배를 타야 한다. 정면 승부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만약 적진에서 죽어야 한다면 내가 먼저 죽겠다는 각오로 달려들어야 한다. 로렌초 데 메디치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위기의 순간에 두 개의 깃발을 들고 있으면 결국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CEO들이여, 두 개의 깃발을 들어라. 죽기(旗) 아니면 까무러치기(旗)!최악의 상황에서 정면 승부로 위기를 돌파한 고전적인 사례가 있다. 1982년 시카고 지역에서 발생했던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에 대한 존슨앤드존슨사(社)의 CEO였던 제임스 버크(James Burke)의 위기 대응 방식이다. 지금까지 체포되지 않고 있는 어떤 범죄자가 진통제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존슨앤드존슨사의 타이레놀 제품에 청산가리로 불리는 시안화칼륨(Potassium Cyanide)을 투입해 가판대 위에 올려놓았고, 시카고 지역의 소비자 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체 진통제 시장의 37%를 점유하고 있던 타이레놀 제품은 존슨앤드존슨사 1982년 전체 수익의 19%를 차지하고 있었다. 회사의 존폐를 가름할 위기가 닥친 것이다.존슨앤드존슨의 CEO였던 제임스 버크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그가 세웠던 위기 돌파의 첫 번째 목표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생명을 지킬 것인가’였다. ‘어떻게 하면 회사를 지킬 것인가’는 다음 목표였다. 그는 신속하게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든 타이레놀 제품의 리콜을 지시했다. 약 3100만 병이 리콜됐고 그중 3병에서 문제의 독극물이 발견됐다. 제임스 버크는 약 1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감수할 것을 지시했다. 생산도 중단했다. 타이레놀의 시장점유율은 8%로 추락했다.제임스 버크는 TV의 뉴스나 토크쇼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해 타이레놀 제품을 사지도 먹지도 말라고 소비자들에게 호소했다. 고성능 스피커를 단 가두방송 차량을 보내 길거리 홍보까지 했다. 긴급 소비자 상담전화 핫라인을 설치했고 사망한 7명의 유가족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초과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위기의 순간에 그는 세상을 향해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타이레놀의 점유율은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만에 다시 진통제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최선미·연세대 경영대학 교수김상근·연세대 신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