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현안 수두룩 … 뚝심경영 ‘주목’

주목받는 이석채 KT 사장의 취임 한 달

이석채 KT 신임 사장이 1월 14일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국내 통신 업계에는 ‘평지풍파(平地風波)’가 일었다. 이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KT와 KTF의 합병을 선언하고 1월 21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합병 인가 허가를 신청했다. SK텔레콤과 케이블TV협회가 이에 반발하면서 공정위에 의견서를 내고, 통신 업계 간 치열한 물밑 전쟁이 벌어지게 됐다.KT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비용 절감의 칼을 빼들었다. KT의 조직 개편은 본사와 지역본부의 관리 인원을 영업 및 네트워크 관리 분야로 현장 배치한것이 특징이다. 또 조직을 유선전화, 초고속 인터넷, IP TV 등을 담당하는 사업 단위에서 홈고객부문, 기업고객부문, 네트워크부문 등 고객군별로 바꿨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한 것이다.이 모든 과정은 KT와 KTF의 합병이라는 하나의 종착역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 업계의 해석이다. KT와 KTF의 합병은 비단 이석채 사장만이 추진한 것은 아니다. 2002년 KT가 민영화된 후 이용경 초대 사장 시절이던 2004년부터 합병설이 돌기 시작했고, 후임 남중수 사장 시절에도 합병이 거론됐었다. 그러나 민영화 후 정부 지분 감소와 외국인 지분 증가, 합병 비용과 KT의 유선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 정부의 규제 등 쉬운 일은 아니었다.이석채 사장은 합병과 관련해 2월 11일 “시대가 바뀌고 있고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 KT만 살자고 합병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합병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SK텔레콤 측은 “SK텔레콤이 지난해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을 인수할 때는 공정위 등 규제 기관의 눈치를 보느라 합병과 관련해 어떤 언급도 할 수 없었는데 KT는 사장이 마치 합병 허가가 당연하다는 듯 얘기하는 것을 보면 이미 방통위와 교감이 있는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비단 SK텔레콤의 반응만이 아니라 이 사장의 취임과 관련해 현 정부와의 교감설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남중수 KT 전 사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납품 비리로 인한 중도 하차, 뒤이어 관료 출신인 이 사장이 내정된 것은 KT를 정부 영향력 하에 두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들이다.SK텔레콤이 KT와 KTF의 합병을 반대하는 이유는 유선시장의 지배력이 무선시장으로 옮겨오는 것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KT와 KTF가 합병할 경우 시내전화 1986만 명, 이동전화 1460만 명, 초고속 인터넷 671만 명 등 유무선 전반에 걸쳐 총 4200만 명의 가입자 규모를 보유하게 된다. 경쟁사인 SK 진영과 LG통신 3사의 가입자 수는 각각 2900만 명, 1200만 명이다. 즉, 합병이 성공한다면 KT가 가입자 규모로는 단숨에 업계 1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입자 규모를 가지고 결합 상품 마케팅에 나설 경우 충분히 강력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SK텔레콤은 표면적으로는 합병을 반대하고 있지만 합병 허용은 불가항력이라고 보고 대신 KT 소유의 전봇대 사용권을 얻어 내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SK텔레콤은 하나로텔레콤과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황금 주파수대로 불리는 800메가헤르츠(MHz) 주파수를 KTF와 LG텔레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내주어야 했던 아픈 과거가 있다. KT도 마찬가지로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논리다.이와 관련해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는 한국전력(한전) 전신주가 포화 상태인 사진과 KT 소유 전신주의 한산한 모습을 대조한 사진을 제시하며 KT가 전신주를 경쟁사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전은 전력선 외에 통신 케이블용 조가선(통신망 등을 걸칠 수 있는 걸개)을 2개(상·하단) 운용하고 있는데 상단 조가선은 전력통신망 공급 사업자인 LG파워콤이 독점으로 사용하고 있고 하단 조가선을 SK브로드밴드 SK네트웍스 드림라인 세종텔레콤 KT 등 기간통신 사업자와 종합 및 중계방송 사업자, 지방자치단체, 정부기관 등 모든 사업자가 사용하고 있어 이미 포화 상태다.SK브로드밴드 측은 “KT는 옛 체신부 시절부터 구축된 11만 km의 통신 관로와 380개의 전주가 있어 기술 진화에 따른 네트워크 확장이 쉽다. 하나로텔레콤이 비대칭 디지털 가입자 회선(ADSL)을 통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시장을 선점했지만 KT는 단기간에 광케이블 및 초고속 디지털 가입자 회선(VDSL) 장비를 구축해 시장 1위를 차지했다”며 “KT는 보유 설비 측면이나 신기술 대응 능력, 네트워크 확장성 측면에서 후발 사업자를 압도하고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상호 경쟁 관계가 성립될 수 없음을 방증한다”며 합병 반대 이유를 밝히고 있다.한편 KT 내부에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조직 개편으로 임원 자리 50여 개가 줄었고 3000여 명을 현장 배치했다. 이와 함께 부장급 이하 직원들의 법인카드 사용을 중지시키고 비용은 실비 처리(영수증 첨부)로 바꿨다.사내에서는 ‘(플러그를)뽑고, (전등을)끄고, (개인용 컵을)쓰자’는 캠페인이 전사적으로 실시돼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KT 직원은 “남중수 전 사장이 취임 후 한 일들 중 상징적인 것이 정장을 없앤 것이다. 납품 비리로 물러나긴 했지만 자율적인 기업 문화를 이식한 공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문화가 생겨나는 것 같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이 사장은 취임사에서 “네이버 사람들은 KT는 물론 우리 경쟁사들의 포털 서비스를 전혀 경쟁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가 주인인 반면, 우리는 모두가 월급쟁이라는 것”이라며 자율적인 기업 문화를 주문한 바 있다. 이 사장 말대로 직원들과의 교감을 통해 이런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주목되는 부분이다.KT와 KTF가 합병할 경우 직원 규모는 3만8000여 명으로 SK텔레콤·SK브로드밴드를 합한 규모보다는 6배, LG텔레콤·LG파워콤·LG데이콤을 합한 것보다는 9배가 많다. KT는 민영화를 위해 5500여 명을 감원하는 등 지난 10여 년 동안 약 2만7000여 명의 인력을 줄였지만 여전히 비대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이 사장은 취임 후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내부에서는 합병 추진 과정에서 업무 중복에 의한 인력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수위가 어느 정도가 될지 벌써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공정위는 2월 4일부터 KT와 KTF의 합병 인가 여부를 심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3월 중순쯤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KT는 합병 승인을 염두에 두고 3월 27일 임시주총을 공지한 상태다. 여기서 합병이 주주들에게 승인을 받으면 5월께에는 매출 20조 원, 자산 25조 원대의 거대 통신 기업이 출범하게 된다.이 사장은 뚝심 있게 합병과 조직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2월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사장은 자신이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 신규 통신 사업자 선정 과정에 거센 반대에 부닥쳤던 경험을 예로 들면서 “그 과정을 지나면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며 합병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SK텔레콤 등 경쟁사들의 반발에 대한 대응 여부에 대해서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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