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을 물려주다 인생 최고의 무기

“부엌에 쇠꼬리 끓이는데 좀 먹고 가지 그러니? 추울 텐데….”“괜찮아요. 저녁에 먹을 게요. 다녀오겠습니다.”현관에서 운동화를 신는 둥 마는 둥 뛰어나오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사하고는 친구와의 약속 장소로 갔다. 늦게 도착하면 자리가 없는 도서관에 가기 위해 새벽 5시에 나온 참이었다. 그게 아버지와 나의 마지막 대화였다.그때가 중학교 3학년 올라가는 해 봄방학의 끝 무렵, 2월 26일이었다. 공부한답시고 추운 새벽에 뛰어나가는 아들의 모습이 영 걱정스러우셨는지 아버지는 파자마 차림으로 대문 앞까지 쫓아 나오시며 안타까워하셨다.그날 공부를 마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돌아오는 길,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다가 나를 보자 정색을 하면서 일어났다.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가방을 어깨에 멘 채로 주저앉았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어머니 홀로 어깨를 들썩이시면서 통곡을 하고 계셨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병원 영안실 마루가 얼마나 넓고 크게 보였는지….아버지에게 배운 가장 큰 삶의 교훈은 부지런함이다. 고물상을 경영하셨던 아버지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온 동네를 빗자루로 쓸고 다니셨다. 또 남의 일, 동네일이라면 식사 중이라도 맨발로 달려 나가셨다. 이 때문에 어머니의 작은 푸념이 늘 이어졌다.한번은 새벽 청소에 나가셨던 아버지가 쌀 한 포대를 메고 들어오셨다. 비질을 하는데 쌀을 잔뜩 실은 트럭이 골목에서 급커브를 돌면서 쌀 한 포대를 떨어뜨렸다는 것이었다. 얼른 달려가 그 트럭을 불렀지만 너무 빠른 속도로 가버려서 할 수 없이 짊어지고 왔다고 하셨다. 덕분에 그 쌀로 떡을 빚어 동네 주민들과 나누어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의 부지런함을 칭찬하는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아버지는 업종을 바꿨다. 고물상 부지가 개발되면서 어머니와 미니 슈퍼를 개업하신 것이다. 이때부터 장남이었던 나의 아침 생활도 바뀌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아버지와 함께 용달차를 타고 용산 청과물 도매시장에 가서 갖은 야채와 과일을 사오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그날 팔 야채나 과일을 사서 쌓아 놓으면 나는 하품을 하면서 그 곁을 지켰다. 이런 일상에서 나는 아버지의 타고난 부지런함을 배울 수 있었다.당시 아버지는 약주만 드시면 나에게 늘 같은 당부를 하셨다.“넌 육군사관학교를 가야 한다. 사내대장부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나라를 지키는 일과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일이거든. 그걸 둘 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네가 육군사관학교를 가는 거야. 알았지?”이런 말씀을 듣고 자란 나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할 팔자려니’하면서 생활했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봄방학의 그날,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부담감으로 지금까지 원망도 많이 했고 아쉬움도 많았다.그러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때 아버지의 가르침 덕으로 지금까지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오히려 남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게 됐다. 또 부지런함과 성실함 하나로 일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셨다. 고물상을 경영하면서 허투루 물건을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셨고, 중고 생활용품을 재활용해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셨다. 무엇보다 타고난 부지런함이라는 인생의 가장 큰 무기를 선물로 주셨다.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크게 상심하셔서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 하지만 정작 당신 본인이 하늘로 가실 때 아들인 나는 곁에 있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아들을 위해 지금까지 지켜보고 보살펴 주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가끔 파주에 있는 아버지 묘소에 가서 이렇게 말씀 드리곤 한다.“아버지, 그때 쇠꼬리국은 먹지 못했지만 영원토록 아버지의 사랑과 자식 걱정을 먹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곳에서는 남 걱정 자식 걱정 그만하시고 편안히 쉬십시오.”한미은행, 씨티은행 재테크 팀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개인 자산관리 컨설팅 회사인 HB파트너스를 경영하고 있다. ‘전 국민이 부자되는 그날까지’를 모토로 대학, TV, 기업체, 문화센터 등에서 자산관리, 부자 마인드, 투자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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