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리는 시대 ‘잘 파는 법’

“제가 잘아는 분 중에 눈썹 문신을 시술하는 분이 있어요. 물론 불법이긴 하지만 이분도 나름의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 카드 단말기를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요즘 사업이 잘 안된다는 거예요. 특히 고객들이 상담만 하고 시술은 주저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름의 ‘팁’을 말씀드렸어요. 액수가 크기 때문에 마지막에 가격을 이야기하면 누구든 생각이 길어지게 마련입니다. 이 때문에 먼저 시술료에 대한 복선을 상담 중간 중간에 깔아두라고 조언했습니다. ‘카드로 하면 30만 원, 현금으로 25만 원이다’ 이렇게요. 마지막으로 상담이 끝나면 소비자에게 결정을 ‘강요(?)’합니다. ‘카드로 하시겠어요, 5만 원 싼 현금으로 하시겠어요.’ 그러면 대다수는 자연스레 현금을 선택하며 시술로 이어집니다.”이상범 성공변화연구소 소장이 소개한 이 에피소드는 꽉 잠겨 있는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는 ‘영업의 마술’을 잘 보여준다. 최근 들어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점점 더 고난도의 세일즈 기술이 필요해지는 시기가 오고 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의식주 품목의 소비 지출은 1년 전에 비해 7%나 감소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이다. 특히 가정용 직물 및 의복 판매액은 1년 전에 비해 13.7%가 줄었고, 일반음식점업 매출은 13.7%나 뒷걸음질했다.이처럼 움츠러들고 있는 경기는 ‘고용 대란’과 맞물려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올 1월 취업자 수는 2286만1000명으로 1년 전에 비해 10만3000명이나 줄었다. 카드 사태가 일어난 2003년 이후 5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설상가상으로 2월이 지나면 취업에 실패한 고교·대학 졸업자가 더 늘어나 실업률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그런데도 불황을 헤치며 쉴틈 없이 제품과 서비스를 팔아대는 ‘영업의 달인들’은 수두룩하다. 이들도 보통 사람들처럼 불황에 울상을 지으며 힘들어 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남들과 차별되는 특별한 영업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객과의 신뢰에 목숨을 거는 고지식한 정통파든, 화려한 용모와 밀고 밀리는 심리전을 잘하는 기교파든 분명 눈에 띄는 구석이 있다.동지현 CJ홈쇼핑 쇼호스트는 타깃을 분명히 정하고 제품을 판다. 그녀는 “남녀노소에게 잘 맞는 상품이라고 하기보다 정확한 타깃을 정해 주는 게 더 높은 매출을 일으킨다”며 “‘30대 이후 아이를 낳으신 분들이 많이 찾는 스타일’이라는 식으로 용도나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고 말했다.전혜민 삼성생명 FC는 연간 실적이 100만 달러 이상인 설계사들을 회원으로 하는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보다 3배 이상의 실적을 내야 하는 COT(Court of Table)회원이다.그녀는 자신만의 비전을 확고히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시스템을 개발하라는 뜻이다. 그래야 상품을 권유할 때 확신을 가지고 고객을 설득할 수 있고 고객에게 다가갈 때 주눅 들지 않는다는 얘기다.그녀는 보험 영업에도 ‘포트폴리오’를 강조했다. 외부의 영업 환경 악화로 인한 충격을 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황이라고 모든 사람의 형편이 나쁜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불황 속에서 호황을 누리는 사람이 분명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 영업 역시 평소에 고객군을 다양하게 구성해 놓으면 불황 속에서 오히려 성장하는 고객을 통해 실적 감소의 폭을 줄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현대자동차에서 매년 10명을 선정하는 전국판매왕을 4년에 걸쳐 받은 바 있는 이종인 차장은 “영업은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나’를 파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한 고객과의 만남이 2~3년 이상 장기적인 관계가 되면 하나의 가족이자 사업 파트너가 된다는 의미다.그는 또 “1 대 10 대 100의 원칙”을 털어놓았다. 즉, 100번 DM(Direct Mail)이나 e메일을 보내는 것보다 10번 전화하는 게 낫고, 10번 전화하는 것보다 1번 만나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다.아울러 똑같이 차를 판매할지라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것 역시 포인트다. 일례로 그는 고객이 정한 것과 다른 사양을 설명해 주고 다른 컬러를 권유해 보기도 한다. 그러면 고객은 같은 차종이라도 길에서 보이는 다른 색상의 차들을 보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이를 권유한 영업 사원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영업인은 시장과 가장 가까이 있는 마케터이기도 하다. 황경남 컨슈머초이스 대표는 고객이 제품을 선택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 너무 비싸면 팔리지 않을 테고 너무 싸면 적자가 나버린다는 이야기다. 둘째, 품질을 최적화해야 한다. 최고의 품질이 아니라 최적의 품질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황 대표는 “1000만 대 이상 팔린 ‘대박 휴대전화’는 최첨단 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셋째, 품질과 가격이 비슷하다면 좋은 디자인의 상품이 선택받을 것이다. 일례로 초창기 월매출이 500대밖에 안 됐던 자동차 ‘오피러스’는 디자인을 바꾸면서 단번에 월판매량이 3000대로 늘어났다. 넷째, 커뮤니케이션을 최적화해야 한다. 어떻게 하든 소비자의 시선을 끌어 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영학의 구루인 톰 피터스는 3초 안에 눈길을 끌지 못하는 물건은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입소문을 관리해야 한다.황경남 대표는 “한마디로 고객의 구매 심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역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상품을 만들든, 디자인을 하든, 무엇을 하든 고객이 어떤 선택을 할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고객의 니즈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통찰력을 키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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