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탈출보다 ‘체질 개선’이 먼저

좌담회- 해법은 없는가

강석훈 교수(이하 강 교수): 한국은 1980년대에 마이너스 1.5%, 1990년대 외환위기 당시 마이너스 6.9%를 기록했는데요, 마이너스 4%라면 적어도 성장률로만 봤을 때는 IMF 구제금융 시기와 같은 불경기로 볼 수 있습니다. 그 현상으로는 실업자가 양산될 것이고 영세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오상훈 센터장(이하 오 센터장): 이번 경기 침체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60년 만의 빅 사이클이 무너졌습니다. 과거 경기 침체를 보면 1, 2차 오일쇼크가 있었고 1995년부터 2000년대까지 일본의 복합불황이 10년간 이어졌습니다. 지금의 경제 위기는 예고편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국내에서 겪은 경기 침체는 IMF 구제금융과 2003년 카드대란이 있습니다. 그때는 수출이 좋았지만 지금은 수출과 내수가 동반 침체를 겪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경기가 살아나려면 일단 미국이 살아나고 선진국, 개도국 순으로 전파돼야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허만율 연구위원(이하 허 연구위원): 최근의 세계적 경제 위기를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기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됐고 금융 시스템의 붕괴가 원인이라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그동안 국제 공조를 통한 시스템 회복 노력이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지금은 세계경제의 동조화로 인해 미국 경기가 회복돼야 국내 경기도 회복되겠지만 한국 경제는 IMF 구제금융 이후 내실이 다져져 있기 때문에 미국보다는 빨리 터닝포인트를 맞지 않을까 예상합니다.강 교수: 마이너스 성장에 대해 세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마이너스 폭이 어느 정도인가. 둘째, 마이너스 기간이 얼마나 가느냐. 셋째, 얼마나 강하게 반등하느냐입니다. 이 세 가지 모두 세계적 요인으로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우리 재정이 상대적으로 건전하기 때문에 경기 침체의 폭을 완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침체 기간은 우리도 언컨트롤러블(uncontrollable)이고 반등의 정도는 우리 노력에 따라 달라질 부분이 있습니다.오 센터장: 한국 경제는 진취적 능력이 앞서 있지만 약점도 있습니다. 한국 경제는 내수 기반이 아닌 수출 주도형으로 대외 의존도가 높습니다. 특히 중국 의존도가 높은데 홍콩과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27%가 넘습니다. 아시아 전체로 보면 50%가 넘습니다. 중국의 경우 잠재성장률을 8%로 보는데 IMF 수정 전망치가 6.7%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하드랜딩 수준입니다. 중국 경제 상황에 따라 한국 경제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1997~98년 외환위기 때 대기업들은 투자 버블 붕괴를 겪었습니다. 이로 인해 금융이 와해되고 중소기업이 줄도산하는 ‘톱 다운(위에서 아래로)’ 방식의 리세션(침체)을 겪었습니다. 2003년 카드대란 때는 가계 부문의 거품이 붕괴됐습니다. 카드 돌려막기가 유행했고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가계가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대기업과 가계의 거품은 걸러진 상태입니다. 지금은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겪고 있는 ‘바텀 업(아래에서 위로)’의 불황입니다. 대기업은 학습 효과가 있어 재무구조가 건실하고 리스크에 강하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공포감은 1998년보다 더 큰 것 같습니다.허 연구위원: 마이너스 성장의 기간과 폭 등과 관련해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볼까 합니다. 일본이 불황을 벗어나는데 10년이나 걸렸습니다. 왜일까요. 일본이 장기 불황으로 간 데는 펀더멘털(기초 체력)로 인한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초기 대응을 잘못한 것이 큽니다. 그리고 경기 부양책이 실효적이지 못했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오히려 정부보다는 기업들이 석유 파동 위기 등을 겪으면서 축적된 노하우를 통해 불황 극복에 노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 경기 회복은 IMF 구제금융 때처럼 갑작스러운 V자형 회복보다는 완만한 U자형이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늦어도 내년 초에는 회복이 시작될 것으로 봅니다. 일본의 장기 불황처럼 될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한국 입장에서는 시행착오를 덜 겪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오 센터장: 일본의 장기 불황을 분석해 보면 1995년에서 2005년까지의 시기가 중국 경제가 태동하는 시기였습니다. 중국의 급격한 성장으로 일본의 제조업 기반이 중국에 의해 많이 훼손됐습니다. 둘째, 단카이 세대(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와 맞물렸습니다. 인구 고령화가 시작됐지요. 셋째, 당국의 잘못된 정책으로 소비세가 인상됐고 경기가 조금 회복되는 듯 보일 때 금리를 바로 올려 버리는 오판을 했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침체가 지속되는 와중에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1954∼1955년생들이 퇴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소비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는데 정책적으로는 일본 사례를 연구해 일본의 우(잘못)를 범하지는 않겠지만 우려는 가시지 않습니다. 다만 수출이 역동적인 것에 기대를 겁니다.강 교수: 1955년생의 은퇴가 시작됐는데요, 길게 보면 인구 증가가 2018년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접어들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10년밖에 없습니다. 은퇴 세대가 많아지면 경제 역동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전에 선진국으로 진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경기 침체가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갉아먹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도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되는 이유입니다.단기적으로 보면 경기가 상승한다고 하더라도 각국이 거의 무제한적으로 방출한 통화들로 인해 인플레이션이나 자산 가격 버블 등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입니다.허 연구위원: 한국 현실에서는 가계 부실이 가장 우려됩니다. 지금은 IMF 구제금융 때보다 훨씬 타격이 큽니다. 가계 부문이 어떻게 건전성을 회복할 것인가, 여기에 정책 초점이 맞춰지면 조금은 희망적인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요.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된 뒤의 유동성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터닝포인트(경기 회복 시점)에서 국제 공조로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기 부양을 해야 하는 지금 입장에서는 당장 고민할 부분은 아니지만요. 당장은 경기 회복에 초점이 맞춰지겠지만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한 노력이 시급합니다. 지금은 내리막길을 가는 자동차로 비유한다면 브레이크를 밟는 상황을 지나 오르막길을 갈 때 힘차게 나갈 수 있게 충분한 연료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은 1995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까지 오는데 1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선진국들은 보통 5~6년에서 10년 정도 걸렸습니다. 만약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된다면 대만이나 아르헨티나처럼 선진국 진입에 실패할 가능성도 우려됩니다.오 센터장: 돈의 힘으로 하는 경기 회복은 후유증이 큽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도 따지고 보면 정보기술(IT) 버블 붕괴와 9·11 사태, 이라크 전쟁이라는 3대 악재를 해결하기 위해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초저금리로 과잉 경기 부양을 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지금도 붕괴된 버블을 돈으로 막고 있습니다. 이런 경기 회복보다는 질적인 면에서 구조조정을 강화해야 합니다. 건설·조선사를 시작으로 정부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조금 더 공격적으로 시기를 앞당겨야 합니다. 지금은 정부가 회복 시기에 너무 조급해하는 것 같습니다.강 교수: 저도 구조조정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시장이 자력으로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지금은 시장이 자력으로 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구조조정과 더불어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도 함께 추진돼야 합니다. 경제문제가 사회문제로 비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성장률도 중요하지만 이런 부분도 챙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허 연구위원: 지금 위기는 마치 큰 지진이 일어난 상황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달 사이 전 세계적인 발 빠른 대처로 어느 정도 수습되고는 있지만 아직 한 번 더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 세계 각 주체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좌우되겠지요. 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아직 많은 만큼 큰 지진 후의 여진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내수 진작과 수출 확대를 위한 정책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제 주체의 심리적 안정이 중요합니다.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수치 때문에 심리적인 동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부는 수치 관리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신뢰 회복과 고통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업들은 과거 IMF 때 양적 구조조정이 이뤄졌다면 이번 기회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질적 구조조정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경기 회복기에 대비해 선제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가계 쪽으로 본다면 중상위 계층의 건전한 소비를 유도해야 합니다.강 교수: 시장경제에서는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는 일이고 호황과 불황은 반복되게 마련입니다. 침체가 깊다면 반등은 높고 얕다면 반등도 낮을 것입니다. 경기는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금년 하반기쯤에는 반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그 근거로 미국의 주택 사이클이 금년 상반기에 바닥이고요, 각국 정부의 다양한 위기 극복 시도가 금년 하반기에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한국이 이런 세계적 경기 회복을 맞춰 가려면 그동안 잘 버텨줘야 합니다.정부 관점에선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막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드랜딩한다면 가계와 금융회사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철저히 해야 하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번 경기 침체를 ‘고통’으로 여기기보다는 ‘시스템 개혁’의 계기로 만들어야 하고 이것이 큰 그림이 돼야 합니다.가계 부문에서도 거품을 좀 줄여야 합니다. 학교 학생들을 보면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해도 중소기업에는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 고졸자의 대학 진학률이 83%로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졸업해서도 기대 수치가 굉장히 높습니다. 이런 사고의 거품을 좀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오 센터장: 성장률 수치 자체는 지금 착시적인 현상이 있습니다. 마이너스 4%가 정상 수준으로 가려면 최소한 6~7%는 올라야 합니다. 숫자에 대한 기술적 반등은 정상 경기 하에서는 맞았지만 지금처럼 수치의 신뢰도가 훼손된 때는 의미가 없습니다.실질적으로 보면 개방 경제 하에서 국가별 분업화가 이뤄진 지금 경기 사이클은 길어지고 있습니다. 2003년 바닥에서 5년 동안 호황을 누리다 추락하고 있어요. 글로벌 정책 공조가 필요하지만 원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불황일수록 보호무역, 환율전쟁 등의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고요.한국의 경우 구조조정도 더 강화해야 합니다. 시장의 ‘크레디트 스프레드’ 축소가 경기 회복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투기 등급 기업 부도율이 10% 이상이 되면 경기가 바닥으로 봅니다. 그런데 지금은 4~5%밖에 되지 않습니다. 10%로 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요.사회·정리= 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참석자 :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오상훈 SK증권 리서치센터장, 허만율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가나다 순)장소: 한국경제신문사 17층 영상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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