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는 부하하기 나름…‘팩트’로 풀어야

나를 버린 상사 마음 돌리는 법

입사 5년차 S 대리는 몇 달 전 직속 상사인 L 과장과 모 업체에 프레젠테이션을 다녀온 뒤로 하루하루가 괴롭기만 하다. 수억 원의 프로젝트가 걸린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만 해도 두 사람은 다정한 직장 선후배였다. 근 보름 동안 야근을 함께하며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D데이에 작은 의견차로 입씨름을 하고 설상가상 수주마저 실패하면서 두 사람 사이는 얼어붙고 말았다.이후 지금까지 L 과장은 S 대리가 인사를 해도 받는 둥 마는 둥, 간혹 눈이 마주쳐도 싸늘하게 외면하고 있다. 또 회의에서 S 대리가 하는 말은 들은 척 만 척 묵살하고, 마치 자리에 없는 사람인 양 ‘투명인간’ 취급이다. S 대리는 “작은 일에 내 의견을 굽히지 않은 대가 치고는 너무 가혹하다”면서 “오해가 있다면 속 시원히 풀고 예전 관계로 돌아가고 싶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S 대리의 아픔(?)을 ‘남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직장인이 몇이나 될까. 매일 9시간 이상 얼굴을 봐야 하는 직장 상사가 나를 싫어한다면, 사사건건 견제하고 태클을 건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 붙잡고 이야기를 하자니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고 ‘시간이 약’이라며 기다리기엔 하루하루가 지옥이나 다름없고, 동료 후배들에게 상사 욕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한계가 있고….그러나 나에게 등을 돌린 상사를 다시 돌려 세울 비책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공통적으로 꼽는 첫걸음은 바로 현명한 대화. 대화 전문가, 처세 전문가들에게 나를 버린 상사를 다시 찾는 현명한 대화법을 들어 봤다. 상사와 부하의 복잡 미묘한 관계는 동서양이 별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독일 출신의 비평가인 주잔네 라인커는 ‘직장생활의 달인(청림출판)’에서 갈등의 불을 끄는 긴급조치법으로 한발 물러서기를 꼽았다. 즉각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일단 듣고 난 뒤 방법을 모색하라는 것이다.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상사의 공격을 받았다고 즉각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방어 태세를 취하거나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한다면 문제가 커질 확률이 높다. 반면 욱하는 심정을 숨기고 자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상사는 오히려 자신의 과잉 행동과 흥분을 민망해하며 뒤를 돌아 볼 수 있다.하지만 모든 일이 상식과 룰로 이뤄지지는 않는 법. 도리어 상사가 더 비열하게 괴롭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될 대로 되라는 식은 곤란하며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상사는 마음에 있는 화를 분출해 냈기 때문에 흥분을 가라앉히기 쉬운 상태다. 평정심을 갖출 준비가 된 셈이다. 부하는 상사와의 문제가 장기화되기 전에 적절한 시기를 잡아 말을 꺼내야 한다. 마음의 문제가 장기화되면 상사와 부하, 조직에 두루 해로울 수밖에 없다. 어떤 조직에서든 20% 정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일명 ‘파레토의 법칙’이라는 80 대 20 법칙이다. 원래는 20%의 사람이 소득의 대부분을 벌어들인다는 이론이지만 인적 구성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대화 전문가 이정숙 SMG 대표는 20%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겐 감정을 나타내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화하라고 조언한다. 물론 이 20% 안에 나를 버린 상사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큰소리를 내면 오히려 내가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지적이다. 투명 유리를 통해 직원들을 관찰하는 윗선에서는 원인부터 따지는 게 아니라 큰소리를 내는 사람이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따라서 직장 동료, 상사와는 감정의 일치를 기대하지 말고 상대방 때문에 기분이 상해도 감정을 내세워 말싸움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또 싸움 대신 떡 하나 더 주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내키지 않아도 술이나 밥을 사는 식이다. 이렇게 훈련하면 싫은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하는 습관이 생기고, 곧 이어 주류에 편입되는 티켓을 얻는 셈이 된다. 상사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면 부하는 상사를 회피(도망)하거나 비난(공격)하는 태도를 취하게 마련이다. 부하는 스스로가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동물이 위협 상황에서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잘 모르는 인간의 원시성이다.고현숙 한국코칭센터 사장은 “상사가 만만하면 공격, 아니면 회피하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며 의외로 대화 같은 생산적인 행동은 잘 못한다”면서 “회피 또는 공격의 양극단이 아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그 첫 번째 방법은 팩트(사실)와 스토리를 구별하는 것. 앞서 S 대리의 사례를 보자. S 대리가 동료에게 L 과장과의 일을 이야기하며 “수주 실패가 내 탓으로 생각해서 나를 괴롭힌다. 상사는 아주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팩트가 아니라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실상 L 과장은 수주 실패가 S 대리 탓이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S 대리가 L 과장과의 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스토리는 내려놓고 팩트를 말해야 한다. 팩트는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지 않고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상사 중에 악당이 많은 이유는 부하들이 스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먼저 두 가지를 기억하세요. 첫째, 상사의 성공은 나의 성공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사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둘째, 상사에게 완벽한 기준을 들이대지 말아야 합니다. 그의 결함을 인정하면서도 존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이렇게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면 상사와의 관계는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대화 전문가인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사장은 ‘상사를 대하는 애티튜드(attitude·태도)부터 돌아보라’고 말했다. 내가 상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자세로 대하고 있는지 짚어보면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상사가 나를 좋아하도록 하는 것은 그 사람 마음에 달린 일이죠. 남의 마음을 움직여야 가능한 일입니다. 반면 상사를 존중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라서 훨씬 쉬워요. 이렇게 인간관계의 상관성을 이용하면 풀지 못할 일이 없지요.”고 사장은 상사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결정적 순간의 대화(Crucial Conversation)’를 활용할 것을 권했다. 원만하지 못한 대화로 야기되는 심각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선 각 상황에 맞는 대화 기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미국에서 항공기 사고를 분석했더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대요. 부기장이 이상한 징후를 기장에게 말하지 않아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사에겐 순종적이고 공손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자칫 엉뚱한 말을 했다가 ‘찍힌다’는 생각을 하지요. 하지만 할 말을 하면서도 공손한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건강하게 대화하는 기술만이 상사를 내 편으로 만드는 비법이죠.”실제로 ‘결정적 순간의 대화’는 프로그램화돼 여러 업종에서 혁신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의 한 병원에선 모든 의사들에게 이 과정에 참가하도록 한 덕에 의료 분쟁이 크게 줄어드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동료 의사, 간호사, 환자와 원만한 대화를 통해 병원 분위기를 개선하고 분쟁까지 줄였다는 것이다.“‘낮은 성과 뒤에 반드시 심각한 대화가 있다’는 말이 있어요. 조직에서 상사와 직원, 동료 사이에 대화를 잘 풀지 못하면 결국 낮은 성과로 직결되죠. 반면 좋은 대화의 기술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힘을 가집니다. 결정적 순간에 이뤄지는 좋은 대화가 인간관계를 살린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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