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Go’… 밥그릇은 자국민부터

전 세계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서 노동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으려는 움직임 또한 유럽에 이어 아시아로 확산되고 있다. 자국민들의 실업증가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이에 따라 일자리를 잃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주 근로자들의 귀향 행렬도 줄을 잇고 있다.AP통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정부는 1월 21일 경기 침체에 따른 자국 국민의 대량 해고 사태를 막기 위해 공장, 상점, 레스토랑 등 주요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을 금지했다. 또한 만약에 감원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외국인 근로자를 먼저 해고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현재 해당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계약 기간이 만료되거나 해고될 때까지만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을 금지한 주요 제조업과 서비스 업종에는 현재 말레이시아에 체류하고 있는 210만 명(말레이시아 전체 노동력의 20%)의 합법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절반가량이 종사하고 있다.말레이시아의 한 정부 관료는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말레이시아인들이 일자리를 갖게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전기·전자제품 및 섬유, 가구 등 일부 숙련된 외국인 근로자들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예외가 인정될 것이라고 밝혔다.수출 의존도가 높은 말레이시아는 글로벌 경기 침체 심화로 수출이 급감하면서 지난해 10월 이후 1만여 명 이상의 말레이시아인과 3000여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올 연말까지 추가로 4만5000명이 실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관의 에카 수립토 씨는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는 30만 명의 인도네시아인들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올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말레이시아에는 합법 외국인 근로자 외에 약 1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불법 근로자들이 농장과 건설 현장 레스토랑 등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 불법 근로자들의 대부분은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등 인근 국가에서 넘어온 사람들이다.대만 정부도 지난달 외국인 근로자를 대만 근로자로 교체하는 기업에 1인당 월 1만 대만 달러(39만 원)를 보조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또한 기업별로 외국인 근로자 채용 한도를 줄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러한 조치를 취한 것은 지난해 11월 실업률이 4.64%로 치솟고 실업자 수가 50만 명을 넘는 등 자국민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지난해 말 외국인 근로자 쿼터를 절반으로 줄였다. 러시아 이주 근로자는 현재 1200만 명으로, 대부분 중앙아시아 출신이다.외국인들에 대한 노동 장벽 설치는 유럽에서부터 시작됐다. 유럽에선 스페인이 지난해 10월 일자리가 없는 이민자가 3년 동안 돌아오지 않겠다는 조건을 수락하면 4만 달러의 실업수당을 한꺼번에 지급하는 ‘자발적 귀향’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스페인에서는 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급감하자 스페인 근로자들이 그동안 기피해 오던 농장에까지 밀려들면서 아프리카 출신 근로자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영국도 이주 근로자의 학력 나이 기술력 등을 점수화한 새로운 점수 이민제를 도입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인 이주 근로자들은 떠밀리다시피 귀국길에 오르고 있다. ‘오일 머니’가 넘치던 두바이에서조차 금융 위기 여파 등으로 대형 건설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중단되자 필리핀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등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주 근로자들이 늘고 있다.두바이에서 실직한 필리핀인만 최소 3000여 명에 달한다. 현재 두바이를 비롯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일하고 있는 아시아 출신 근로자 수는 300만 명에 이른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외국인 이주 근로자들이 해고에 직면했다”며 “이들이 경제 위기의 희생양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죌릭 세계은행 총재는 지난해 발발했던 금융과 경제 문제들이 올해는 고용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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