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을 무기로 최고 아나운서 됐죠’

성기영 경제 전문 앵커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에서 ‘2008 대한민국 아나운서 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최종 후보는 KBS 성기영 아나운서, MBC의 박혜진 아나운서, SBS의 김소원 아나운서로 압축됐다. 경합 끝에 KBS의 성기영 아나운서가 대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모두가 그의 프로필에 집중했다.“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나는 긴 시간 동안 한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왔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 아나운서 중 유일하게 ‘경제 전문 아나운서’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합니다.”성 아나운서는 KBS 1라디오 ‘성기영의 경제 투데이’를 햇수로 8년째 이끌어 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같은 시간대의 방송 중에서 오랜 기간 동안 높은 청취율을 보이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경제 정보에 목마른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퀄리티를 인정받는 프로그램이다.이런 프로그램을 한 사람의 아나운서가 오랜 시간 동안 진행자 자리를 유지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 몇몇 경제 전문 프로그램 중에서도 여성 아나운서가 전문 진행자로 활약하는 사례는 사실 성 아나운서가 국내에서 유일하다.성 아나운서는 어찌 보면 ‘대기 만성형’이라고 할 수 있다. 1991년 KBS 아나운서로 입사할 때만 해도 그는 그 무엇도 두려울게 없었다. 실제로 그가 아나운서가 된 계기는 대학 졸업 후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시험에 도전하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감 있게 임했기 때문이다.“원래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한 친구가 아나운서 시험을 보라는 거예요. 사실 그때만 해도 제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래서 ‘내가 안 되면 누가 되겠느냐’며 도전한 거죠. 철이 없었죠?”지하철역에서 즉석 사진기로 찍은 사진을 붙여 원서를 내면서도, 면접 시 특기를 보여 달라는 면접관의 말에 어릴 때 배운 태권도 품세를 선보이면서도 성 아나운서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는 “당시에 어떤 망설임이라도 있었다면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합격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하지만 시련은 입사 후 1년 만에 찾아왔다. 그해 말 순환 근무로 부산에 발령 받은 그는 과한 운동으로 허리를 다쳤고, 급기야 디스크 수술도 받았다. “한창 일을 배워나갈 시기에 몸이 망가지니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었어요. 신입일수록 더 빠릿빠릿하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데 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끙끙’대야 하니….”결국 그는 휴직을 선택했고 아픈 몸과의 지루한 싸움을 마친 시기는 1994년이었다. 하지만 복귀 뒤에도 초조한 날들이 이어졌다. 몸은 나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몇몇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허전했어요. 뉴스 진행은 어느 정도 능력이 되는 아나운서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죠. 또 여성 아나운서는 남성과 달리 30대만 넘어서도 쉽게 자리를 찾기 어려워요.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고 싶은데 과연 그 오랜 기간 동안 ‘무엇을 하면서 다녀야 하나’ 하고 고민했던 시기였습니다.”2002년부터 맡게 된 ‘성기영의 경제투데이’는 그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줬다.“오랜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때마침 경제 전문 방송을 생겼으니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바로 ‘오케이’했어요.”그는 사실 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처음 맡았을 당시에도 ‘욕심’은 있었지만 ‘확신’은 없었다고 했다. 성 아나운서는 평소 실물경제에 관심이 많았다. 신문을 읽을 때도 가장 먼저 경제면을 읽고 다음에 사회면 정치면 순으로 읽을 정도로 경제 정보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1998년부터는 KBS ITV ‘경제 전망대’에서 한 코너를 맡아 진행하기도 했었다.하지만 여러 경제 전문가들과 시시각각 변하는 이슈들의 핵심을 콕콕 찍어 이야기를 풀어낼 자신은 없었다. 성 아나운서는 “물론 작가가 써주는 대로 편하게 가는 방법도 있다”며 “하지만 편하게만 하면 진짜 ‘내 프로그램’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래서 성 아나운서는 ‘공부’를 해답으로 택했다. 프로그램을 맡은 뒤 한동안 매일 아침 9시부터 방송에 들어갈 때까지 쉬지 않고 경제 신문을 읽었다. 작가와 PD가 “제발 공부 좀 그만해요”라는 성화에도 아랑곳없다는 듯 모든 내용이 완벽히 머리에 들어올 때까지 보고 또 봤다.내친김에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유학까지 생각했던 정치외교학에서 전공을 경제학으로 확 바꿔 모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에는 기업들의 생리를 보다 깊숙이 알고 싶어 경영학 박사과정에 들어섰다. 지금은 논문만 남겨 놓은 상태.“진행자는 출연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논리를 잘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일단 출연자와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아야 해요. 진행자 역시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출연자를 대하고 모르는 부분은 모르니 설명해 달라고하고, 아는 부분은 스스로 청취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재해석해내야 합니다. 오락 프로그램이라면 보다 참신한 감각이 중요하겠지만 적어도 ‘경제 전문 방송’이란 타이틀을 걸고 진행하려면 출연자의 수준에 밀리지 않는 공부는 필수죠.”성 아나운서는 또 ‘논리성’과 ‘꼼꼼함’을 경제 전문 아나운서의 자질로 꼽았다. “적어도 숫자가 한눈에 딱 들어오는 사람이 좋을 듯해요. 100,000,000이면 1억, 10,000,000,000억이면 100억. 이렇게 말이죠. 한 자릿수부터 거꾸로 세어서 숫자를 읽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본인이 좀 힘들지 않을까 해요.”잘 알려져 있듯 성 아나운서의 남편은 장철 한세대 경영학부 겸임교수다. 애널리스트 출신인 장 교수는 한국경제TV를 거쳐 매일경제TV, 머니투데이, YTN 등에서 경제 방송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성기영의 경제투데이’가 방송되는 오후 4에에 YTN라디오에서 ‘YTN 생생경제’를 진행하게 됐다.“글쎄요. 아직 나쁜 점은 찾지 못하겠어요. 서로의 일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고 할까요. 같은 시간대니 서로 더 좋은 출연자를 모시기 위해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는 정도예요. 아직까지는 제가 이 시간대의 ‘승자’다 보니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하하하”두 사람은 각자의 ‘전공 과목’도 다르다. 장철 교수가 증권 전문가라면 성 아나운서는 부동산 전문가다. 이 때문인지 성 아나운서는 ‘경제투데이’의 최고 게스트를 묻자 별다른 고민없이 헤럴드경제 장용동 편집 국장을 꼽았다. 훌륭한 게스트들이 많지만 자신과 관심이 비슷하고 늘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해서 전해 주는 장 국장과는 별다른 준비가 없어도 호흡이 딱딱 맞아 한 시간이 훌쩍 가버릴 정도라고 했다.성 아나운서는 또 KBS의 비공식 재테크 상담가라고 할 만큼 재테크에도 밝다. “좋은 정보, 당장 돈 되는 정보는 저도 잘 모를뿐더러 안다고 해도 말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저는 재테크의 기본을 항상 강조해요. 그 집의 가족이 몇 명인지, 재정 목표가 무엇인지 꼭 물어보죠. 특히 집을 장만할 때는 직장과의 거리와 교통의 편의성도 꼼꼼히 따져보길 권해요. 마지막으로 두세 가지 선택지로 압축한 다음 당사자가 직접 선택하게 하죠. 어차피 최후의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이니까요.”성 아나운서는 요즘 몇몇 아나운서 후배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곤 한다고 했다. 연예인과 아나운서 간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아나운서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분위기 때문이다.“아나운서는 분명 언론인입니다.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는 일도 아나운서의 업무 중 하나지만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 안이라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후배들도 자신의 직업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먼 미래를 생각해 남과는 다른 전문 분야를 만들어 공부하라고 권하고 싶어요.”약력: 1969년생. 1999년 KBS 공채 18기 아나운서(현). 이화여대 경제학 석사. 동 대학 경영학 박사 수료. KBS라디오 ‘성기영의 경제투데이’, ‘경제세미나’ 진행.이홍표 hawalli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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