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TV ‘나와라’ … 교육 콘텐츠 ‘승부수’

막 오른 IP TV 콘텐츠 전쟁

‘뒤늦은 출발’. 말 많고 탈 많았던 IP TV (Internet Protocol TV) 상용 서비스가 드디어 올 초 시작됐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커 차세대 성장 엔진으로 꼽혔던 IP TV는 2004년 처음 도입 논의가 시작됐지만 방송 업계와 통신 업계의 이해가 충돌하면서 4년 넘게 허송세월했다. 그사이 해외에서는 1세대 IP TV를 넘어 2세대, 3세대 서비스로 빠르게 진화했다.IP TV는 전파 대신 인터넷망을 써 채널을 무한대로 늘릴 수 있고 양방향 데이터 서비스를 통해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다. TV가 전면에 나와 있지만 IP TV는 단순한 TV 이상이다. 현대원 서강대 교수는 “IP TV의 핵심은 하나의 망으로 인터넷과 전화, 방송 서비스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출발은 늦었지만 IP TV에 거는 기대감은 정부나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라는 화두와 맞물려 IP TV 육성에 올인(다걸기)하는 분위기다. 김영삼 정부 때 케이블 TV가 탄생하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위성방송과 디지털미디어방송(DMB)이 만들어진 것처럼 IP TV는 이명박 정부를 대표하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성장 정체를 겪고 있는 통신사들도 IP TV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태세다. 유선통신과 무선통신을 대표하는 KT와 SK텔레콤은 시장 포화로 몇 년째 11조 원대 매출을 맴돌고 있다. 때마침 두 기업의 사령탑이 교체돼 신임 최고경영자(CEO)들의 한판 승부도 예상된다.향후 IP TV가 몰고 올 변화를 예측하기는 아직 쉽지 않다. 출발 때는 요란했지만 실제로 기대에는 못 미친 위성방송이나 DMB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하지만 IP TV의 파괴력은 기업들이 주도한 최근 몇 년간의 ‘프리(pre) IP TV’ 서비스를 통해 이미 확인됐다. 업계의 이해 충돌과 정책 혼선으로 IP TV 법제화가 지연되자 통신사들은 쟁점이 된 실시간 방송을 빼고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만으로 프리 IP TV를 론칭했다.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이 2006년 7월 ‘하나TV(현 브로드앤TV)’를 내놓으며 가장 먼저 치고 나갔다. 뒤이어 2007년 9월 KT가 ‘메가TV’로 맹추격에 나섰고 2007년 12월에는 LG데이콤이 ‘myLGtv’를 선보였다.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골라 볼 수 있게 해 주는 프리 IP TV 서비스는 시청자들의 TV 시청 패턴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방송국에서 짜놓은 편성표를 보고 그 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아 기다리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IP TV는 프로그램 시청의 주도권을 처음으로 시청자에게 돌려줬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골라 ‘나만의 편성표’를 짜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시청자들은 이 낯선 경험에 열광했다. 2007년 초 30만 명 안팍이던 IP TV 가입자는 2년 만에 160만 명대로 뛰었다.IP TV의 미래는 화려하지만 우선은 생존을 위해 케이블 TV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다. 가입자들이 내는 이용 요금을 주수익원으로 한다는 점에서 IP TV는 케이블 TV와 정확히 시장이 겹친다. 한국에서 케이블 TV는 이미 16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거대 산업이다. 현재 IP TV 가입자(프리 IP TV 포함)는 케이블 TV의 10%인 160만 명 수준에 불과하다. 변재승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앞서 IP TV를 도입한 나라들은 대부분 유료 TV 시장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아 IP TV가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의미를 가졌다”고 말한다.프리 IP TV에는 실시간 방송이 빠져 있었다. 이 때문에 프리 IP TV 가입자들은 공중파 TV 시청을 위해 별도로 케이블 TV에 가입하거나 안테나를 달아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올 초 실시간 방송을 포함한 IP TV 상용 서비스 개시로 이런 문제점이 사라지면서 케이블 TV와 정면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현재 16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디지털 케이블 TV는 서비스 내용에서 사실상 IP TV와 거의 차이가 없다. 이제는 케이블 TV 업체들도 방송과 인터넷, 통신(인터넷전화)을 묶음 상품으로 똑같이 제공한다.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케이블 TV나 IP TV나 지상파 재전송 등을 포함해 볼 수 있는 채널이 상당 부분 겹친다. 채널 수만 놓고 본다면 IP TV가 오히려 케이블 TV에 밀린다. 메가TV가 40개 채널로 가장 많고, 브로드앤TV는 23개, myLGtv는 21개의 채널을 볼 수 있다. 반면 케이블 TV는 최소 70개에서 100여 개에 이르는 다양한 채널을 넣어 준다. 통신사들이 콘텐츠 확충에 매달리고 있지만 기존 케이블 TV 업체의 눈치를 봐야 하는 방송채널사업자(PP)들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으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훈 K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의지가 워낙 강해 케이블 TV 업계의 압력이나 PP의 과도한 눈치 보기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며 “IP TV가 정말 돈이 되느냐가 가장 큰 관건”라고 말한다.전문가들은 IP TV가 초기 시장에서 안착하기 위해서는 IP TV만의 차별화된 콘텐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한 공중파 재전송이나 기존 PP 채널을 넣어 주는 것을 뛰어넘어,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 옷을 즉석에서 구매하거나 콘서트에서 좋아하는 가수만을 따라다니는 카메라를 선택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양방향 콘텐츠를 적극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콘텐츠 확보가 중요해지면서 통신사들이 직접 대형 복수방송채널사업자(MPP) 인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KT의 온미디어 인수설’과 ‘SK텔레콤의 CJ미디어 인수설’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통신사들의 막강한 자금력과 투자 필요성, 해당 MPP의 경영난 등을 고려하면 인수·합병(M&A)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통신사들의 중·장기적인 콘텐츠 전략이 아직 뚜렷하지 않아 당장 M&A가 실현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오히려 최근 새로운 돌파구로 부각되는 것은 교육 콘텐츠다. 방송통신위원회는 IP TV 정책에서 고용 창출, 투자 활성화와 함께 사교육비 절감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해 말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IP TV 상용 서비스 출범식’에서 목포 신안 앞바다 안좌초등학교를 IP TV로 연결하는 쌍방향 교육 콘텐츠가 시연됐다. 정부는 IP TV를 활용하면 사교육비 부담을 낮추고 교육 격차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종합 대책을 마련 중이다. 전국 초·중·고에서 IP TV 교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학교 망을 업그레이드하고 유명 학원 강의를 이용한 콘텐츠 개발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도 교육 전용 서비스부터 전용 셋톱박스까지 발 빠르게 투자에 나서며 교육 콘텐츠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교육 콘텐츠는 기존 프리 IP TV에서도 인기 콘텐츠 중 하나였다. 브로드앤TV의 경우 작년 12월 인기 순위에서 유아 교육 프로그램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교육 콘텐츠를 활성화하면 오락용 매체가 아니라 교육용 매체라는 이미지로 차별화할 수 있고 교육열이 높은 젊은 엄마, 학생층, 직장인 등에 폭넓게 어필할 수 있다”고 말한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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