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택 포스코 회장 사의
결국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 임기를 1년 남기고 중도 하차했다. 지난 2003년 회장직에 오른 이 회장은 지난해 초 연임해 내년 2월까지 임기가 남아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해 새 정부 출범 이후 사퇴설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지난 1월 15일 열린 이사회에서 자진 사퇴 의사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이사회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직후 참석한 ‘포스코 2009 최고경영자(CEO) 포럼’에서 이 회장은 “정치적 외압이나 외풍에 의한 사임은 아니다”며 “전문 경영인과 사외이사 제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불식시키고 싶은 마음에서였다”고 사임 배경을 밝혔다. 이 회장은 “최근 경영 환경은 우리 모두에게 외환위기를 극복한 이상의 용기와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에선 새 인물이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기를 1년여 남겨두고 있지만 CEO는 임기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풍 때문이 아니라 포스코의 미래를 후배에게 맡기기 위해 물러난다는 설명이다.또 이 회장은 “전문 경영인이 자기 맘대로 사외이사를 데려다 놓고 연임시켜달라고 부탁한다는 식의 사회적 불신이 나를 괴롭혔다”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이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문제에 대해선 “우리는 더이상 흥미가 없다”고 말했다.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회장이 외부 압력 때문에 물러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이 회장 퇴진설이 제기돼 온 때문이다. 재계에선 이 회장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물러난 것이란 해석도 내놓고 있다. 지난해 말 검찰은 포스코가 2005년 대구지방국세청의 정기 세무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수사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당시 검찰은 특정 기업을 겨냥한 수사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논란을 낳았다. 또 지난해 말께 일각에서 포스코에 일부 사외이사 교체를 주문했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이와 관련, 이 회장은 사석에서 복잡한 심경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포스코의 수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낙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 당시 박태준 명예회장이 물러났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김만제 회장이 퇴진했다. 노무현 정권 때도 유상부 회장이 임기 중 자진 사퇴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가 물갈이되기 일쑤고, 그때마다 조직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반복돼 온 것이다.2000년 민영화된 이후 정부는 포스코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또 경영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의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대주주도 없다. 하지만 시장에는 여전히 포스코를 공기업으로 보는 낡은 시각이 존재했다.몇 년 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정치권 일각에서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탄생한 기업인 만큼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금을 포스코가 대라는 얘기가 나왔다. 일반적인 민간 기업이었다면 이런 요구를 했을 리 만무하다. 포스코를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 가운데 여전히 공기업 시절에 고정돼 있는 경우가 있음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이 회장은 차기 회장이 선임되는 다음달 27일 주주총회 당일 정식으로 물러난다. 포스코는 이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비상 경영 체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포스코는 철강 수요 감소와 원자재 값 인상에 따라 경영 환경이 악화되자 이미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이 갑작스레 사퇴 의사를 밝히자 회사 내부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하지만 포스코 내부에선 이 회장이 재임 기간에 밑으로부터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회사를 운영하는 시스템 경영 구도를 정착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가 사퇴하더라도 경영 목표 달성을 위한 행보에는 큰 걸림돌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이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15일 포스코는 전년보다 매출이 38%, 순이익은 20.9% 증가한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했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