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Gaia)를 넘어서

과학 기술의 발달과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식으로 세계는 하나가 됐다. 브라질 나비의 하찮은 날갯짓은 한국에 폭풍뿐만 아니라 생존마저 위협하는 시대가 됐다. 바야흐로 세계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번 글로벌 위기는 바로 세계화 시대 이후 최초의 위기다. 따라서 경륜과 역사에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1978년 영국의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지구 전체를 스스로 조절되는 하나의 생명체로 판단하는 가이아(Gaia) 이론을 주장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사소한 변화가 지구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네트워크로 연결됐다는 의미다. 학문 전체를 통합한 후 대응을 촉구하는 ‘통섭(Consilience)’의 개념도 가이아 이론과 유사하게 종합적 시각을 강조한다.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은 상호의존성이다. 지구상의 작은 변화도 한국과 세계 전체에 영향을 준다. 네트워크는 금융뿐만 아니라 무역, 정보, 문화를 통해서도 촘촘히 연결돼 있다. 이번 글로벌 위기의 해결이 어려운 것은 이런 세계화 때문이다. 특정 국가가 아무리 좋은 해결책을 내놓아도 그 국가만 위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세계의 모든 국가가 위기 탈출을 위해 노력할 때에만 해결될 수 있다.결국 세계화란 가이아 이론의 또 다른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이아와 통섭의 관점은 이번 글로벌 위기의 발생과 확산뿐만 아니라 해결 과정에서도 꼭 필요한 개념이다.최근 구조조정의 속도가 화두가 되고 있다. 너무 느리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그러나 세계화 관점에서 보면 한국만 속도를 낼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구조조정은 여타 국가의 구조조정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빠르고 일방적인 구조조정은 오히려 한국의 입지를 좁힐 수도 있다.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에 한국이 자금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 일본, 그리고 유럽이 자국 업체를 지원한 후 조용히 해야 한다. 글로벌 위기 이후의 통상 마찰까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 산업이나 조선 업종도 상황은 유사하다. 이와 같이 구조조정과 통상 마찰은 연결돼 있다.또한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회사의 상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결국 금융, 산업, 외교통상 분야 모두를 고려한 정교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과 교역 비중이 높은 국가의 정책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국내에 한정된 건설사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부실 규모가 큰 건설 업체를 퇴출시킬 경우 은행의 투명성은 크게 높아진다. 그러나 빠른 구조조정은 주택 가격을 일시적으로 추가 하락시킬 수 있다. 미분양 아파트를 할인 매입할 경우에도 정상 분양 가구의 반발을 감안해야 한다. 구조조정에 앞서 사회적 합의가 전제 조건이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큰 수술을 앞두고 의사들은 신체의 취약한 부분을 먼저 치료한 후 깊은 환부에 메스를 들이댄다. 따라서 국내에 국한되는 위험 요인부터 과감하고 신속하게 치유해 체력을 보강해야 한다. 히딩크 축구처럼 먼저 체력을 기른 후 본선인 글로벌 위기와 싸워야 한다.달러 약세 가능성, 극단적인 세계 경기 침체, 이머징 마켓의 불안정 등과 같은 글로벌 위기의 치유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11년 전 외환위기 당시보다 세계는 민감해졌다. 사춘기 소녀처럼 작은 충격에도 과민 반응한다. 따라서 먼저 한국의 체질을 강화한 후 달라진 신세계와 투쟁하고 적응해야 한다.따라서 글로벌 위기의 대처 과정이나 국내 구조조정 시 가이아적 관점의 종합 대응이 절실히 필요하다. 다행히 정부는 비상경제상황실(War Room)을 만들면서 종합적인 위기 대응체제에 돌입하고 있다. 그러나 참여자는 경제 관련 수뇌부에 한정됐다.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워룸이 되는 치밀하고 통합된 대응이 요청된다. 생태계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는 사소한 부분이라도 어긋날 경우 전체가 붕괴되는 특성이 있다.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약력: 1963년 서울 출생. 82년 고려고 졸업. 86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86년 대우증권 입사. 2000년 투자분석부장. 기업분석부장. 2006년 리서치센터장. 저서: ‘디플레이션 속으로’ ‘글로벌 위기 이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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