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속 ‘나홀로 쭉쭉’… 남녀노소 ‘인기’

가정용 게임기로 ‘제2의 대박’ 노리는 닌텐도

글로벌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로 전 세계 기업들이 술렁이고 있다. 올해 심화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벌써부터 몸집 줄이기에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게임기 업체 닌텐도에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닌텐도는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위(Wii)’의 돌풍으로 사상 최대 매출을 갈아치우며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06년 말 첫선을 보인 위는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3500만 대가 팔려 나갔고 경기 불황 속에 매출이 오히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닌텐도의 위는 지난해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스타 상품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8년 10대 히트상품’으로 위를 꼽았다. 일본의 대표적인 유통 전문지 ‘닛케이 트렌디’와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도 2008년 히트 상품 목록에 똑같이 위를 올려놓았다. 한국과 미국, 일본에서 모두 히트 상품으로 선정된 제품은 위 하나뿐이다. 이정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위의 인기는 불황의 시기에는 소비자들이 집에서 즐기는 엔터테인먼트를 선호한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일반적으로 가정용 게임기는 불황에 강한 대표적인 상품으로 꼽힌다. 적은 돈으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고,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는 위안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수요에 가장 잘 맞는 상품은 바로 가정용 게임기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위의 인기 비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최근 많은 기업들이 닌텐도의 위에 담겨진 혁신성에 주목하고 있다. 위를 탄생시킨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사장은 ‘일본의 스티브 잡스’란 별칭도 얻었다. 김영건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위는 기존의 가정용 게임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제품의 성능만 본다면 위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PS3)나 MS의 Xbox360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PS3와 Xbox360은 고성능 CPU와 실사수준의 화려한 그래픽, 웅장한 사운드로 중무장하고 있다. 반면 닌텐도의 위는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양분하고 있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면서도 기기의 성능은 훨씬 낮은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게임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아이디어에 있다’는 닌텐도의 철학은 TV 리모컨을 닮은 ‘위모컨’에 응축돼 있다. 위는 게임기에 부착된 센서가 사람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때문에 따로 복잡한 조작법을 익힐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골프 게임의 경우 위모컨을 쥐고 실제 골프를 하듯 모니터를 향해 휘두르면 된다. 위모컨을 쥐고 실제처럼 동작을 따라 하려면 온몸을 움직여야 한다. 이 연구원은 “기존 게임기는 시각과 손가락의 민첩성에 의존했지만 위는 게임을 온몸을 움직이고 굴리는 체감 영역으로 확장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조작 체계에 거부감을 느끼기보다 기존에는 체험할 수 없던 새로운 즐거움에 열광했다.닌텐도의 성공 스토리는 2004년 말 내놓은 야심작 닌텐도DS(Dual Screen)에서 출발한다. 2000년대 초반 닌텐도는 일본 게임 시장의 위축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120년의 전통을 가진 닌텐도는 화투와 트럼프 제조사에서 출발해 1980년대부터 비디오 게임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액정 게임기 ‘게임&와치(1980년)’와 ‘게임보이(1989년)’의 대성공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 세계 게임기 시장을 호령했다. 그러나 그 이후 고성능화 등 급격한 시장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내리막길을 걸었다.닌텐도는 ‘게임 인구 확대’에서 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찾았다. 젊은 남성 게임 마니아에 초점을 맞추던 경쟁사들과는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닌텐도는 ‘5세부터 95세까지를 타깃으로 한다’는 전략을 내걸었다. 그 첫 작품이 바로 닌텐도DS다. 우선 게임 조작 방법을 혁신적으로 바꿨다. 닌텐도DS는 누구나 익숙한 ‘터치펜’을 게임기의 입력 수단으로 채택했다. 이와 함께 남녀노소 전 연령층이 모두 즐길 수 있는 게임 콘텐츠를 적극 개발했다. ‘닌텐도DS 매일 두뇌 트레이니’, ‘듣고 쓰고 친해지는 DS 영어삼매경’ 등이 대표적이다. 닌텐도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유현선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소비자들이 닌텐도DS를 게임기가 아니라 학습용 기기로 인식하게 해 게임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고 지적했다.닌텐도는 2006년 ‘닌텐도DS’를 개량한 ‘닌텐도DS 라이트(닌텐도DSL)’를 내놓았고 2007년 1월부터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출시 첫해 닌텐도DSL은 ‘닌텐도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전국적으로 100만 대가 팔려나갔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단일 기종으로 100만 대 이상 팔려나간 게임기는 닌텐도DSL뿐이다.2007년을 뜨겁게 달군 닌텐도 열풍은 국내 게임 시장에도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한국게임산업진흥원의 ‘2008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07년 국내 게임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30.9% 줄어든 5조1436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닌텐도DSL의 빅히트로 비디오 게임 시장은 전년 대비 208%나 급팽창했다. 한국 게임 시장은 온라인 게임 중심의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온라인 게임이 전체 시장의 43.5%를 차지한다. 반면 세계 게임 시장은 비디오 게임(48.7%) 중심이다. 세계시장에서 온라인 게임 비중은 7.6%에 불과하다.닌텐도 ‘위(Wii)’는 ‘게임 인구 확대’ 전략의 2단계 제품이다. 닌텐도DSL로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거둔 성공을 가정용 게임기 분야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닌텐도DSL이 경쟁 제품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포터블(PSP)을 누른 것처럼 위 역시 PS3와 Xbox360을 가볍게 따돌렸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상황이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게 돌아가고 있다. 위로 닌텐도의 열풍을 이어가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다는 것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지난해 4월 말 한국에 상륙한 위는 10월까지 6개월간 10만 대가량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사 제품의 판매 추이에 견줘보면 양호하지만 닌텐도DSL이 월 10만 대씩 팔려나간 것을 고려하면 실망스러운 성적이다. 해외에서는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의외라는 평가도 나온다. TV 중심의 한국 거실 문화, 온라인 게임과의 경쟁 가능성, 닌텐도DSL로 시달린 학부모들의 거부감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하지만 닌텐도의 도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닌텐도는 2008년 말 세계적으로 1000만 개가 판매된 위 전용 인기 게임인 ‘위 피트(Wii Fit)’를 발매했다. 위 피트는 전용 보드를 이용해 몸의 상태와 밸런스를 측정하고 요가, 근력 운동, 밸런스 게임 등 다양한 트레이닝까지 가능한 웰빙 게임이다. 또 최근 공개된 새로운 야심작 ‘닌텐도DSi’도 2009년 해외시장 공략에 나선다. 닌텐도DSi는 ‘게임 인구 확대’의 3단계 제품에 해당한다. 닌텐도DSi는 기존 닌텐도DSL에 비해 화질과 네트워크 기능이 크게 강화됐다. 게임기에 카메라도 장착되고 사운드도 개선됐다. 네트워크로 ‘DSi 숍’에 접속해 게임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이를 위해 ‘닌텐도 포인트’ 제도도 운영된다. 아이팟과 아이튠을 연계한 애플의 전략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설립 연도: 1889년 / 본사: 일본 교토 / 직원 수: 1465명 / 대표: 이와타 사토루 / 사업 내용: 가정용 레저 기기 제조·판매 / 매출: 167억2423만 달러(2007년) / 순이익: 25억7343만 달러(2007년)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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