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가 공기업 노조에 날린 화살

청와대 통신

이명박 대통령이 공기업 노조와의 일전(一戰)을 선언했다. 2008년 12월 30일 청와대에서 34개 주요 공기업 사장들로부터 새해 업무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였다. 형식은 공기업 사장들을 강한 어조로 꾸짖는 형식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노조를 겨냥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해석이다.이날 대통령의 발언은 분명하고 단호했다. 이 대통령은 공기업에 대한 평판과 관련, “대부분의 기관이 비전문적이고 안일하고 방만한 경영을 해서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가장 먼저 개혁을 해야 할 곳이 공공기관”이라며 사장들을 강하게 질책했다.그러면서 그런 이유로 노조와의 관계를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공기업) 노조가 민간 조직이 아니고 정부 조직인데도 기관장이 노조와 서로 잘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 조직을 아주 방만하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만든 예가 있다”고 말했다.이 대통령은 “(노조와 협상을 하면서) 조직에는 도움이 되지만 국가에 반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시대적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적당히 해선 안 된다. 그 점은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다 역량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런 역할을 맡기 힘들다고 생각하면(스스로 조직을) 떠나야 한다”고 못 박았다. 앞으로 공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에 밀리는 공기업 사장들은 가차 없이 교체하겠다는 경고성 발언이다.이 대목에서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했고 190명 참석자, 즉 공기업 사장단과 행정부 장관들, 청와대 수석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는 게 한 참석자의 전언이다.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왜 전에 없는 강경 발언을 했을까.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공기업 사장들에 대한 불신이 폭발했다는 해석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공기업에 대한 강력한 개혁을 요구했지만 잘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일 관련 부처 장관들을 통해 “공기업 구조조정 실적을 연말까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는데 제대로 실적이 올라오지 않았다. 대통령으로서는 장관도 장관이지만 일선에서 공기업 사장들이 제대로 안 뛰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두 번째는 새로 임명된 사장들에게 힘을 실어 줬다는 해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무리 독한 마음을 먹고 가도 노조와 싸우다 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대통령께서 초임 사장들에게 초심을 잃지 말고 일할 것을 당부하신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마지막 해석은 이날 발언이 특별한 배경이 있다기보다는 이 대통령의 기본적인 노조 인식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대기업 최고 경영자와 서울시장을 거치면서 ‘노조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인식이 형성됐고 이를 공기업 사장들에게도 똑같이 주문했다는 것이다.실제로 이 대통령은 2003년 서울 지하철 노조 파업 때 노조가 파업을 강행하자 소방관을 대체 투입하며 정면으로 대응했다.이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당선인 신분으로 새해 신년사를 발표할 때 “대한민국 선진화는 법과 질서를 기키는 것에서 시작한다. 노동자도 법과 질서를 지키는데 소홀해서는 안 된다. ‘떼법’이니 ‘정서법’이니 하는 말을 우리 사전에서 지워버리자”고 제안했었다. 또 지난 11월 17일 남미 출장 중에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서울메트로·철도공사(코레일) 노조의 파업 계획과 관련, “민간 기업도 아니고 공기업에서 해고자 복직 문제로 파업하겠다는 것은 도저히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없고 공기업으로서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며 “철도노조의 파업을 철회하도록 하라”고 긴급 지시했었다.취임 1주년인 2008년 12월 19일에는 GM대우자동차 공장을 찾아 “GM이 부도 위기에 몰린 것은 노조의 과잉 요구를 최고경영자가 모두 들어 줬기 때문”이라며 “지금의 위기로 향후 세계의 모든 노사 관계도 달라질 것이므로 한국도 (이 시기를) 노사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유야 어쨌든 노동계는 이 대통령이 불법 노조 활동에 강경 대응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올해부터 본격화될 공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적지 않은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박수진·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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