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에 담긴 관료들의 승부수

경제부처 24시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과천 정부청사의 경제부처와 서울 남대문로의 한국은행은 지난 2일 일제히 시무식을 갖고 새해 업무에 돌입했다. 지난 한 해 어려운 경제 여건으로 국민들에게 욕도 많이 들어 먹은 관료들이지만 새해에는 제발 경제가 좋아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야 국민들과 별 다를 바 없을 것이다.각 부처 수장들의 신년사 속에서도 이런 고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노력해도 이번 경제 위기를 쉽게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 앞에 착잡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새해를 맞는 경제 관료들의 마음가짐을 부처 수장들의 신년사 속 한마디를 통해 정리해 봤다. 이번 미국발 금융 위기를 계기로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무너지고 다양한 강자들이 패권을 겨루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 가운데서 한국이 기회를 잘 잡는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조 시인 강만수 장관 특유의 ‘희망의 화법’이자 옛 경제기획원의 핏줄을 이어 받은 진취적인 조직 문화가 담겨 있는 신년사였다는 평가다.문제는 우리 앞에 놓인 경제 여건이 그렇게 녹록치 않다는 데 있다. 경제 관료들의 거창한 수사(修辭)대로 모든 일이 잘 풀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강 장관 스스로도 “올해 경기가 위축돼 일자리를 만들기보다 지키기도 어려운 사정이 될 것 같아 큰 걱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지난해 주말 하루도 쉴틈없이 일을 했으면서도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은 재정부가 새해에는 “서민의 눈물과 청년의 한숨을 가슴에 품고 일하겠다(12월 31일 기자들과의 송년다과회)”는 다짐을 잘 실천해 따뜻한 칭찬을 받는 일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신년사에서 “2009년은 기업 도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투자가 중단되고 우수 인력이 사장돼 성장 동력의 근간이 훼손되는 상황이 무엇보다 우려된다”며 “내수 진작에 주안점을 두고 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용 사정 개선에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한은 임직원들은 올 한 해 글로벌 금융위기 대처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소극적인 물가관리에서 벗어나 위기 대응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한층 높아진 중앙은행의 위상에 자긍심도 느꼈다. 미국 일본 중국 등과 통화스와프 라인을 개설하는 협상을 주도하고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1%포인트씩이나 전격 인하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다만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중압감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은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라 대처 방안이 정해져 있었지만 올해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정책들을 시행하면서 무척 조심스럽고 당황이 되는 때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성공적인 완수를 주문하며 이 같은 비유를 들었다. 정 장관은 “정비 사업이 전라 경상 충청 경기도에 걸쳐 고루 진행되므로 전국적인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토지를 수용할 필요가 없으므로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 살리기의 핵심 국책 사업으로 꼽히는 4대강 정비사업을 ‘사실상 대운하’라는 논란을 정면돌파해 가면서 힘 있게 추진하겠다는 국토부의 다짐이 정 장관의 이 한마디에 압축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소처럼 농어업인에게 봉사하고 섬기는 우직한 공직자로 재탄생하겠다”며 개혁 의지를 내비쳤다. 올 한 해 유난히 많은 일을 겪었던 농식품부 공무원들은 홀가분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가운데서 새해를 맞았을 것이다.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과 멜라민 식품 파동, 쌀 소득 보전 직불금 부당 수령,농협중앙회 개혁 등 잇따라 터져나온 이슈들로 하루도 바람 잘날 없는 나날을 보냈다. 당연히 그어느 부처보다 일도 많이 했다. 소를 닮겠다는 장 장관의 말처럼 새해에는 국민 앞에서 정직한 자세로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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