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다음 샷’… 과거는 ‘No’

뉴스 인 뉴스 - 골프에서 배우는 경제

골프 이야기에 이런 게 있다. ‘골프하는 이들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샷은’이라는 문제다. 대답과 그 논리는 제각각이다. “뭐니 뭐니 해도 드라이브샷이 가장 중요하다. 일단 안전하고 먼 데로 공을 보내야 파온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럴듯하다. 흔히 ‘보기 플레이어’는 넘나든다는 중간 실력의 골퍼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할 것 같다. 그만큼 티박스에서 휘두르는 첫 타는 중요하다. 골프를 웬만큼 한다는 ‘싱글 핸디캡’의 대답은 다를지 모른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언 샷이다. 정교하게 원하는 지점으로 날려 보낼 수 있어야 파를 하고 버디도 노려 스코어를 낮출 수 있거든.” 스코어를 넘어 골프라고 하면 매사 내기와 연관시키는 승부사들은 어떨까. 아마 퍼트가 중요하다고 할 것 같다. “퍼트야말로 점수다. 그게 돈이고 승부도 갈라지니까. 오죽하면 ‘드라이버샷은 쇼, 퍼팅은 돈’이란 말까지 나왔겠나.” 모두 그럴듯한 답이지만 다소간 부족한 듯하다.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닌 이 얘기의 진짜 답은 뭘까. 드라이브샷도, 아이언도, 퍼팅도 아니다. 정답은 ‘다음 샷’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열이면 열 지나간 샷, 특히 잘못하고 실수한 이전의 샷에 집착하니 말이다. 그래서 정말로 중요한 다음 샷에 몰두하지 못한다.어느새 2009년 새해다. 경제는 여전히 어렵다. 지난해에도 상반기엔 고유가와 고물가로 정신을 못 차리게 하더니, 하반기엔 글로벌 금융 위기에다 유례없는 경제 위기로 급반전돼 모두 힘들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터널 끝은 보이지 않는다.국제통화기금(IMF)까지 나서 앞으로 최소한 7분기(1년 9개월)간 경제 위기가 계속된다는 전망을 지난 연말 세밑에 내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대로라면 과거 대공황과 같은 수준이 될 것이라며 경고인지, 악담인지 내놓았던 바로 그 IMF다. 하긴 IMF도 나름대로 살아남자고 내놓는 전망일지 모른다. 경제 위기를 맞아 국가 간 통화스와프와 같은 공조로 공생을 도모하면서 11년 전 한국처럼 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려는 데가 없는데다 새로운 국제통화 체제를 만들기 위한 기류까지 있으니 IMF 무용론이 과장은 아니다.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IMF의 전망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통계 수치로 확인되고 산업 현장의 분위기를 엿봐도 나쁜 것은 사실이다. 2008년 연말에 나온 통계청의 11월 광공업 산업 활동 동향은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14%다. 이는 1970년 1월 이 조사를 시작한 이후 38년 10개월 만에 최악이다. 그뿐인가. 2008년 11월 신규 일자리는 7만8000개, 연초 1월 23만5000개의 3분의 1로 추락했다. 결국 대통령까지 나서 새해의 마이너스 성장을 거론하며 겁을 주는 상황이다.기업도 예외가 아니지만 이럴 때일수록 개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샷’이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그때 펀드에서 빼냈어야 하는 건데…”, “재작년 그때 집을 팔걸…”, “그때 상가 경매 대신 정기적금에 넣었으면…”, “당장 필요도 없는 집, 괜히 분양받아가지고는….” 복기해 보고 한번 반성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공포와 아집에 휩싸인 채 이미 지난 것에 집착해서는 다음 샷이 무너진다. 더구나 지금은 더 어려운 홀에 와 있다. 양쪽 모두 OB 지역이고, 군데군데 모래 벙커도 많다. 해저드까지 있다는데 2009년 벽두라는 이 티박스에서는 보이지도 않는다. 2007년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고 2008년이라는 직전 홀보다 훨씬 어렵다는 곳이다. 낡은 안내 지도도 코스를 고치기 전 것이다. 페어웨이는 유난히 좁고, 홀은 오르막내리막이 교차되며, 곳곳의 나무들이 그린도 가리는 제일 어려운 홀이라고 하는데, 고수라는 동반자들도 설명에 자신이 없다. 모두 이런 홀은 처음이라는 점만 강조한다. 그러면서 욕심내지 말고 처음 배운 기본대로 또박또박 진행하라고 한다. 핸디캡 1번 홀로 프로 선수도 파가 쉽지 않다는 것, 그것만이 공통점이다.지금 2009년이라는 새 홀이 이렇게 우리 눈앞에 있다. 코스도 어려운데 안개까지 갑자기 밀려온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샷은 잠시 잊자. 특히 실수한 것, 기회를 놓친 것은 이참에 다 잊자. 지금 눈앞의 샷과 남은 홀에 집중하자.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고, 따뜻한 탕에 몸을 담근 채 핸디캡 1번의 이 홀을 느긋하게 돌아볼 때는 오게 돼 있다.허원순·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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