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미래가 궁금해’… 판매량 ‘껑충’

미래 예측 서적 출간 러시

지난 2008년 12월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경제일반 코너. 1년 중 거리 분위기가 가장 들뜨는 크리스마스이브이건만 이 코너를 찾은 독자들의 얼굴은 심각하기만 하다. 특히 2009년 이후 미래의 전망을 담은 책에 손길이 많이 닿았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부의 미래’, 피터 드러커의 ‘미래경영’ 같은 ‘고전’들도 파워를 과시했다. 이날 판매대 위를 차지한 책 가운데 절반 정도가 ‘미래’ ‘전망’ 등을 제목에 담고 있었다.최근 출판가에선 장·단기 미래를 전망하는 미래 예측 관련 서적의 출간이 이어지고 있다. 2008년 11월 이후 두 달여 동안 쏟아져 나온 책이 수십 권에 이른다. 한국경제신문의 ‘대전망 2009’처럼 각 언론사와 연구소가 매년 연말에 출간하는 신년 경제 전망 서적을 필두로 중·장기 미래를 내다보는 미래학 관련 서적이 출간 러시를 이루고 있다.이 같은 움직임은 올 겨울 유난히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새해 경제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와 관련한 책이 으레 나오게 마련이지만 그 종류나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한국경제신문과 같은 경제 전문 언론사와 삼성경제연구소 정도가 ‘고정 멤버’로 새 책을 낼 뿐이었다.하지만 2008년은 상황이 아주 다르다. 교보문고 사회과학 파트를 담당하는 정영미 매니저는 “다른 어느 해보다 미래 예측 관련 책이 많이 나오고 있고 또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연말연시에 가장 인기 있는 분야인 자기계발 관련 서적을 압도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게 정 매니저의 전언이다. 광화문 교보문고의 경우 미래 예측 관련 책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2배 이상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미래 예측 관련 신간은 최근 1~2개월 사이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미래를 주제로 새 책을 기획 중인 출판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연말연시라는 시기적 특징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통상 11~2월이 미래 예측 서적의 ‘시즌’으로 꼽힌다.특히 이번 겨울엔 다양한 시각과 주제의 미래 예측 서적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쓴 ‘미래를 말한다’, 유엔미래포럼이 내놓은 ‘유엔미래보고서’의 한국어판, ‘증권가의 미래학자’로 불리는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이 내놓은 ‘글로벌 위기 이후’, ‘유엔미래보고서’를 번역한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한국 대표의 또 다른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 등은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라 있다.미래 예측 서적 출간 붐은 2008년 전 세계가 겪은 경제 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경기 불황에 따라 미래의 불확실성이 한층 더 심화되면서 앞날을 미리 알기 위한 희망도 커졌기 때문이다. 불황이 만들어낸 일종의 틈새시장인 셈이다.특히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이들에게서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지혜를 배우려는 마음이 독자들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고 있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한국 대표는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미래학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고 말했다.실제로 박 대표가 이끄는 사단법인 유엔미래포럼은 미래학에 대한 국내의 관심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포럼에는 현재 1만6000여 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으며 이 가운데 3500여 명은 미래 예측에 직접 참여하거나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지난 2005년에 발족, 불과 3년여 만에 이룬 성과다.2008년 가을부터 신드롬을 일으킨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미네르바가 리먼브러더스의 부실을 예견하고 “주가 500까지 폭락, 집값 반 토막 난다”고 한 후 현실화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는 이야기다. 교보문고 정 매니저는 “미네르바가 등장하면서 출판계에 새로운 분야가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대공황 이후 미국에 닥친 경제 위기가 세계경제의 변곡점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예상도 미래 예측 서적의 인기에 불을 지피는 요인으로 꼽힌다. 1949년 산업화 초입에 조지 오웰이 ‘1984년’을 내면서 산업화 이후의 세상을 미리 점쳤고 상당 부분 맞아 들어갔듯 향후 미국 경제의 위상이 바뀌고 그에 따른 변화가 이어질 것인지가 세계적인 관심이다. ‘1984년’의 ‘빅 브라더(big brother) 세상’처럼 향후 새롭게 나타날 권력의 실체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미래 예측 서적이 인기를 끌면서 출판 업계는 ‘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출판가 흥행 키워드로 ‘미래’가 급부상한 것이다. 경향미디어 이영민 편집장은 “다른 해와 달리 미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독자 반응이 뜨겁다”면서 “당분간 비슷한 주제의 책 출간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외국에서 인기를 끄는 미래 예측 관련 서적의 한국어판 출간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한경BP)의 정영주 팀장은 “1월 중으로 미래 관련 책 두 권을 새로 펴낼 예정”이라면서 “아마존닷컴에서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모하메드 L 에리언의 ‘새로운 부의 탄생’, 박경철 이채원 등 50명의 전문가가 쓴 ‘2009 금융증권 트렌드’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박영숙(53) 유엔미래포럼 한국 대표는 최근 두 권의 미래학 책을 동시에 내놔 출판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매년 유엔미래포럼이 펴내는 ‘유엔미래보고서’의 한국어판(교보문고)과 자신의 미래학 연구를 담은 ‘세계의 지도를 바꾸는-새로운 미래가 온다(경향미디어)’가 그것이다.이들 책에서 그는 “미래 예측 기술이야말로 생존 기술”이라고 역설한다. 또 “미래학만한 블루오션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앞으로 개인, 기업, 국가 할 것 없이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미래 사회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호주대사관 문화공보실장으로 활발한 외교 활동을 하면서 유엔미래포럼 등 18개 미래 관련 국제기구의 한국 대표를 맡고 있는 그에게 요즘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할 몇 가지를 물어 보았다.유엔미래포럼에선 2011년에 올라갔다가 2015년께 다시 바닥을 치고 2016년부터 회복된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버락 오바마의 변수가 있는데, 경기 회복 드라이브를 예상보다 세게 걸 경우 1년 반 이상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예상합니다.1980년에 미국에 있는 세계미래회의 콘퍼런스에 갔더니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물 부족 국가가 된다’고 했어요. 귀가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당시 국내에선 이 이야기를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2006년에는 35개 국가의 미래지수를 내봤는데 한국의 경우 2008년 8월부터 성장률 둔화가 시작돼 사실상 ‘잃어버린 10년’의 터널로 들어간다고 나왔어요. 이걸 경제신문사의 지인들에게 보여줘도 믿지 않았죠. 지금의 경기 침체는 이미 2년 전에 예측된 겁니다.냉전시대에 예측했던 제3차 세계대전 가능성 문제, 밀레니엄 전에 확실시했던 Y2K 문제, 로봇의 상용화에 따른 인간 역할의 축소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이 발달된 최근 몇 년 사이 ‘예측은 다 맞는다’고 말합니다. 환경과 상황 변화에 따라 예측을 즉각 수정할 수 있고 예측 시스템을 온라인화하면서 단기 미래는 거의 정확하게 내다볼 수 있게 됐죠.물론입니다. 나노, 바이오, 환경 산업과 에너지 산업(태양광에너지 등 대체에너지), 위성항법장치(GPS)나 보안 산업을 포함한 모니터링 산업, 노인 관련 및 건강관리 산업, 교육 및 인력공급업(헤드헌팅) 등이 전도유망합니다. 반면 조선, 철강, 자동차산업은 사라진다고 봐야 합니다. 최근 들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향후 제조업 비중은 2% 아래로 내려가고 서비스 산업이 그 자리를 채울 겁니다.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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