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묵 소년, 아웃소싱 지존 ‘등극’

구자관 삼구개발 책임대표사원

찬바람을 맞으며 새벽 첫차로 출근해 화장실 청소를 마친 미화원들에게 “여사님, 고맙습니다”라며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밤샘 근무를 마친 아파트 경비원이나 방 청소를 끝낸 호텔 룸메이드에게 “고생이 많으십니다”라며 꾸벅 절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삼거리 부근에 있는 (주)삼구개발은 청소, 건물 관리, 호텔 방 정리, 경비 등을 하는 업체다. 이 회사에 속한 미화원 경비원들은 이런 인사를 늘 받는다. 이들은 이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누구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이들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은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가장 어른인 구자관(65) 대표다. 이 회사는 몇 가지 면에서 무척 특이한 회사다.첫째, 창업자인 구 대표는 대표이사이면서도 대표이사라는 직함을 쓰지 않는다. 키 160cm의 단구에 얼굴은 새카맣고 거북등처럼 거친 손을 갖고 있는 그의 회사 내 직함은 ‘책임대표사원’이다. 사무실 명패나 호칭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 사원과 똑같은 사원이면서도 사원으로서의 권한은 없고 무한 책임만 지는 대표라는 뜻이다.둘째, 건물 관리나 청소 용역 등은 연줄이나 배경에 의해 영업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이런 연줄이란 게 없다. 창업자인 구 대표의 이력을 보면 지연·혈연·학연을 내세울 만한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사친회비를 내지 못해 초등학교 졸업장조차 받지 못했다. 중학교에 다닐 나이인 열네 살 때부터 장사로 가족들을 부양했다. 겨울에는 메밀묵 통, 여름에는 아이스케키 통을 메고 미아리 산동네를 누볐다. 무인가 야간 중학교 과정인 고등공민학교를 거쳐 성북구 안암동에 있는 용문고 야간을 다닌 게 환갑 이전까지의 학력의 전부다(올해 초에야 용인대를 졸업했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들이 이 회사에 일을 맡긴다.이 회사가 관리하는 업체는 신세계를 비롯해 SK에너지, 대한항공, 농심 등 200여 개사에 총 500여 개 사업장에 이른다. 대한항공의 일은 20년 이상 해 오고 있다. 농심 본사 사옥에 대해선 청소 전기설비 보일러 관리 등을 해 오고 있다.셋째, 이 회사의 본사 사원 100여 명은 모두 자사의 주식을 갖고 있다. 모두 구 대표가 무상으로 나눠준 것이다.넷째, 불황에도 급성장하고 있다. 이 회사의 매출(삼구에프에스 등 자회사 매출 포함)은 2007년 약 1200억 원, 2008년은 약 1500억 원에 달했다. 2009년은 1800억 원, 2010년은 2300억 원을 목표로 잡고 있다.다섯째, 아웃소싱 업체는 비정규직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8000명에 이르는 이 회사의 현장 사원은 80명만 제외하고 모두 정규직이다. 4대 보험과 퇴직금이 보장된다. 화장실 청소를 하건, 경비를 서건 모두 정식 사원이다.청소 경비와 같은 용역 아웃소싱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사업이다. 특별한 진입 장벽도 없다. 누구나 사람 몇 명 뽑아 시작할 수 있다. 초기 투자가 많이 드는 장치산업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친·인척 퇴직 임원 등이 해당 업체와 연줄을 갖고 이 사업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등 든든한 배경을 통해 일감을 수주하기도 한다.그런데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는 이 회사에 왜 많은 기업들이 찾아와 일을 맡기고 있는 것일까. 해답은 입소문과 신뢰다.“우리 회사에 일을 맡기면 화장실이 안방처럼 청결해지고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구 대표는 설명한다. 또 “특히 이런 내용이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면서 물어서 찾아온다”고 덧붙인다.어떻게 그는 전국 1500개 아웃소싱 업체 중 굴지의 업체를 일궈냈을까. 구 대표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자란 곳은 경기도 광릉 부근이다. 선비 같은 부친이 청소용 솔을 만드는 가내 기업을 운영했지만 실패해 가세가 기울자 그를 포함한 7남매는 먹고 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자신은 광릉 외갓집으로, 동생은 가평 고모 집으로, 누나는 가정부로 각각 길을 떠났다. 이후 미아리 부근의 산동네로 돌아왔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 여름엔 아이스케키 장사, 겨울엔 메밀묵 장사와 구두닦이, 봄 가을엔 신문팔이를 했다.“당시 제일 부러웠던 게 검은 교복에 검은 모자를 쓴 중학생이었다”고 그는 술회한다.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해 일종의 야학인 고등공민학교를 다녔다. 정릉천변에 있던 야학은 사과 궤짝이 책상이었다.졸업 후 용문고 야간 과정을 다녔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했다. 이 공장은 냄새가 심하게 나는 개천 둑에 임시건물로 지어진 것이어서 학교에 도착하면 온몸에 밴 냄새가 코를 찌르곤 했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그는 남보다 2시간 먼저 출근했지만 정작 오후 4시가 넘어 등교를 하려고 하면 공장 주인으로부터 “네까짓 게 공부해서 뭐가 되려고 그래”라며 뺨을 얻어맞기도 했다. 이때 그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평생 이 공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며 배움에 대한 집념을 더욱 불태웠다.1968년 군에서 제대를 하니 미아리 산동네 집마저 압류당한 상태였다. 이때 시작한 게 바로 청소 사업이었다. 부친과 함께 청소용 솔을 만들 때 청소 사업에 대해 눈여겨봐뒀던 것이다. 사원 2명으로 시작했지만 누구도 일감을 주지 않았다.우여곡절 끝에 충무로에 있는 작은 빌딩의 청소 용역을 따냈다. 명색이 사장이었지만 그는 5분대기조였다. 사원 1명이 결근하면 새벽같이 달려가 직접 화장실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이 빌딩을 드나들던 한 기업인은 이 건물이 너무 깨끗한 것을 보고 구 대표를 불러 자기 소유의 K빌딩 청소 일을 맡겼다. K빌딩은 당시로선 서울 시내에서 제법 큰 빌딩이었다.그러자 관리 담당 임원이 제동을 걸었다. “그건 이미 모 국회의원의 요청에 따라 다른 업체에 일을 주기로 내정돼 있다”며 빌딩 오너에게 얘기했다. 하지만 해당 기업인은 “내가 삼구개발에 일을 맡기라면 맡기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라고 호통을 쳐서 결국 K빌딩 청소 일을 따낼 수 있었다. K빌딩 오너와는 일면식도 없었지만 큰일을 따냈고 이로 인해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입소문을 통해 수주하기 시작해 신세계 농심 롯데제과 대한항공 등 200여 개 업체 (500여 사업장)가 일을 맡겨 왔다.삼구개발은 자사가 청소나 경비 일을 맡을 경우 해당 빌딩을 관리하던 기존 용역 업체 직원을 승계해 정식 사원으로 채용한 뒤 똑같은 일을 하게 한다. “이 경우 청소 품질은 180도 달라진다”고 구 대표는 설명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구 대표의 사원들에 대한 존경심이 사원들로 하여금 회사를 위해 몸을 던져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구 대표는 미화 분야 등에서 일하는 여사원을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까닭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들은 추위에 떨며 새벽에 나와 남들이 출근하기 전에 정성껏 청소하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자녀를 교육시킨다”며 “이를 생각할 때 어떻게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최선을 다하는 우리 사원들이야말로 회사 발전의 원동력이며 보배”라고 강조한다.그는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환갑이 넘어 용인대 경찰행정학과 특별전형에 합격해 입학한 뒤 2008년 초 졸업했다. 2008년 초에는 용문고 총동창회장도 맡았다. “용문고는 장수영 전 포항공대 총장을 비롯해 연예인인 백일섭 조영남 한석규 유재석 씨와 전·현직 국회의원인 정병국 임종석 김낙성 우상호 차명진 김교흥 김용구 씨, 그리고 다수의 법조인과 공무원 등 다양한 인재를 골고루 배출한 명문”이라고 설명한다. 비록 자신은 개천변 공장에서 일하며 야간을 가까스로 졸업했지만 모교에 대한 애정은 남다른 것으로 보인다.창업: 1968년(1976년 법인 전환)본사: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사업내용: 빌딩 관리 청소 경비 등 용역인원;약 8000명2008년 매출: 약 1500억 원(계열사 포함 추정치)약력: 1944년 서울 출생. 메밀묵 아이스케키 장사 및 구두닦이. 63년 용문고 졸업. 68년 삼구개발 창업. 76년 법인 전환. 2008년 용인대 졸업 및 용문고 총동창회장(현). 수상: 국민훈장 동백장, 도산경영상, 전경련 국제경영원 경영대상.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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