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들에 더 큰 자유를 허(許)하라

한국 경제의 미래 ‘기업가 정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No Risk, No Return).’ 삶과 성장의 본질을 이처럼 짧고 단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잘살고 싶은가. 성장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에 걸맞은 적절한 위험을 과감하게 감수하라. 그리고 도전하라고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즐겨 사용했다는 한마디 ‘당신 해 봤어’, 그것이 바로 기업가 정신의 본질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성공하는 자는 소수이고 다수는 실패의 쓴맛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런 냉정한 삶과 성장의 진실을 알면서 오늘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뛰고 있다.그런데 기업가 정신의 총량은 사회마다 차이가 난다.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사회는 기업가 정신의 총량이 낮은 수준인데 비해 진취적이고 변화 지향적인 사회는 기업가 정신의 총량이 아주 높은 수준이다. 물론 기업가 정신의 총량이 높은 사회가 혁신과 창조를 통해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 잘살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생산성을 한껏 올리는 길이 최선이다. 생산성을 올리지 않고 이뤄지는 높은 보수나 생활수준은 유지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일정 기간 동안 독점적인 지위를 활용할 수 있는 단체를 통해 높은 보수를 지불 받을 수 있다. 또한 신용 팽창과 같은 방법으로 일정 기간 동안 축제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방법은 모두 거짓된 방법이다. 지금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해 온 세계가 어려움을 겪는 중요한 이유도 거짓된 방법으로 잘 살기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거짓경제학’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진짜 방법으로 생활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는 일이고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은 한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고 그들 개개인이 발휘하는 기업가 정신의 수준을 크게 향상시키는 일이다.기업가 정신은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될 때 활성화된다. ‘이것은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는 규제가 겹겹이 둘러싸인 곳에는 기업가 정신이 살아날 수 없다. 살아난다는 표현보다는 자칫 질식하기 쉽다. 물론 최근에 미국발 금융 위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지나치게 시장 규율이 해제된 상태에서 이뤄진 기업가들의 자유로운 활동이 엄청난 비용을 사회에 지울 수 있다. 세상사의 모든 면이 그렇듯이 기업가 정신 역시 빛과 그림자가 있다. ‘건설적인 기업가 정신’이 있는 반면에 ‘파괴적인 기업가 정신’이 있다. 건설적인 기업가 정신은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 부가가치를 더하게 되지만 파괴적인 기업가 정신은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부가가치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이 때문에 잘살기를 원하는 사회라면 파괴적인 기업가 정신을 억제하고 대신에 건설적인 기업가 정신의 활성화를 위해 환경과 제도를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 시장에 적절한 규율을 필요로 하는 규제는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하지만 불필요한 개입을 초래하는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그래야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서 실험정신과 청년정신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기업가 정신의 본질은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해 보기 전에는 사실상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기업가 정신은 항상 두려움과 함께한다. 망할 수도 있다는 그런 두려움 말이다. 누군가 그런 두려움을 기꺼이 안고 도전할 수 있을 때만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그런데 이런 행동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위험을 감수한다는 면에서 사람들 모두가 생물학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안정 지향적이며 위험 회피적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안정적인 성향을 강하게 갖는다. 이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정해진 업무 영역에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것만을 기대할 수 있다. 자신의 업무를 개선하고 혁신함으로써 부가가치의 창출에 주역이 되는 사람들이 마이크로한 차원에서 기업가 정신의 구현자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한 사회의 성장에서 큼직큼직한 수준의 부가가치 창출의 주역은 통상 우리가 기업가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기회를 읽고 그런 기회를 잡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거는 사람들이 바로 전통적인 의미의 기업가들이다. 이들에게는 적절한 규율도 중요하지만 합법의 테두리 내에서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이를 두고 어떤 전문가는 ‘사고 칠 수 있는 자유’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어감에서 약간의 어색함이 있을 수 있지만 ‘사고 치는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도전이나 창조는 함께하기 힘들다.그런데 기업가 정신은 사회에서 충분한 이해를 얻기가 쉽지 않다. 대다수 사람들은 학교 교육을 받고 정액 봉급이 인정되는 직장을 선택한다. 말로는 위험 감수라고 자주 사용하지만 일생 동안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은 온몸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일찍이 위대한 자유주의 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현대사회가 될수록 조직이 커지게 되고 조직의 구성원들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기업가 정신에 대한 반감이나 몰이해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공적 성격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사람들은 계획과 지시, 그리고 통제에 익숙하다. 이 때문에 본의 아니게 기업가 정신의 중요한 방해자로 활동할 수 있다. 일단 공적인 성격의 조직의 경우에는 기업가 정신이 활성화되기 무척 힘들다. 왜냐하면 새로운 시도는 언제든지 감사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공적 성격의 조직에서는 늘 전례와 선례가 중시된다. 이를 벗어나는 것은 용기가 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수 십 년 동안 그런 조직에서 성장해 온 사람들은 스스로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간에 전례와 선례, 그리고 보신을 중요한 가치 기준으로 삼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사회는 점점 더 기업가 정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한편 한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 역시 특별한 개인이 아니라면 기업가 정신에 대해 말과 행동이 다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어떤 활동을 통한 경험이 없다면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어느 사회나 기업가들이 축적한 부에 대한 반감과 질투가 있게 마련이고 이는 곧바로 반(反)기업가 정신으로 연결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기업가들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하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예컨대 ‘파괴적인 기업가 정신’ 사례들이 쉼 없이 일어난다면 일반인들은 기업가들에 대해 의혹과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이처럼 기업가 정신이 낳는 부정적인 부분을 충분히 인정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확실과 안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부가가치의 창출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힘들다는 점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고민하는 저성장의 탈출과 괜찮은 일자리의 창출, 그리고 소득 양극화의 해소 등과 같은 현안 과제들은 대부분이 기업가 정신의 복원이라는 절대 명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요원하다. 우리 사회는 더 적극적으로 기업가들의 활동에 자유를 허(許)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막대한 자본의 투자 없이 경제를 일으키는 결정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부터 시작해서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안정, 안정 또 안정’을 숭배하는 사회는 정체를 면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장 gong@gong.co.kr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