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화법은 왜 과거를 좋아할까

청와대 통신

“내가 어렸을 때…” “최고경영자(CEO)시절엔…” “서울시장 할 때 보면…”이명박 대통령의 화법엔 과거 경험이 주요 메뉴로 등장한다. 격주로 하는 라디오 연설이나 부처 업무 보고, 민생 현장 방문 때 가릴 것 없이 어려웠던 어린 시절과 CEO, 서울시장 때의 경험을 언급한다. 경험담을 통해 메시지의 핵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다.사례는 수없이 많다. 각종 연설문 초안을 참모들이 올리면 이 대통령은 수차례 뜯어고치면서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담는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2008년 12월 15일 5차 라디오 연설. 주제는 ‘어머니’였다. 사실상 이 대통령이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가난했던 젊은 시절을 얘기하며 서민들에게 어렵다고 포기하거나 용기를 잃어선 안 된다고 설득했다.이 대통령은 “젊은 시절 포항의 중앙통 사거리 극장 앞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데 승용차가 내 리어카를 들이받아 과일들이 길바닥으로 쏟아졌다”며 “그러나 차 주인은 사과하기는커녕 왜 차 다니는 길에서 장사를 하느냐고 호통을 쳐 억울하고 제 처지가 서럽게 느껴졌다”고 소개했다. 그래서 가출을 결심했지만 “우리 명박이가 절망에 빠지지 않고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십시오”라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를 듣고 포기했다.이 대통령은 또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시래기를 파는 박부자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머니가 떠올랐다”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어머니는 제 정신의 뿌리와 같은 존재로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계신다”고 말했다.12월 24일 보건복지가족부 등 4개 부처 업무 보고에선 복지 예산 집행과 관련, “서울시장 재직 때 보니까 완벽하게 진행하고 있는 사업인데도 중앙 부처에서 중복해 돈을 내려 보내는 일이 많았다”며 개선을 지시했다.12월 12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 땐 “서울시장 시절 공무원들이 자기 책임 아래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 부담을 느껴 일이 잘 추진되지 않는 것을 보고 결재란에 ‘이건 시장의 지시’라는 것을 써 넣어도 좋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시장이 책임질 테니 공무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하도록 했다는 얘기다.12월 1일 라디오 연설 때는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을 촉구하며 “세상에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고 피력했다. 이 대통령은 “냉난방 잘 되는 사무실에서 하는 경험만이 경험은 아니다.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면서 얻는 경험이 더 값질 수 있다”며 입사 때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현대건설을 대한민국 최대 기업으로 키운 경험을 소개했다.2008년 11월 라디오 연설 때는 “제가 서울시장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미용실을 경영한다는 한 분이 찾아왔다. 사채까지 써가며 노력했는데, 문을 닫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라는 말로 시작하며 서민·자영업자 대책을 지시했다.또 “엊그제 문득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한때 조그만 회사의 수위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늘 ‘회사가 넘어가면 안 되는데’라면서 걱정을 하시곤 했다. 어린 시절 그걸 보면서 ‘회사에서 큰 직책을 맡은 것도 아닌데, 저렇게까지 회사 걱정을 하실까’라며 마뜩찮게 생각했지만 그 회사가 문을 닫고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은 뒤 왜 회사 걱정을 그토록 하셨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정부 부처 대변인과 만났을 때는 “오랜 CEO 경험에 비춰볼 때 홍보는 공급자 마인드가 아니라 소비자 마인드가 중요하다”며 “만드는 사람이 멋있게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게 홍보인 만큼 국민의 입장에서 정책 홍보를 하라”고 당부했다. 무역진흥확대회의의에선 “나도 과거에 경험해 보면, 정부가 돈을 푼다, 은행이 어떻게 한다고 하더라도 창구에 가보면 아주 냉정하다. 특히 어려울 때 은행은 더욱더 냉랭해진다”며 관련 부처에 대책 강구를 요구했다.언론사 경제부장들과 만나 “저는 기업에 있었기 때문에 항상 5개 위험이 있으면 항상 7~8개 정도 걱정하고 대비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항상 사실보다도 더 악조건을 전제로 생각하는 것이 습관적으로 돼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박수진·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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