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 세계 ‘최초’…미·일 ‘깜짝’

가속페달 밟는 기술 강국의 꿈

12월 18일로 중국이 개혁 개방의 길로 들어선 지 꼭 30년이 됐다. 1978년 이날 덩샤오핑이 11기 3중전회에서 계급투쟁 구호 대신 개혁 개방을 선언한 이후 중국은 연평균 9% 넘는 고성장을 해 왔다.중국 개혁 개방의 출발점은 경제특구 1호인 남부 도시 선전이다. 인구 3만 명의 작은 어촌이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국제도시로 변모한 이곳에서 12월 15일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중국이 과거 30년간의 개혁 개방을 통해 걸어 온 길과는 다른 길을 걸을 것임을 예고하는 행사였다.중국 자동차 업체 비아디(BYD)가 전기자동차 ‘F3DM’을 선보인 것.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첫 전기자동차로 도요타가 2009년 하반기, 제너럴모터스가 2010년 하반기로 잡고 있는 전기자동차 출시 시기보다 1∼2년 앞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중국이 도요타와 GM의 우위에 섰다고 전했다. 비아디의 전기자동차에도 가솔린엔진이 있지만 전지가 방전됐을 때 전지를 만들어내는 용도로만 사용된다는 점에서 기존 하이브리드와는 다른 전기자동차라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중국은 과거 30년 ‘대국’이 되기 위해 달려왔지만 앞으로는 기술 혁신을 통해 ‘강국’이 되겠다는 전략을 숨기지 않는다.◇세계 첫 전기자동차 출시= 비아디는 선전 베이징 상하이 등 14개 도시에서 동시에 전기자동차를 출시했다. 이 전기자동차 가격은 15만 위안(3000만 원)선이다. GM이 생각하는 전기자동차 판매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도요타자동차 관계자는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정도 가격에 전기자동차를 만들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특히 비아디의 전기자동차는 10분 만에 연료전지의 50%를 충전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한 번 충전해 100km를 달릴 수 있다. 중국증권보는 도요타와 GM이 시험용으로 만든 전기자동차가 25km를 달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한껏 치켜세웠다.비아디는 충전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중국의 전력송배전 업체인 궈자뎬왕 및 난팡뎬왕과 협의 중이다. 눈길을 끄는 건 집에서도 충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9시간 걸리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집의 220V 전원에 꽂아도 충전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개인 차고를 가지고 있는 가구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비아디가 목표로 잡고 있는 내년 판매량은 1만여 대다. 세계 최고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꼽히는 도요타의 프리우스가 중국에서 올 들어 10월까지 748대 팔린 것과 대조된다. 비아디는 더욱이 2011년이면 이 전기자동차로 미국과 유럽 시장에도 진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특히 2010∼11년에는 연료전지만 있는 순수한 전기자동차도 출시할 예정이다.◇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사격= 비아디는 전기자동차를 출시한 그날 선전시 및 중국 4대 국유 은행 중 하나인 건설은행과 전기자동차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모두 50대를 구매하는 내용이다. 국책 은행인 중국 국가개발은행은 같은 날 비아디와 기술 개발 관련 금융 지원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가솔린엔진 시대에 뒤진 자동차 기술을 신에너지 차량으로 따라잡겠다는 중국 정부의 계획에 따른 것이다. 중국은 이미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저탄소 배출 차량에 대한 소비세 감면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는 2020년이면 중국 자동차 시장의 30%는 전기자동차가 차지할 것이라는 게 일본 닛산자동차의 전망이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로 올라섰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중국산 전기자동차가 세계시장의 판도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은 불문가지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비아디뿐만 아니다. 최근 중국 수출입은행이 100억 위안(2조 원)을 지원해 눈길을 끈 중국 치루이자동차의 인통야오 회장은 자금 용도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같은 기술 개발 등에 사용해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자동차 전문가들은 세계 자동차 시장이 경기 침체를 맞아 전면 재편의 시기에 들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경기 부양을 위해 친환경 차량 시장을 키우는데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앞 다퉈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포스트 금융 위기 이후 세계 자동차의 승자는 어디가 될까. 환경과 에너지가 미래 자동차 시장의 성패를 좌우할 관건이 될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시기는 많이 앞당겨질 것 같은 분위기다.◇비아디는 세계 최대 2차전지 업체= 비아디는 자동차 시장에는 2003년에 뛰어든 신생 기업이다. 하지만 전 세계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2차전지 3개 중 하나는 이 회사 것을 쓸 만큼 세계 최대 2차전지 업체다.창업자 왕추안푸(42) 회장은 중난공업대학 출신으로 졸업 후 베이징비철금속연구원에 들어가면서 전지와의 인연을 맺었다. 이 연구원에서 만든 전지회사의 총경리(CEO: 최고경영자)에 올랐으나 사촌으로부터 250만 위안(5억 원)을 빌려 1995년 독립한다. 그를 벤처 기업가로 부르는 이유다. 20명의 연구원들과 함께 선전 시내의 오래된 차고 안에서 2차전지 개발에 매달렸다. 비아디의 출발은 그렇게 초라했다. 하지만 왕 회장은 연구·개발(R&D)과 함께 국제 전시회에 발이 닳도록 다니며 수주하면서 회사 덩치를 키워갔다. 1998년부터는 미국과 유럽 일본에까지 지사를 세워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했다.5년 전 시안에 있는 친추안자동차를 2억7000만 위안(540억 원)에 인수하면서 그의 첫 일성은 “전기자동차로 세계를 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0억 위안(4000억 원)을 R&D에 쏟아 부었다. 그 결과가 바로 세계 첫 전기자동차 상용화라고 중국 언론들은 전한다. ‘전지의 대왕’이 ‘자동차의 대왕이 됐다’고 중국 언론들은 그를 영웅시한다. 2차전지에서 시작해 휴대전화와 자동차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지만 핵심 기술인 전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64% 증가한 30억 달러에 달했다.비아디를 인정하는 건 중국 내 얘기만이 아니다. 지난 9월 살아있는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은 18억 홍콩달러(2억3100만 달러)를 투자해 홍콩 증시에 상장된 이 회사 지분 10%를 인수했다. 버핏은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벅셔해서웨이의 계열사인 미드아메리칸에너지홀딩스를 통해 투자했다. 미드아메리칸에너지홀딩스의 데이비드 소콜 회장은 “비아디가 미래 환경 보호를 위해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갖고 있어 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왕 회장은 “벅셔해서웨이는 전 세계 환경 보호 기술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해 왔다”며 “비아디가 신에너지 자동차를 비롯해 환경 친화 제품을 개발, 세계에 보급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화답했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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