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강 건너의 불’ 아니야

뉴스 인 뉴스 - 그리스 사태의 교훈

신화의 나라, 민주주의의 발상지, 관광 대국…. 그리스 얘기다. 수천 년 된 고대 신전과 수많은 볼거리로 지금도 전 세계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는 그리스는 실제 국력 이상으로 국제사회에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에 들려오는 소식은 흉흉하기만 하다. 오랜 역사와 풍광에서 묻어나는 낭만과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여행 강국에서 배어 나오는 여유는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청년들의 반정부 시위가 위험 수위를 넘어 사실상 국가 기능이 마비됐다는 소식 때문이다. 정부 부패, 공권력에 대한 불신, 심화되는 빈부 격차가 사회불안으로 이어졌고 결국 터졌다는 것이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적 규율과 운영 시스템 사이로 선동 세력이 끼어들면서 폭력 시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 와중에 경찰의 발포로 10대가 숨진 것은 불길에다 기름을 부어 넣는 일이었다. 끼리끼리 해먹는 연고주의와 ‘백그라운드’가 주로 통하는 사회, 정부와 정치권 등의 부패와 부도덕, 이런 것들이 그리스의 폭력 시위 사태의 원인이라고 외신은 전한다. 물론 빈부 격차로 단순화되는 경제 문제에 대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그리스 사태를 제대로 보려면 경제 문제에 확대경을 댈 필요가 있다. 경제성장률부터 보자. 2004년 4.9% 성장에서 2005년 2.9%로 급락했다. 2006년 4.5%로 잠시 올라가는 듯했지만 지난해 4.0%,올해는 3.1%에 내년 전망치는 2.5%다. 세계경제가 급속도로 침체되고 있으니 내년에는 실제로 이보다 훨씬 낮을 게 분명하다. 더구나 이번 시위 사태로 나라의 주력 산업인 관광에 충격이 컸을 테고 이 때문에라도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해질지 모른다. 성장이 떨어지니 실업률이 높은 건 당연하다. 특히 15~24세의 청년 실업률은 지난 9월 기준으로 24.3%에 달한다. 꿈이 없고 미래가 없는 젊은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재정 적자도 국내총생산(GDP)의 14% 수준으로 유럽의 주변국 가운데 가장 나쁘다. 관광은 그리스 GDP의 15%, 고용의 16%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그러나 도심 한가운데서 폭력 시위가 계속된다면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그리스를 찾을지 의문이다. 가뜩이나 지구촌 경제가 동반 침체돼 여행 산업 자체가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결국 그리스 사태에서 키워드는 경제다. 범위를 더 줄이면 고용이 될 수 있고, 고용에서는 청년 실업이 핵심이다. 사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느 사회든 화약을 머리에 지고 사는 꼴이 된다. 실질 실업자가 300만 명이 넘는 한국 입장에서도 그리스는 결코 ‘강 건너의 불’, 먼 나라의 일이 아닌 것이다.그리스의 반정부 시위에서 교훈을 잘 찾아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단지 내 주머니 사정이 다소간 나빠지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조금 적게 먹고 좀 적게 쓰지’라며 넘어간다면 훌륭한 인생관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회의 유지 발전과는 맞지 않는 말이다.경제가 어려워지면 영향을 받지 않는 영역이 없다. 가령 최근 민간에 돈줄이 마르면서 민간 자본이 투자되는 공공 공사인 민간자본유치사업(BTL)이 국내에서 아예 중단될 지경이라고 한다. 엉뚱해 보이지만 학교 신축이 여의치 않아졌다는 우려다. 교사와 체육관 등에 275개 학교가 BTL로 공사를 해야 하는데 당장 120개교가 사업을 중단했다.예술도 직격탄을 받는 분야다. 미술 경매와 각종 공연에서부터 거품이 빠지는 대중 스타들의 몸값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다. 기부금도 줄어들 것이다. 독지가들의 선행이 이어진다고는 하지만 규모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학문 연구에도 지장을 받는다. 대학으로 기여금이 줄어들고 연구·개발비도 줄어든다. 체육계도 예외는 아니다. 프로 스포츠가 위축될 것이며, 비인기 종목에는 스폰서 고갈, 진흥기금 축소가 훤히 보인다.불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회 각지로 미치면 윤리와 도덕 역시 급속도로 무너질 수 있다. 정말로 걱정은 이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사업이 뜻대로 안 돼 사기극이 되어버리고, 배신도 횡행하고, 취직을 못한 10대와 20대는 어두운 도시 뒷골목을 배회하다 범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배를 채우기 위한 생존형 범죄율도 급증할 것이다. 이런 일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경제를 살려야 한다. 경제가 좋아야만 인간성이 회복되고 윤리 도덕이 올라간다. 예술과 문화가 발전하게 되고 체육이 융성하는 것도 경제에 달렸다.허원순·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