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중소기업 ‘상생의 길’

현재 중소기업의 금융 상황은 시장 마비 상태다. 중소기업의 심각한 유동성 문제를 풀기 위해선 은행의 자금 공급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지만 건전성 악화에 도전 받고 있는 시중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의 하락을 막는데 급급하고 있어 중소기업 대출을 거의 중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자금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유동성 공급을 늘리고 있고, 심지어 관치금융 시절에나 썼던 은행의 창구 지도를 통해서라도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덜기 위해 전방위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은행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이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은행의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제고를 위한 노력에 상충되지 않으면서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이 확대되도록 하는, ‘자금흐름의 막힘’을 뚫어줄 수 있는 정책 방안이 필요하다. 현재 정부의 중소기업 자금 지원은 기업에 차입금을 발생시켜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이는 다시 은행으로 하여금 대출을 꺼리게 할 수밖에 없다.현 상황에서 어차피 유동성을 풀어야 한다면 정부의 중소기업 자금 지원금이 자본 항목에 계상(計上)되도록 하는 방법으로 지원되는 방식이 필요하다.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고, 이는 차주(借主)의 신용도 위험을 감소시켜 거래 은행은 충당금을 적게 쌓아도 되고,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의 제고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은행의 자기자본비율 제고 목표와 중소기업 대출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이다.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소기업 자금 지원을 ‘우선상환주’ 형태로 지원 방식을 전환하는 것이 그 방안이다. 상환주식이란 주식의 소각, 즉 상환 조항(상환가액, 상환 기간, 상환 방법과 수)을 붙여서 발행하는 우선주의 일종으로 당연히 자본으로 계상된다. 상환주식은 주로 대기업이 차입을 할 때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것을 피하는 방법으로 이용돼 왔다. 흑자를 내고 있는 중소기업이 금융 위기로 인해 자금 압박을 받고 있다면 이 방법으로 지원해 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과거 2~3년 흑자를 보인 중소기업들이 상환우선주를 발행하고, 이를 거래 은행이 인수하고, 이들을 산업은행과 같은 신용도가 높은 정부 은행이 모아서 신용 보강 및 유동화한다면 기업의 재무구조도 좋아지고 은행도 자기자본비율에 손상을 입지 않을 것이다.설사 나중에 은행의 건전성이 금방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잠재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전성 및 글로벌 경기 침체를 감안할 때 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을 매우 보수적으로 운용할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실물경제의 어려움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을 위해서라도 중소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은 상환주식과 같은 형태의,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지원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은행은 재무구조가 개선된, 좀 더 신용도가 높아진 중소기업과 거래하게 됨으로써 건전성 유지 및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고, 그래야 은행과 기업이 다 같이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한편 중·장기적으로 자본적 성격의 장기 부채인 메자닌(Mezzanine: 주식을 통한 자금 조달이나 대출이 어려울 때 은행 및 대출회사가 배당우선주, 신주인수권부사채 인수권, 전환사채 등 주식 관련 권리를 받는 대신 무담보로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 기법. 이탈리아어로 건물의 1~2층 사이에 있는 라운지 등의 공간을 의미) 금융을 자본항목에 편입되도록 상법 내지는 기업회계기준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자기자본 확충 효과로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 및 직접 금융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의 길을 여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기실 우리 경제는 호랑이굴로 물려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호랑이 뱃속으로 떨어지기 전까지 정신을 차리고 기지를 발휘할 때다.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약력: 1959년 서울생. 82년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92년 독일 함부르크대학 경제학 박사. 93년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현). 2008년 한국중소기업학회 이사(현). 2005년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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