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뚝’… 해고 태풍 ‘전방위’ 확산

열도 덮친 도요타 쇼크

“더 이상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하면 그럴 수밖에 없지요. 요즘은 잔업은커녕 정규 공장 가동 시간에도 일거리가 없어 공장 청소만 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규슈 공장에서 9년째 일하고 있는 파견 사원 무라다 겐지(42) 씨. 일거리가 부쩍 줄어든 그는 도요타로부터 언제 계약 해지를 통보 받을지 몰라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도요타자동차 본사가 있는 나고야의 번화가 긴산은 요즘 썰렁하기 그지없다. 도요타가 최근 하청 중소기업 등에 “송년회나 연말 선물 등을 사양한다”고 통보하면서 고급 음식점과 술집 1600여 개 업소가 모여 있는 긴산의 경기는 ‘한겨울’을 맞았다. 지난 7년간 도요타가 매년 사상 최대 이익을 경신하면서 흥청대던 긴산의 모습은 이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올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0% 줄어들 것이란 전망을 도요타가 발표한 지난 11월 6일의 ‘도요타 쇼크’가 일본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도요타는 이미 대대적인 감산과 고용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일본 최대 기업인 도요타자동차의 감산은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물론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해 온 철강 회사와 석유화학·타이어 등 후방산업에도 타격을 입히고 있다. 도요타 공장이 있는 지역 경기는 물론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세수에까지 악영향이 미치고 있다. 도요타의 실적 악화가 일본 열도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최대 시장인 북미 지역의 판매 부진으로 도요타는 국내 자동차 생산을 당초 계획보다 40만 대나 감산했다. 고급 차종인 렉서스의 주력 공장 타하라 공장에선 내년부터 주간·야간 2교대를 주간 근무만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에 따라 도요타는 올 들어 11월 말까지 3000명의 비정규직 사원을 해고한 데 이어 계약 기간 연장을 중단하는 방법으로 연내에 추가로 3000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총 6000명을 해고하는 셈이다.도요타자동차를 포함한 일본 내 자동차 8개사의 연내 인원 감축 규모는 9000명에 달한다. 덴소 등 자동차 부품 업체의 인적 구조조정도 불가피해 자동차 산업 전체로는 올해 감원 규모가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도요타는 또 내년에 임원 임금을 삭감하는 것을 적극 검토 중이다. 도요타는 최근 사내에 설치한 ‘긴급수익개선위원회’의 중요한 검토 항목에 임원의 임금 삭감을 포함하는 등 ‘성역 없는 코스트 삭감’을 추진하고 있다. 당장 과장급 이상 간부급 사원 5000여 명에 대한 올겨울 상여금은 지난해보다 10% 줄이기로 결정했다. 위원회에서는 공장 등의 통폐합 등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가 책정한 금년도 임원 보수·상여 총액은 작년도에 비해 17% 증가한 39억2000만 엔으로, 임원 1명당 평균 1억2200만 엔이었다.도요타의 주요 공장이 있는 아이치현 도요타시는 법인 시민세 급감을 걱정하고 있다. 2008년도 법인 시민세를 442억 엔으로 예상했지만 2009년도엔 200억 엔 이상 줄 전망이다. 거품 경제 붕괴 때보다 3배나 빠르게 세수가 줄고 있다. 이 때문에 도요타시는 도로 건설 등 신규 사업 착공을 미루고 복지 예산을 줄이기로 했다.아이치현에도 비상이 걸렸다. 2009년도 예상 현세 수입 1조3600억 엔 중 3000억 엔이 줄 전망이다. 도요타 등 관내 기업들로 부터 받는 법인 주민세와 법인 사업세가 줄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치현은 4년 만에 다시 중앙정부로부터 지방교부세를 지원 받게 됐다.아이치현은 도쿄도와 함께 중앙정부로부터 지방교부세를 받지 않는 지자체였다. 도쿄도도 내년에 법인 관련세 수입이 1조 엔 정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도요타의 하청 업체들이 많은 아이치현 시즈오카현과 규슈 지역은 비정규직 실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도요타 등 자동차 업계에서 시작된 ‘해고 칼바람’은 기계 전기 등 일본의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집계에 따르면 주요 제조업체 38개사가 지난 4월부터 내년 3월까지 이미 해고했거나, 해고할 계획인 파견 사원 등 비정규직 인원은 2만1000명에 달했다. 업종별로는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업체의 삭감 인원이 1만7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기계·정밀부품(1800명) 전기·전자(1100명) 등의 순이었다.일본 제조업체들이 세계 동시 불황에 따른 생산 감축에 대응해 비정규직부터 인원 축소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일본의 주요 제조업체의 전체 고용 인원중 비정규직은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건설·중장비 업체인 코마츠는 내년 3월까지 오야마 공장의 임시 직원 등 비정규직 인원 약 400명을 해고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국내에 약 2000명의 임시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이 회사는 다른 공장에서도 비정규직 감축을 추진할 예정이다. 인원 조정 규모는 500~1000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코마츠는 이달부터 국내의 전체 10개 공장에서 조립 라인의 가동 일수를 월 2~4일씩 줄이기 시작했다.도시바도 시황이 악화되고 있는 반도체 부문의 비정규직 사원을 줄이기로 했다. 내년 3월까지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타규슈 공장 등의 파견 사원이나 임시 직원 약 800명을 해고할 예정이다. 후지쯔도 반도체 자회사에서 같은 기간에 100명이 넘는 비정규직원을 계약 해지할 계획이다일본 기업들의 해고 바람은 정규직으로도 파급되고 있다. 올 1월부터 11월 말까지 정규 직원의 조기 희망 퇴직을 실시한 제조업 상장회사는 20개사에 달했다. 이를 통해 퇴직한 인원은 2841명이다. 일본 기업들의 감원은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비정규직을 중심으로 감원 한파가 몰아치자 비정규직 사원들과 노조 단체들은 12월 4일 도쿄 시내 히비야공원에서 2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집회를 갖고 기업들의 해고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일본의 최대 노조 단체인 렌고(連合)의 다카키 쓰요시 위원장은 최근 아소 다로 총리를 방문해 기업들의 해고 중단과 해고 노동자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도요타 쇼크의 여파로 일본에선 기업 도산도 급증하고 있다. 일본 민간 조사 업체인 데이코쿠데이터뱅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도산 건수(부채 총액 1000만 엔 이상)는 총 1만1534건으로 작년 한 해 건수(1만959건)를 이미 초과했다. 이에 따라 금년 한 해 동안의 도산 건수는 1만2500건에 달해 5년 만에 최악의 수준을 기록할 것이 확실시 된다.11월 중 기업 도산 건수는 1010건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2% 늘었다. 도산 기업들의 부채 총액도 18% 증가한 5411억 엔에 달했다. 올해 도산 기업 가운데 상장기업은 32개사로 1963년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산한 기업의 종업원 수는 총 11만 명으로, 도산 급증으로 고용 시장이 한층 악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기업 도산의 직접 원인은 운전자금 조달난인 경우가 37%로 가장 많았다. 실제 대기업이 단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기업어음(CP)의 잔액은 11월 말 현재 13조6000억 엔으로 전년 동월 대비 10% 감소했다. 반면 전국 은행과 신용금고의 대출 평균 잔액은 463조 엔으로 3% 늘며 2001년 조사 공표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기업들이 은행 차입에 더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차병석·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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