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 경제성장률 ‘딜레마’ 빠져

경제부처 24시

“새해 업무 보고에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뺄 수도 없고….”과천 경제 부처의 핵심인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관계자들이 고민에 빠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매년 1~2월에 실시하는 정부 각 부처 업무 보고를 연말부터 시작하기로 하면서 관행상 가장 먼저 보고하게 되는 재정부가 성장률 전망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다.현재까지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이 가만히 놔두면 3% 정도로 가는데, 감세와 재정 지출 확대 등 각종 경기 부양책의 효과로 4%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걸고 있다. 그런데 전망의 전제 조건이 된 세계경제 여건이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에서 얼마나 내려야 할지, 내린다면 그 효력이 얼마나 가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일단 과천 관가에서는 재정부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3%로 내릴 것이라는 예상이 가장 유력하다. 경상수지 흑자는 최소 50억 달러, 많으면 200억 달러까지도 갈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이미 내년 세계경제 성장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것임을 공언한 상황에서 기존 전망치를 기준으로 성장률을 산출해 봐야 나중에 IMF의 전망이 바뀌면 그 수치는 무의미해진다”고 말했다.지난 12월 10일 존 립스키 IMF 부총재는 세계경제가 내년에 2.2% 내외로 성장할 것이라는 IMF의 지난 11월 전망에 대해 “최근 상황을 감안할 때 너무 높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느 수준까지 낮출 것인지는 시사하지 않았다. 경제 연구 기관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정부도 통상 계량경제학을 이용해 유가 환율 세계 경제성장률 교역량 등의 외생변수들을 예측 모델에 대입해 성장률 예상치를 뽑아내고 있다. 이때 세계 경제성장률 수치로 많이 쓰이는 IMF 전망이 한 달 간격으로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국내 경제성장률 예측도 매우 힘들어졌다.더군다나 올해는 청와대가 연말에 내년 업무 보고를 받겠다고 하자 더욱 난감한 처지가 됐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재정부를 비롯한 22개 정부 부처 가운데 12개 부처가 이달 중 내년도 업무 계획을 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로 했다”며 “주로 예산의 조기 집행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실물경기 활성화를 주도할 수 있는 부처들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재정부가 포함되리라는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다.최근 국내 연구 기관들은 일제히 “내년 경제성장률 2%도 회의적”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 등 각 경제 연구원은 최근 공식 전망치를 발표할 때보다 더 비관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정부로서는 대통령을 상대로 업무 보고를 하려면 일단 4%로 예상한 성장률에 대한 수정치를 내놓아야 할 텐데 여러 가지 여건상 정확한 예측을 내놓기가 녹록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재정부 관계자는 “사실 내년 경제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인데 고용이나 투자, 소비 등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개발하는 게 우선이지 구체적인 수치가 얼마일지 예상하는 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관행상 매번 포함시켰기에 준비는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장률이 예산 편성의 전제라거나 세입 예측에 당장 필요한 수치라면 어떻게든 뽑아내야겠지만 지금은 그런 시점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정책 패키지 마련에 더욱 신경 써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차제에 아예 정부가 공식적으로 경제성장률을 전망하거나 특정 수치를 목표로 내거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 주도의 개발연대도 아니고 경제성장에 있어 민간의 역할과 자율성이 커졌는데 굳이 정부가 특정 수치를 달성 목표로 내걸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정택 KDI 원장은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에는 정부가 성장률을 예측했다가 나중에 고치는 것만으로도 정부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고 자칫 정쟁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며 “그런 이유에서 선진국에선 예산 편성의 기준이 되는 명목성장률만 제시하지 정부가 실질성장률 전망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차기현 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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