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과 펀드채권형 펀드·분산 투자 ‘난세의 대안’

디플레이션과 펀드

지난 12월 1일 전미경제조사연구소(NBER: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는 73개월간 지속된 경기 확장이 2007년 12월로 끝나고 미국이 경기 후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했다. 이미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 그리 놀랄만한 소식은 아니다. 문제는 경기 후퇴와 동반되는 디플레이션이다.디플레이션은 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디플레이션은 경기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디플레이션과 경기가 침체하면서 나타나는 디플레이션이 있다. 전자는 2000년 초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고 난 후 저금리 기조로 인해 물가가 하향 안정화됨과 동시에 이머징마켓이 고성장하는, 이른바 골디락스 경제(인플레이션의 위험 없이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경제 상황)를 들 수 있고, 후자는 1930년대 소비자물가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급락하고 실업률이 치솟았던 세계 대공황 같은 상황을 꼽을 수 있다.현재 글로벌 상황은 전자보다 후자에 가깝다. 물론 세계 대공황과 비교할 바는 못되지만, 분명 경기 침체를 수반한 디플레이션이라는 후자의 상황이라는 사실에 대다수가 수긍할 것이다.디플레이션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산 가격의 하락이나 과도한 통화 긴축 등의 영향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디플레이션에 대한 실제 사례는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있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로 인해 급격한 엔고 현상에 직면했다. 이러한 엔고 현상으로 수출품의 가격이 상승하고, 이로 인해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다.결국 일본 중앙은행은 엔고에 대응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실행했다. 그러자 은행은 저금리에 대한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부동산 담보대출을 확대했고 그 대출 경쟁이 심화되자 부동산 시가를 상회하는 비정상적 대출이 증가했다. 그러던 중 급증하던 국내 과잉유동성을 억제하기 위해 1990년 일본 재무성이 대출 총량 규제 조치를 시행하게 된다. 이는 부동산 관련 대출을 총대출 증가율 범위 내에서만 허용하는 것으로, 사실상 부동산 대출을 금지하는 조치였다.또한 일본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2.5%에서 6%까지 인상하며 긴축에 들어갔다. 그 결과 유동성 압박이 심해지면서 부동산 담보대출에서 부실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며 또다시 대출이 부실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러한 자산 가격의 급락으로 소비가 감소하고, 그로 인해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며 장기 불황으로 이어진 것이다.그러나 일본의 장기 불황은 현재의 상황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결정적인 차이는 버블 붕괴의 처리 과정에 있다. 일본은 1991년 주택 금융 전문 회사 부실 사태 이후 자연적인 경기 회복을 기다리며 부실채권 처리에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통화 정책에 있어서도 소극적이었다. 이로 인해 부실의 악순환은 반복됐고 자산 가격의 추가 하락과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장기 불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글로벌(Global) 모형에 따른 시뮬레이션 분석에 따르면 버블이 붕괴된 1990년 초반 기준금리를 2%포인트 더 인하하는 적극적인 통화 정책을 시행했다면 디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나타났다.이에 비해 현재는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 인하 정책과 글로벌 금리 인하 공조화로 좀 더 빠르게 위기를 타개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글로벌 경제 위기는 진행형이고 위기를 방어하기 위한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시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현재 경기 침체와 함께 찾아온 디플레이션의 공포로 인해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단기 자금 대기처인 머니마켓펀드(MMF) 설정 잔액은 80조 원을 돌파했고 실제 총예금 잔액은 지난 11월 26일 현재 615조 원을 상회하며 한 달 사이 13조 원이 넘게 유입됐다.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 심화됐다고는 하지만 펀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라고 판단된다. 경기가 어느 시점에서 턴을 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고 포트폴리오(자산 배분) 투자에 대한 메리트를 간과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채권형 펀드가 빛을 발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먼저 국고채형 펀드 투자를 먼저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향후 미국의 기준금리는 디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해 현재 1% 수준에서 2009년 내에 0% 수준까지 인하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국내 기준금리 역시 3% 수준까지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국고채형 펀드의 수익률은 자본 차익으로 인해 크게 향상될 것이다.회사채형 펀드로 갈아타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얼마 전 10조 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 펀드(이하 채안펀드)가 조성됐다. 그러나 채안펀드의 규모가 너무 작고, 오히려 금융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킬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적지 않다.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도 건설회사채의 등급 악화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회사채형 펀드 가입은 무리수가 될 수 있지만 금리가 안정될 것으로 보이는 내년 상반기에 회사채형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괜찮은 투자 방법이다.국내 주식형 펀드는 그 동안의 수익률 급락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반등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리스크 대비 기대 수익률이 높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과거 IT 버블이나 대공황 시기의 사례를 살펴봤을 때 2~3년간 박스권 등락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부동산 관련 리츠(REITs) 펀드는 상당 기간 조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의 주택 경기가 바닥이라는 생각보다 아직 진행 중이라는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미국의 주택 매매가 압류 주택 위주로 이뤄지고 있고 주택 가격 하락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치솟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이다. 실업률 증가는 모기지 대출금 연체 증가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주택 압류 증가 및 주택 가격 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택 경기가 안정을 찾지 못하면 국내는 물론 유럽 일본 선진국의 리츠 펀드의 수익률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원자재 관련 펀드 역시 2009년 상반기까지는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로 인해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러나 하반기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부상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결국 현시점에서는 채권형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인다. 국고채형펀드에 먼저 투자하고 이어 회사채형 펀드에 투자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채권형 펀드에만 집중하는 전략은 지양해야 한다. 왜냐하면 디플레이션 방어를 위한 금리 인하는 채권형 펀드의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디플레이션 시대에는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전략보다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한쪽에만 치우친 전략은 수익률 대비 리스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산의 일정 부분을 MMF나 정기예금에 가입하는 것도 디플레이션 시대의 자산 배분에 효과적이라고 판단된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원자재 관련 펀드 등 섹터 펀드에 대한 관심도 잊어버리면 안 된다.모든 투자의 기본은 자산 배분에 있다. 그러나 자산 배분을 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투자자 자신이 그 손실을 어느 정도까지 감내할 수 있느냐다. 즉, 자신의 투자 성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분산 투자의 선행조건이다.안정균·SK증권 펀드애널리스트 jkahn@sk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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