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속의 ‘희망’

고교 시절, 우리 집은 연탄 공장 근처에 있었다. 때때로 새까만 석탄 가루가 흩날려 항의하곤 했는데 이번에 석탄공사 사장이 되었다. 업보라고 할까, 아니면 인연이라고나 할까.알다시피 석탄 산업은 쇠퇴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유가가 급격히 오르고 경기가 침체되면서 연탄 소비량이 많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동족방뇨(凍足放尿), 즉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다름 아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3개월 전, 사장에 부임했을 때 발등에 떨어진 불은 어떻게 석탄 산업을 부흥시키느냐가 아니었다. 어떻게 조직을 추스르고 사원들의 사기를 높여 열심히 일하게 하느냐가 급선무였다. 얼마 전, 서울의 한 포럼에서 조찬 강연을 했을 때 “석탄공사를 알지 못하고는 경영에 대해 논하지 말라”고 말할 정도로 석탄공사는 매우 특이한 여건에 놓여 있다.전체 종사자 수는 외주 업체를 포함해 3000여 명 정도다. 그러나 본사는 80여 명으로 구성돼 있고 대부분이 현장의 막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사원이다. 예를 들어 인사이동을 하려고 해도 가용 인원이 수십 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기획실 사원을 막장으로 발령 낼 수는 없고 생산직 사원을 기획실로 옮겨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적재적소’니 ‘순환 보직’이니 하는 게 우리에겐 화려한 수사에 불과하다.필자는 지난 몇 달간 새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전쟁을 치르듯 일했다. 취임과 동시에 ‘독한 경영’을 선언해 원칙 중심으로 경영 체질을 바꿨고 100일 동안에 100가지 개혁을 추진하는 ‘석공 점프-업 100’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모든 사원에게 사장의 ‘희망 편지’를 띄워 막장까지 소통의 통로를 만들었고 의식 전환을 위해 전사원에 대한 순회 교육도 마쳤다. 마음이 아프지만 임원을 전원 교체해 3분의 1이나 줄이고 비서실을 폐지하는 등 군살을 빼고 있다. 사고가 나면 모든 게 허사라서 필자가 직접 그림을 그려 ‘안전 체조’를 개발·보급하기도 했다. 요즘은 겨울철 연탄 수급을 위해 전국의 연탄 공장을 모조리 방문하고 있는데 이런 일들이 석탄공사 창사 이후 최초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필자 나름대로는 ‘실천’에 집중하고 있다.변화는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오는 것 같다. 요즘 우리 사원들은 스스로 ‘희망’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다. ‘하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장을 돌아봐도 활력을 느낀다. 며칠 전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막장 이야기를 들려주며 TV 화면을 통해 사원 가족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사장이 거수경례를 하며 인사했을 때 가족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e메일을 직원 부인들로부터 여러 통 받았다. 한마디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필자는 ‘경영이란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독한 경영’ 역시 ‘경영의 실패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독하게 실천하지 않은 데 있다’는 철학에 근거한다. GE의 잭 웰치 회장을 비롯해 MK택시의 유봉식 회장, SAS의 얀 칼슨 사장, 그리고 거스 히딩크 감독에 이르기까지 신화를 창조한 최고경영자(CEO)들의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보면 원칙을 독하게 ‘실천’했다는 것이다.필자는 올해 말까지 내부를 정비한 다음 내년에는 석탄 산업의 ‘희망’을 찾아 나설 작정이다. 엄격히 표현하면 ‘연탄 산업’은 사양 산업일 수 있지만 석탄 산업은 기술 개발에 따라 전혀 새로운 양상을 띨 수 있다. 정부는 한국 경제를 다시 한 번 도약시키기 위한 신성장 동력 22개 산업을 선정했는데 그중에 청정석탄에너지사업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석탄이 국가의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발상의 전환과 실천적 노력이다.대한석탄공사 사장약력: 1949년생. 춘천고, 강원대 농학과 졸업. 강원대 경제학 박사. 2000년 농협 강원지역본부장. 2003년 농협중앙회 상무. 2005년 강원도 정무부지사. 2008년 8월 대한석탄공사 사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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