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점심때면 ‘뿔나는’ 과천 공무원

경제부처 24시

과천의 경제 부처 공무원들이 점심식사 문제로 단단히 ‘뿔났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1월 25일 과천청사 온라인 게시판에 띄운 안내문 때문이다. 내용은 이랬다. “11월 28일부터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는 커피숍을 제외한 모든 정부 청사 구내식당이 문을 닫습니다.” 한 달에 하루씩 ‘외식의 날’을 정해 놓고 구내식당을 폐쇄하겠다는 것이다. 경제 부처 공무원들은 “승용차 홀짝제로 발을 묶어 놓고 구내식당까지 문을 닫아버리면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반발하고 있다.행안부가 외식의 날을 신설하기로 한 것은 공무원들이 그날만큼은 점심을 밖에 나가 사 먹어 불황에 시달리는 음식점 업주들을 돕자는 취지다. 경제 난국 극복 차원에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선택한 게 ‘구내식당 폐쇄’라는 설명이다. 대전 청사도 같은 취지로 11월 28일부터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 구내식당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행안부가 입주해 있는 세종로 청사는 이미 셋째 금요일을 외식하는 날로 정해 놓고 지난 11월 2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이들 3개 청사의 하루 평균 구내식당 이용자는 행안부 집계로 모두 8700여 명(세종로 1000명, 과천 3700명, 대전 4000명) 정도다. 이들이 1인당 7000원을 밖에 나가서 쓰고 들어오면 6100만 원가량이 인근 음식점에 풀린다는 계산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큰돈은 아니겠지만 이런 노력이 조금씩 쌓이면 경제가 하루라도 빨리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하지만 과천의 경제 부처 공무원들은 “전형적인 전시 행정”이자 “광화문이라는 중심 상업 지구 한복판에 있는 세종로 청사 위주의 사고방식”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교통이 불편한 과천청사의 특수성을 무시한 처사라는 것이다. 재정부 지식경제부 농림수산식품부 등 경제 부처가 몰려 있는 과천청사는 지하철역(4호선 정부과천청사역)과 인근 상가 지역으로부터 5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그 사이에는 공무원연금공단 소유로 알려진 빈 공터가 넓게 자리 잡고 있다.과천 같은 ‘금싸라기’ 땅에 이런 공터를 설정한 까닭을 놓고 여러 가지 ‘설(說)’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과거 경제개발 연대에 정통성이 부족한 정부가 시위대의 접근을 두려워한 나머지 ‘완충지대’로 남겨 둔 것이란 얘기가 가장 그럴듯하게 들린다. 현재 그 공터에는 매일 시위대가 집결해 구호를 외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지만 여하튼 과천청사는 상업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설령 공무원들이 정부과천청사역 근처의 식당가로 가기로 마음먹더라도 15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상업지구 내에 위치한 다른 회사 직장인들(삼성SDS 코오롱 등)에게 모든 자리를 선점당하기 일쑤다. 재정부의 한 공무원은 “외부 식당을 이용할 경우 운이 나쁘면 사무실을 나와 식당에서 자리를 잡는 데까지만 40분이 걸리기도 한다”며 “음식을 후루룩 마시고 들어와도 점심시간 종료 시간(1시)을 맞추기 어려울 때가 많아 구내식당을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그게 아니라면 인근 청계산 관악산 자락에 있는 ‘OO가든’ 등의 교외형 음식점까지 차를 타고 가야 한다. 5명 이상 단체 손님이라면 식당에서 차량을 보내주기도 하지만 3~4명 단위는 어쩔 수 없이 자가용을 이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홀짝제에 묶여서 운행 가능한 차량이 없는 상황에서 구내식당마저 문을 닫는다면 낭패라는 얘기다.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산하 기획재정부 환경부 농림수산식품부 지부 및 국토해양부 노동조합, 지식경제부 노동조합, 노동부 직장협의회 등은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효과는 적고 직원 불편만 초래하는 전형적인 보여 주기식 행사를 즉각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노조 측은 “구내식당 운영 위탁 업체는 휴무에 따른 영업 손실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우월적 지위에 있는 행안부의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며 “차라리 공무원 차량 홀짝제를 풀어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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