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디자이너 김민경
‘미아 스틸레토(MIA’ stiletto)’는 국내 브랜드지만 해외 구매 대행 쇼핑몰이나 싱가포르 멀티숍에서도 만날 수 있는 브랜드다.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 브랜드는 김민경 씨가 디자인했다. 미아는 그녀의 영어 이름이고 스틸레토는 단순히 하이힐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넘칠 정도로 뾰족하게 솟은 하이힐을 이르는 말이다.“제가 워낙 옷을 제대로 잘 갖춰 입은 여성의 완벽한 차림새를 좋아해요. 정장에 맞는 구두는 아무래도 하이힐이기 때문에 거의 하이힐만을 디자인합니다. 보기에 예쁘고 신기에 편안한 신발을 추구합니다.”그녀는 원래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스쿨을 나와 명품 브랜드의 인턴 생활도 잠시 거쳤다. 자신만의 패션 세계를 펼치기 위해 좀 더 개방적인 영국 런던으로 가 ‘미아’라는 자체 브랜드 의상도 판매했다. 이때 디자인한 의상은 하이힐에 어울리는 청바지와 같은 캐주얼한 룩(Look)들이었다.“노팅힐 같은 곳에서는 새벽 6시부터 기다려 번호표를 받고 자리를 잡아 장사를 했어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자 집에서는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난리였어요. 그래도 조금이나마 벌어서 가져다드리니까 감동하시더라고요. 돌이켜 보면 어렸기 때문에 다짜고짜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그녀의 패션, 특히 구두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미아 스틸레토를 만들기 전에 개인적으로 수집한 구두만도 100여 켤레다. 지금은 세어보지 않아 모를 정도다. 학생이던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도 작은 집의 현관 앞 좁은 복도에는 구두가 담긴 상자들이 줄지어 쌓여 있었다. 당시 ‘홈 파티’에 초대된 친구들은 복도에서 하이힐들을 구경하느라 안으로 들어올 줄을 몰랐다고 한다.“수집을 하다 보니까 실제로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지고, 점점 하이힐에 대해 연구하게 되더라고요. 구두를 구경하느라 항상 거리에 줄지어 있는 상점 쇼윈도에 딱 붙어서 걸어 다녔어요.”2004년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브랜드 소속이 아닌 개인 활동을 하고 싶었다. 짧은 동안 국내 패션 잡지 에디터로도 일했는데, 패션 화보를 기획해 옷을 매치하는 감각이 남달라 금방 눈에 띄었다. 하지만 패션보다는 글쓰기 쪽에 무게가 실린 기자들이 넘치는 잡지계에 있기에는 그녀의 감각이 아까웠다. 결국 오랜 세월 아껴온 구두 분야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새로 알리기로 결정했다.“겁이 없었죠. 가죽을 파는 가게를 찾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가죽을 모았어요. 그 가죽을 들고 공장마다 들어가 제 마음에 들게 작업해 줄 수 있는지 물었죠. 돈을 두 배 이상 준다고 해도 나서는 공장이 없었어요. 비싼 가죽에 칼질 한 번 잘못했다가는 큰 손해가 나니까요.”무모하게 시작한 브랜드가 벌써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녀는 언제 신어도 촌스럽지 않은 아이템을 추구한다. 트렌드에 맞추기보다는 그 어느 옷과도 잘 어울리는 구두가 되기를 바란다. 합리적인 가격에 튼튼하면서도, 세월을 이기는 디자인까지 갖춘 구두의 고전을 만들고 싶다.“눈에 번쩍 띄어 한 시즌 사고 마는 게 아니라 한 번 사면 또 사게 되고, 일단 신으면 또 신고 싶은 구두가 됐으면 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디자이너가 만든 감각적인 구두는 안목 있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우리나라 시장에는 잘 맞지 않았다. 비싼 구두를 신는 사람들은 해외 명품만 찾았고 싼 구두 시장은 중국산이 점령했다. 고품질과 수려한 디자인, 그리고 합당한 가격을 가진 구두는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탈출구는 싱가포르에 있었다. 그녀는 중소 수출입 업체를 위한 온라인 B2B 거래 사이트인 ‘EC21’에 등록했다. 사실 큰 기대 없이 두어 개의 샘플 사진을 올려놓았는데 예상치 못한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다. 대부분 중국산 수준의 싼 가격을 요구하던 중에 미아 스틸레토의 가능성을 알아본 싱가포르의 멀티숍과 2년 전부터 인연을 맺게 됐다.“더운 지방이어서 좀 시원해 보이는 샌들만 찾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많은 싱가포르 여성들이 제대로 된 하이힐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발생하는 매출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싱가포르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자 한국 쪽 매장은 접었다. 입점해 있던 백화점 측에서 미아 스틸레토의 특징을 줄이고 유행에 따르는 디자인을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요즘은 굽이 없는 플랫 슈즈가 많이 팔리니 하이힐보다 플랫 슈즈를 확대해 달라는 식이었다. 이제 한국에서는 온라인으로만 미아 스틸레토를 구입할 수 있다.“잘 팔릴 때 무작정 본전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남들도 다 하는 콘셉트의 브랜드도 만들고 싶지 않아요. 수익이 나면 다시 물과 거름을 줘서 잠재적인 능력을 계속 키우고 싶습니다. 제가 원하는 방향을 위해서는 팔리는 디자인을 하는 것만큼이나 최소한의 고집도 필요할 것 같아요.”그녀는 대중매체도 잘 보지 않는다고 한다. 자꾸 눈에 익어 은연중에 유행을 좇을까 염려하는 까닭이다. 대신 옛날 잡지나 영화들 속의 패션을 본다. 또 가죽과 같은 소재를 보러 돌아다니는 동안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소재를 보자마자 그 소재로 만든 구두, 거기에 맞게 차려입은 한 여자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요즘은 협찬 받은 듯한 새 옷을 입고 과장된 아름다움을 뽐내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저는 마음가짐에서 우러나오는,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은 스타일을 갖췄으면 해요. 그래서 코코 샤넬 같은 디자이너를 좋아하죠. 가까운 미래에는 의류 쪽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에요.”그녀에게 영감을 주는 패션모델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의 결혼으로 유명해진 카를라 브루니와 슈퍼모델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클라우디아 시퍼 등이다. 최근 입양과 자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도 빼놓을 수 없다. 모두 강한 내면과 함께 자신에게 어울리는 완벽한 외형을 연출하는 여성들이다.불황에는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그에 어울리는 하이힐이 유행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가수 서인영이 신고 나오는 ‘가보시 힐’이 유행이다. 앞뒤 굽이 무척 높아 땅에서 한층 올라선 느낌을 주는 구두다. 이 불황이 얼른 걷히기를, 이와 함께 그녀가 불황이 걷혀도 고전으로 남는 하이힐을 디자인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약력: 1979년생. 1999년 ‘에스모드 서울’ 패션디자인 과정 수료. 2003년 이탈리아 밀라노 ‘마랑고니’ 패션디자인 과정 졸업. 2003년 런던 패션 브랜드 ‘MIA’ 론칭. 2004년 서울 ‘미아 스틸레토’ 론칭.김희연·객원기자 foolf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