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코리아' 이민바람 뜨겁다

. 수원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 김수영(34·가명) 씨는 요즘 본업인 진료보다 모교 한약학과 편입과 영어회화 공부에 빠져 있다. 한의사 해외 진출 설명회에 참석한 뒤로 미국에 이민을 가기로 마음먹고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제대로 된 한의원을 운영하기 위해선 한약사 자격이 필요하다고 판단, 편입까지 계획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는 한약사 자격증이 없으면 한약 사용을 규제하는 법안이 생겨나고 있어 아예 한약사 자격을 따기로 했다”면서 “동양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승부를 걸어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사 부장인 조상철(43) 씨는 얼마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전문 알선 업체에 이민 수속을 의뢰했다. 지난해 출장차 케이프타운에 다녀온 그는 그곳의 빼어난 자연환경과 영국식 교육 시스템, 경제 성장 가능성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특히 영국 대학으로의 진학이 비교적 쉽다는 점에 마음이 끌렸다. 이민을 가면 어떨까 고민하던 그는 지난 여름휴가 때 아내, 자녀들과 함께 케이프타운을 다시 찾았다. 교포들을 만나 생활을 물어보고 비즈니스 아이템도 알아보았다. 조 씨는 “게스트하우스, 한식당, 무역업 등 여러 업종을 놓고 검토 중”이라면서 “사교육 부담에서 해방되는 것만 해도 어디냐”며 씁쓸하게 웃었다.해외 이민에 관심을 두는 이가 많아지고 있다. 실제 짐을 싸서 떠나는 사람은 10년 전에 비해 64%나 증가했다. 1998년 1만3974명이었던 해외 이주자는 2007년 2만3008명으로 늘어났다. 외교통상부에 신고를 하지 않는 케이스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가 이민을 떠나는 것으로 추측된다.요즘 이민은 과거의 이민과 확연히 다르다. 이민지로 삼는 국가가 다양해지고 형태도 세분화되고 있다. 과거엔 먹고 살 거리를 찾아 눈물을 머금고 낯선 타국 땅을 밟았지만 지금은 떠나는 이마다 제각각 다른 이유를 갖고 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안락한 노년을 위해, 투자와 돈벌이를 위해, 기술로 대우받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 이 때문에 이민의 형태도 기술 이민, 투자 이민, 은퇴 이민 등으로 갈라지는 추세다.한국인이 살지 않는 나라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민 대상국이 다양해지고 늘어난 것도 최근 나타나는 특징이다. 현재 1000명 이상의 한국인이 시민권 또는 영주권을 갖고 살고 있는 수민국(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은 23개국에 달한다. 과거에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4대 국가가 전체 이민의 90% 이상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2007년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 등 ‘기타’ 지역으로 이민을 떠난 사람은 3421명이다. 1998년의 48명과 비교하면 71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과테말라(2303% 증가) 싱가포르(470% 증가) 남아프리카공화국(241% 증가) 등에 이민이 늘고 있다.연령대가 젊어지고 있다는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과거엔 40대 이상 장년층의 이민이 근간을 이뤘지만 요즘은 20대로까지 연령대가 내려갔다. 이민법률법인 MCC의 하지욱 대표는 “삶의 질을 중시하는 30대 젊은층의 이민 증가세가 뚜렷하다”면서 “선진국에서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한 이들이 특히 적극적”이라고 전했다.한의사 회계사 등 전문직의 이민 수요도 부쩍 늘었다. 특히 한의학이 서양에서 대체의학으로 각광받으면서 한의사의 이민이 많아졌다. 지난해 한의사협회가 주최한 ‘한의사 해외 진출 설명회’에는 유료임에도 불구하고 100여 명의 한의사가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한의사 김수영 씨는 “우량한 수익 구조를 가진 한의원은 전체의 30%를 밑돈다”면서 “치료 기법 개발, 마케팅 능력 습득 등으로 한의원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새 기회를 창출하는 이민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이민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관련 비즈니스도 확대되고 있다. 이민 수속을 알선 대행하는 전문 업체들의 경우 1996년 6개 업체에서 9월 현재 173개로 늘었다.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제도가 바뀐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요가 늘어 시장이 커진 것도 큰 이유다.이주 알선 업체를 이용할 경우 이민 수속 수수료를 감안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최근까지도 영주권 발급에 2000만~3000만 원의 수수료를 요구하는 업체가 있었다. 이에 비하면 캐나다 호주 등지는 ‘싼’ 편이다. 호주는 400만~600만 원, 캐나다는 300만 원 안팎에 형성돼 있다.이민 알선 업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에 볼 수 없었던 서비스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업체도 나오고 있다. MCC는 온라인으로 자신의 수속 과정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정착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예비 이민자를 위한 세미나를 여는 업체는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하지만 이민을 결심한 이들이 이주 알선 업체만 믿고 수속을 기다리는 것은 잘못된 자세라는 지적도 많다. 수속 지연, 계약 불이행 등 분쟁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 재외동포협력과 관계자는 “외교통상부에 등록한, 실적을 탄탄하게 갖춘 전문 업체를 선택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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