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인 우대받는 풍토 다시 만들어야’

유재섭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지난 7월 21일 임명된 유재섭 신임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노동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정부 산하단체장이 된 인물이다. 노동계 출신으로 국회의원이나 장관 자리에 오른 뒤 산하단체로 자리를 옮긴 경우는 있지만 노동계에서 바로 올라온 경우는 처음이다. 이사장에 취임하기 전인 올 3월까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을, 7월까지는 한국노총 중앙교육원 상임지도위원을 지냈다.지난 수십 년 동안 ‘투쟁’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조끼나 점퍼를 늘 입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던 그가 갑자기 양복에 넥타이를 하고 다니는 모습에 본인은 아직도 어색하다는 소감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사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어도 그의 모습은 아직은 펄떡이는 생선처럼 ‘날것’ 그대로라는 인상을 줬다. 9월 노동부가 지정한 ‘직업능력의 달’을 맞아 각종 행사를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유 이사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우선 노동운동을 할 때는 매일 조끼나 점퍼를 입었고 머리를 손질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양복에 넥타이를 하고 머리 손질도 좀 합니다. 토·일요일이 없어진 것도 변화입니다. 공단이 주관하는 자격증 시험이 주로 주말에 있는데, 전국 시험장을 돌며 직원들을 격려하는 한편 장소를 대여해 준 학교나 단체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앞으로의 협조를 부탁하고 있습니다.제가 30년 동안 테니스를 쳤는데, 지금은 못하고 있습니다. 또 그동안은 정부 기관을 출입할 때 복장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배짱을 부렸는데 지금은 만나는 실무자나 간부들에게 ‘도와 달라’며 깍듯이 인사를 합니다.공무원이 되다 보니 홀짝제에 걸린 날은 차를 두고 봉천동에서 버스·전철을 타고 출근하게 된 점도 바뀌었네요.”“여기 오기 전까지 한국노총 중앙교육원 상임지도위원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노사정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중앙노동위원회 심판위원,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을 겸직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노사재취업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진념 장관 시절 진 장관 등이 모인 자리에서 강의를 한 적도 있습니다. 노·사·정 중에 어디에도 적(敵)이 없었습니다.임명장을 받은 뒤 청와대에 갔더니 대통령께서 ‘개국 60년 이후 노동운동 출신을 정부 산하단체 이사장으로 임명한 것은 처음이다. 지켜볼 테니 열심히 하라’고 하더군요.”“1990년 1월 LG전자(당시 금성사) 노조위원장이 됐습니다. 당시 민주화 흐름과 함께 대기업 노조의 파업이 많을 때였습니다. LG전자는 1989년 124일 동안의 파업으로 6000억 원의 손실을 봤습니다. 당시 LG전자의 자본금이 4800억 원이니 이대로라면 회사가 망할 지경이었지만 다행히 LG그룹이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는 있었습니다.저도 좌편향적인 노동운동을 해 왔는데 막상 노조위원장 후보가 되고 보니 회사를 죽일지, 살릴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노조에 ‘일단 삼성전자를 제치고 내수 1위를 되찾자’ ‘동종 업계 최고의 대우를 받게 해주겠다’며 회사와의 협력을 제시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88%의 지지를 받고 노조위원장에 당선됐습니다.이후 LG전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파업을 하지 않았고, 노조위원장을 맡은 지 4년 만에 직원들의 기본급·상여금·복지제도는 업계 최고가 됐습니다. 1993년에는 수출유공자 동탑 산업훈장을 제가 받기도 했습니다. ‘투쟁과 쟁취’가 이상적인 노동운동이라면 ‘협력과 이익’은 현실적인 노동운동입니다. 저는 현실을 택했고 ‘어용’ 시비가 일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고 밀어붙였습니다. 기업하는 사람들도 절 좋아하지만 민주노총 사람들도 절 다 좋아합니다. 이런 점이 어필한 것 같습니다.”“노·정의 이해관계는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직원이 회사에 입사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사업장이 잘 돼야 합니다. 지금은 국내 기업끼리 경쟁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해외 기업과의 피나는 싸움을 벌일 때입니다. 우리끼리 싸우고 길거리 나앉는 것은 안 됩니다. 같이 살 것이냐, 같이 죽을 것이냐를 선택해야 합니다.내부에 큰 하자가 없다면 노·사는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봐야 합니다. ‘노사협력’ ‘상생’ 이것이 나의 화두였습니다.”“제 자랑 같지만 저만한 적임자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국회의원·장관·노동부 관료가 거쳐 간 자리지만 업무 자체는 굉장히 현장 위주의 사업들입니다. 공단은 중소기업 직원들의 평생 능력 개발, 568개나 되는 자격증과 40개의 전문 자격증을 관리합니다. 저는 1995년 금형기술자 1급 자격증을 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땄던 사람입니다. 또 한국노총 금속연맹에 있을 때 전국 524개 사업장의 교육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교육과 현장 실무’란 점에서 제가 제대로 된 직위를 찾아온 것 같습니다.그렇지만 능력이 있는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알겠지요. ‘관리’ 부문은 좀 약하지만 이는 조직이 함께 해나가는 것이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40일쯤 지났는데 벌써 업무와 관련해 간부들을 질책할 정도면 금방 적응한 것 아닌가요.”“평생 능력 개발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갈고닦아 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이 필요합니다. 저도 사실 고졸입니다만 숭실대 노동관계 대학원, 고려대 노동관계 대학원, 노동연구원 최고지도자과정 등을 통해 견문을 넓혔고 이사장 취임 후 디지털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근로자, 국민 모두 평생 직업 능력을 개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전체 국민의 수준을 올려야 합니다.또 500개가 넘는 자격증 시험의 질을 산업 현장에 맞는 맞춤식 자격증이 되도록 발전시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인정받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1970년대에는 기술 자격증이 우대를 받았지만 그 이후에 좀 소홀해진 면이 있습니다. 실업계 고교와 전문대가 활성화되도록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하고 자격 부문도 거기에 맞춰야 합니다.국제 인력도 활성화해야 합니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가 고용허가제에 따라 15개 국가에서 들어오고 있는데 대부분 3D 직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한국에 대한 이해와 기술 분야를 발전시켜 노동자의 질을 높일 겁니다. 국내에 들어온 근로자는 교육도 시키고 고용 지원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성남, 안산, 의정부의 교육센터 외에 마산, 김해에 추가로 만들고 추후 계속 확대할 계획입니다.국내 인력이 해외로 나가는 것도 적극 장려해야겠지요. 내년 ‘글로벌 청년 리더 10만 명 양성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해외취업센터장부터 최고 수준의 인력으로 공모할 계획입니다.”“앞서 언급했듯이 이제는 평생 교육의 시대입니다. 근로자, 사업자, 또 구직자, 실업자들도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를 알리기 위해 우리 공단이 한 달 간 세미나, 콘테스트, 공모전, 박람회 등을 개최합니다. 장인들의 작품 전시회를 통해 기술이 예술처럼 대접받는 기회를 만들려고 했고, 미래직업박람회를 통해 직업 트렌드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HRD 콘퍼런스는 인재 개발과 관련한 세계적 전문가들과 함께 국내 인력 관리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행사는 국민들이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기능인들이 우대받는 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것입니다.”1950년생. 73년 LG전자 입사. 90년 LG전자 노동조합 12~14대 위원장. 96년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위원장(3선). 98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 98년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 2002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상임부위원장. 2008년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현).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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