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서비스산업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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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는 마침내 ‘회교혁명’에 성공한다. 팔레비 왕조의 절대 권력을 무너뜨린 호메이니는 옛 페르시아 땅에서 이슬람 이상 국가를 실현하려고 했다. 정교(政敎)가 융합되고, 이슬람 신앙의 원리원칙이 생활에 적용되는 이상을 꿈꾼 것이다. 무릇 모든 혁명이 이상 사회를 내걸었듯이 이슬람 혁명도 그러했다.엄한 이슬람 율법에 입각한 도덕적 국가를 지상에서 건설하려는 시도는 여러 갈래로 나타났다. 그중 하나가 ‘금주(禁酒)’를 엄격하게 지키는 것. 회교 율법이 원래 술을 금하는데 이를 제대로 단속한 것이다. 금욕하면서 기도하는 ‘건전한 이슬람 국민’이 되게 하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회교혁명의 분위기 속에 대지도자 호메이니의 가르침이 있었을 터이니 누가 “아닙니다”라고 했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바로 나타났다. 금주를 그냥 ‘표어’로 두고 그렇게 노력하자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단속하자 마약 중독자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었다. 마약은 지방으로 갈수록 심했고 주부 중독자도 크게 늘었다.그때나 지금이나, 이곳이나 그곳이나 인생사 고달프고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술 한 잔도 없는 사회, 피로와 스트레스를 무엇으로 푼단 말인가. 모든 대중이 호메이니나 바로 곁에서 그를 따르는 이슬람 종교인들처럼 믿음이 신실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돈이 넉넉해 또 다른 재밋거리를 찾을 형편도 안 된다. 이슬람 혁명파들은 지상의 이슬람 공국을 꿈꿨지만 현실은, 대중의 수준은 달랐다. 오죽하면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면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고 했겠는가. 문화와 예술, 오락과 스포츠, 여가와 취미를 지향하는 게 바로 인간이다. 생활수준이 나아질수록, 경제력이 향상될수록, 더 배울수록 이 욕구는 커진다.3차 산업 분야가 그렇고,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해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라고 정부가 지적한 서비스산업이라는 것 역시 크게 봐서 이 분야다. 맛있는 것 먹고, 술도 마시고, 노래 부르고, 영화 보고, 게임 하고, 경기장 가서 고함지르며 내기하고, 때로는 연애하고, 가족과 친구끼리 멀리 놀러가며 베팅도 한다. 그 영역엔 끝이 없다. 이 순간에도 이렇듯 ‘놀고 즐기는’ 영역이 확장되고 새로운 분야가 생긴다. 이게 21세기 현대의 경제다. 한국의 경제도 고용과 투자, 소비를 자극하며 미래의 성장을 이끌 주력 부문은 단연 이쪽이다. 특히 이제 고용 확대는 서비스 오락 산업밖에 더 나올 데가 없다. 오락·게임 산업 육성에서 새만금 간척 지역 활용 방안에 이르기까지 모두 놀고 즐기는 분야와 연계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창의성이 생명인 분야다. 정부 규제가 우선적으로 없어져야 할 부문 또한 이쪽이다.그런데 최근 정부가 ‘사행 산업(명칭에서부터 가치 규정이 배어 있다)’이라며 이쪽에 강도 높은 직접 규제안을 논의한 바 있다. 정책 방향부터 틀렸다. 규제 측면에서도 시대 역행이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라는 정부 산하 위원회를 내세웠지만 매출총량제로 서비스 관련 산업의 연도별 상한선을 정하고 판매량을 직접 규제하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물론 경마나 경륜, 일부 복권 사업을 마구 육성하자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쪽에 중증 중독자가 나오면 치료하고 사전 예방책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일수록 세련되게, 노련하게 해야 한다. 순서도 필요하다. 정부가 하는 일인 만큼 원칙이 분명해야 하고 정책의 앞뒤도 맞아야 한다. 순서는 대도시 곳곳에 독버섯처럼 성장하는 불법 도박부터 먼저 단속하는 것이다. 문을 걸어 잠근 영업, 때로는 단속 당국과 결탁된 불법 도박장부터 막아야 한다. 소득 2만 달러 시대, 대체지를 찾아 해외로 나갈 잠재 수요도 감안해야 한다.국내총생산(GDP)의 0.58% 규모로 매출을 강제로 억제하겠다는 것도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에 가깝다. 0.58%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맞춘 것이라는데 그렇다면 사행 관련 산업이 GDP의 6.85%에 달하는 일본은 왜 뺐을까. 취지가 나쁘지 않게 출발했지만 규제로 변질된 전형적인 케이스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규제는 참으로 편리한 수단이다. 그러나 그 달콤한 방편 뒤에는 독이 있게 마련이다. 바로 자유경제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이다. 이것은 성장을 막는 억제제이기도 하다.허원순·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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