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환율…겉으로만 인상 쓴 정부

경제부처 24시

지난주 원·달러 환율이 무섭게 올랐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이후 한숨 돌리고 있던 기획재정부 국제금융 라인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 환율은 정부가 방심하는 사이 심리적 저항선으로 통하던 1050원선을 돌파한 뒤 지난주 1070원와 1080원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지금은 1090원 문턱에서 나온 정부의 대규모 개입으로 1080원선 중반에서(8월 27일 현재) 잠깐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하지만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수급 여건상 ‘달러 부족’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시장 개입이 단기적인 상승세를 누를 수는 있어도 상황을 반전시키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당분간 환율도 오를 것이라는 얘기다. 이제 기업과 외환 실수요자들의 관심은 이런 흐름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에 쏠려있다. 그리고 어느 가격대에서 변곡점을 이룰 것인지도 중요한 체크 포인트다.물론 여기에는 주요국 통화의 수급 여건 등 시장의 흐름이 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환율 상승이 기정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우리 외환당국이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와 어느 정도의 환율 안정 의지를 품고 있는지가 속도와 흐름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서만 77원가량 올랐다. 이 기간 원화 가치가 달러 대비 7.63% 하락했다. 8월 들어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렸는데도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지는 ‘이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론상으로는 국내 금리를 올릴 경우 국내외 금리 간의 높낮이 차로 인해 외화 자금이 국내로 유입돼 원화 가치가 절상(환율 하락)되는 게 보통이다.원화 가치는 최근 원자재 값 급락으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캐나다 달러를 제외하면 전 세계 주요국 통화 가운데 최고 수준의 하락률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일본 엔화는 1.91% 하락에 그쳤고 태국 바트화와 싱가포르 달러 등 다른 아시아 통화도 1~3% 정도만 떨어졌다.외환 당국자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정부는 유독 원화만 이렇게 큰 폭으로 하락한 근본적인 원인을 ‘지난해 과도한 쏠림 현상에 따른 후유증’에서 찾고 있다. 작년 말 원·달러 환율이 900원대 초반에서 움직이자 국내 기업들은 앞 다퉈 ‘환율이 더 내릴 것’에 베팅했다. 조선 업체 등 수출 업체들은 과도한 선물환 매도에 빠졌고 수입 업체들은 달러 매수를 최대한 늦추다 보니 당시의 펀더멘털에 비해 더욱 과도한 환율 하락세가 형성됐고, 그 여파로 지금은 환율이 더욱 거세게 튀어 오르는 것이란 얘기다.그렇다면 정부의 환율 안정 의지는 어느 정도일까.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최근의 환율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고 시장 상황을 계속 예의 주시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정부 고위 관계자도 “정부는 그 무엇보다 물가 안정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말해 외환시장 개입을 강력하게 시사했다.하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이 같은 단호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속도 조절’에는 나서겠지만 환율 흐름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가 원·달러 환율이 1040원선을 넘어서는 데도 이렇다 할 매도 개입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은 것도 이 같은 ‘가설’을 확신으로 바꾸는 근거가 됐다. 외환 당국이 환율을 지킬 의사가 없는 것으로 해석되는 가운데 외국인들이 여전히 한국 시장에서 주식을 팔고 나가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난주의 고삐 풀린 상승 랠리’를 만들어 냈다는 분석이다.최근 환율 급등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한마디로 ‘상황 변화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원·달러 환율 상승의 기저에는 글로벌 달러 강세가 깔려 있다는 인식인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의 급등세가 한없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정부 관계자는 “국제 유가가 조금 떨어진 것이 미국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인식되면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미국 못지않게 한국을 포함한 수출국 경기로까지 확산될 것이란 전망으로 나타나면 원화도 계속 약세로 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은 급등락만 미세 조정하면서 ‘펀더멘털’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얘기로 들린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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