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 구조 ‘대혁신’…해외서도 ‘짝짝’

뉴 SK 10년

“향후 3년간의 임기가 보장되는 최태원 회장의 재선임으로 인해 전략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의 하나인 SK(주)의 가치는 엄청나게 저평가되고, 불신임을 받는 지도력 아래 기업이 고사돼 가는 결과를 초래하는 한편 SK(주)는 투자자들의 불신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지난 2005년 최태원 SK 회장의 이사 재신임을 두고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까지 벌인 소버린의 저주다. 비록 표 대결에선 큰 차이로 패배했지만 최 회장에게 표를 던진 투자자들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란 내용이다. 하지만 3년 후인 2008년 SK는 소버린의 저주가 웃음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005년 이후 SK는 눈부시게 발전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소버린이 신뢰를 잃은 리더라고 폄훼한 최 회장이 취임한 1998년부터 현재까지 SK가 달성한 성취는 몇 개의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34조 원가량이던 자산은 72조 원으로 갑절 이상 증가했고 매출은 37조 원에서 78조 원으로, 당기순이익은 9000억 원에서 4조5000억 원으로 5배나 불어났다. 재계 순위는 5위에서 3위로 2단계 상승했다.대승을 거두며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성공했지만 취임 후 최 회장과 SK가 견뎌야 한 고초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1998년 창업자인 고 최종현 회장이 타계하며 총수에 오른 최 회장은 처음부터 재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손길승 전 SK 회장과 투 톱 체제를 시도하며 ‘젊은 피’의 신선함을 과시했다. 오너와 전문 경영인의 공동 경영은 당시나 지금이나 매우 희귀한 사례였던 것이다.하지만 2003년 최 회장과 그룹은 일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참여연대가 2002년 최 회장이 자신의 워커힐호텔 지분과 SK C&C 소유의 SK(주)의 지분을 맞교환하는 과정에서 워커힐호텔의 주가를 과대평가해 부당한 이익을 취했다며 최 회장을 고발한 것이다. 더군다나 검찰의 조사 과정에서 1조5000억 원대의 분식회계 혐의가 발견돼 기소됐다. 여기에 소버린이 분식회계를 저지른 총수를 신임할 수 없다며 경영권을 위협하는 초유의 사태가 더해져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결국 최 회장은 경영권을 지키는 데에 성공했지만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선고를 받았다. 지난 광복절 특사로 최 회장은 사면복권된 상태다.사면된 것은 불과 한 달도 안 됐지만 최 회장의 행보는 2004년 무렵 이미 본격화됐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열린 최고경영자(CEO) 세미나를 통해 ‘사업 구조, 재무 구조, 지배 구조 개선’을 통해 사회의 신뢰를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을 밝히며 ‘뉴 SK 건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부문은 지배 구조 개선이다. SK는 오너 중심의 경영이 아닌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도입해 투명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사외 이사의 활동이다.먼저 사내 이사보다 사외 이사의 수가 더 많다. SK텔레콤은 사내 이사와 사외 이사를 동수로 규정한 정관을 개정해 11명의 이사 중 사외 이사를 7명으로 늘린 것이 대표적이다. SK네트웍스(57%), SK케미칼, SK C&C 등도 사외 이사의 비율이 절반이 넘는다.더욱 중요한 것은 활동의 질이다. 많은 기업들의 사외 이사 제도가 형식적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SK는 그렇지 않다. 2005년 SK에너지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 계획이 과하다고 지적해 매입 규모가 줄었고 2007년엔 SK텔레콤의 에이디칩스 인수 계획을 부결시켰을 정도로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이사회 참석률도 100%에 육박해 70% 내외인 국내 기업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다.지난해에는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해 경영의 투명성을 한층 높였다. 기존의 SK(주)를 지주회사인 SK(주)와 사업 회사인 SK에너지로 분리하며 본격적인 지주회사 시스템을 갖춰나가고 있다. 하지만 순환 출자 구조에서 탈피해 완벽한 지주회사 체제를 완성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지주회사의 정점엔 비상장사인 SK C&C가 있는데 SK텔레콤과 SK네트웍스가 SK C&C의 지분을 상당 부분 보유해 순환 출자 구조를 온전히 끊으려면 이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SK는 조만간 상장을 통해 SK C&C의 지분을 공개 매각할 방침이다. 최 회장이 “지속적인 안정과 성장을 통해 SK의 가치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지주회사로의 전환”이라고 강조하는 만큼 SK C&C의 상장은 시기의 문제일 뿐 머지않은 장래에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사업 구조도 크게 변화했다. 대표적인 내수 기업이라는 평가를 듣던 과거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시장보다는 해외시장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최 회장의 전략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1997년 30%가량이던 3개 주력 제조 계열사(SK에너지, SK케미칼, SKC)의 전체 매출 대비 수출 비중은 지난해 56%까지 불어났다. 같은 기간 그룹의 수출액은 8조3000억 원에서 26조 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는 30조 원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재무 구조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매출과 자산, 이익이 큰 폭으로 성장했고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양화됐다. 지난 10년간 그룹의 매출과 자산은 갑절 이상 늘어났고 당기순이익은 5배나 증가했다. 사업 다각화에도 성공하고 있다. SK에너지의 경우 기존의 주력 사업인 석유 사업의 비중이 주는 대신 석유 개발 사업 비중은 커지고 있다. SK네트웍스는 무역과 에너지 판매 위주에서 네트워크, 정보통신, 유통, 패션, 수입차 판매 등 5개 부문으로 수익 구조를 재편했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2004년 2.5%에서 지난해 7.5%로 3배나 향상돼 높은 수익성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그룹의 계열사들이 불과 몇 년 만에 몇 배나 커지고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지배 구조와 사업 구조 개선의 효과가 컸기 때문이지만 계열사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최 회장의 독특한 경영 전략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2005년 CEO 세미나를 통해 발표한 ‘따로 또 같이’ 경영이 그것이다. 각 계열사는 독립 경영(따로)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룹 차원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문에선 적극 협력(같이)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따로 또 같이’ 경영이 가장 효과를 보는 곳은 연구·개발(R&D) 부문이다. 기존의 그룹 R&D위원회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 또 ‘글로벌 위원회’과 ‘마케팅 위원회’를 두고 해외 진출과 마케팅 지원에도 계열사들의 공조를 도모하고 있다.각국의 주요 기관과 언론들은 SK의 실험과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지난 5월 유엔 세계기업 협약기구(UNGC: UN Global Compact)는 상반기 이사회를 통해 최 회장을 신임 이사로 선임했다. 게오르그 켈 UNGC 사무총장은 당시 “SK그룹은 UNGC가 제안한 인권 환경 노동 등 10대 원칙을 가장 잘 지켜 온 기업 중 하나”라며 “특히, 최 회장은 기업 내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독립 경영 체제를 확립하고 사회 책임 경영에 힘써 온 점을 높이 산다”고 최 회장의 신임 이사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신헌철 SK에너지 사장과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CNN, 블룸버그 등에 잇달아 출연해 SK의 변화상을 자세히 설명할 정도로 언론의 관심도 높다. 또 최근 중국의 최대 경제 일간지인 ‘띠이차이징르바오(第一財經日報)’도 SK의 이사회 중심의 경영 시스템은 지배 구조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고 평가했다. 소버린 사태 당시 최 회장에 반대표를 던진 미국의 투자 자문사 ‘ISS거버넌스 서비스’는 지난해 주주총회에 앞서 “최 회장의 성과가 좋다”며 최 회장의 이사 재신임을 지지해 눈길을 끌었다.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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