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서방 기업’은 이제 그만…세계로 ‘Go’

올림픽에 올라탄 글로벌 컴퍼니 드림

‘왕서방의 기업’에서 ‘글로벌 컴퍼니’로 전환하라. 베이징 올림픽 열기가 뜨거운 곳은 냐오챠오(올림픽 주경기장)만이 아니다. 중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로 나가려는 중국 기업들이 힘찬 몸짓이 눈에 띈다. 올림픽 경기장이 몰린 올림픽공원에 조성한 후원사 홍보관 거리에 있는 차이나모바일 홍보관. 중국형 3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시분할연동부호분할다중접속(TD-SCDMA) 방식의 우수성을 알리는 전시물로 꽉 차 있다.올림픽 네트워크 담당 정사오밍은 “녹색 기술이 또 다른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TD-SCDMA는 이동통신 분야에서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것이란 의미”라고 말했다.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 기업 입장에서는 세계 시장 진출의 열쇠를 쥔 것과 같다.”(국가발전개혁위원회 국제경제연구실 장옌성 주임)중국 기업의 글로벌화는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국가 프로젝트다. 중국 국유자산관리위원회는 3년 안에 150개 국유 기업 중 30개를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산업별로 구조조정을 하며 경쟁력 키우기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최대 이벤트는 바로 베이징 올림픽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에서 브랜드의 국제화에 시동을 건다는 것. 중국 스포츠 용품 업체인 리닝을 위한 개막식이라는 평이 내렸을 만큼 비후원사들까지 올림픽을 국제화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중국 체조의 전설인 리닝은 자기 이름을 딴 리닝을 세워 홍콩 증시에까지 상장한 성공한 기업인으로 8월 8일 올림픽 개막식에서 마지막 성화 주자로 등장하면서 일약 세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와 함께 회사 리닝의 인지도도 확 올라갔다. 리닝의 작년 매출은 6억3000만 달러다. 전체 매출의 99%를 중국 시장에서 달성, 아직까지는 국내용 회사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리닝은 이번 올림픽에서 미국 탁구단,수단 육상 선수,스웨덴 올림픽 사절단 등을 후원한다. 리닝의 장지룽 대표는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중국의 아디다스가 되겠다”는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베이징의 명동 격인 왕푸징 거리에 있는 올림픽 후원 업체 아디다스 매장에서 10m 떨어진 리닝 매장. ‘애니싱 이즈 파서블(Anything is possible)’ ‘이체제유커넝(一切皆有可能)’이라는 문구와 함께 빨간색의 리닝 로고가 붙어 있다. 메이유부커넝(沒有不可能, impossible is nothing)’을 내세운 아디다스의 대항마다. 리닝은 올림픽 후원사가 아니기 때문에 올림픽 로고를 붙이지 못하한다. 대신 오성홍기를 연상케 하는 붉은색 작은 깃발을 꽂은 홍색 모자와 붉은색 운동복으로 올림픽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심지어 과거 올림픽 때 중국 대표 선수에게 제공된 리닝 브랜드의 옷이 올림픽 로고와 함께 진열돼 있기도 했다. 창업자 리닝을 연상시키기 위해 체조를 하는 마네킹에 붉은 색 옷을 입히기도 했다. 앰부시마케팅(매복하듯이 규제를 피해가는 마케팅)을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의 공언은 현장의 열기에 묻힌 듯했다.중국의 대표적 전통 브랜드로, 오리 전문 체인점인 취안쥐더(全聚德)는 중국판 맥도날드를 꿈꾸고 있다. 현재 각 점포별로 약간씩 다른 조리법을 표준화해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인에게 다가간다는 계획이다. 작년 선전 증시 상장에 이어 해외 증시 상장도 노리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 제약 업체인 퉁런탕(同仁堂)은 허치슨그룹과 설립한 약품 개발 회사를 이용, 중국 전통 약품의 세계화를 선도한다는 방침이다.중국 정부도 기업들의 세계화 전략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톈안먼 광장 남쪽에 있는 첸먼다제. 570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 상업 거리로 1년 3개월간의 재단장 공사를 끝내고 올림픽 개막 하루 전 개방됐다. 베이징의 상업 허브로 키우겠다는 이곳에 취안쥐더 퉁런탕을 입주시킨 것은 올림픽을 통해 전통 브랜드를 국제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물론 올림픽을 통해 세계 브랜드로 거듭나겠다는 중국 기업은 대부분 올림픽 후원사로 등록했다. 레노버 하이얼 칭다오맥주 차이나모바일 창청포도주 등이 대표적이다.칭다오는 비치발리볼 경기가 열리는 차오양공원에 거대한 맥주광장을 설치했다. 칭다오의 맥주광장 옆에는 위치한 2층 건물은 하이얼의 체험관. 이곳은 하이얼이 이류 기업이 아닌 최첨단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하이얼 국제화 본부다. 무세제 세탁기, 태양열 이용 시스템 등 가정에서 쓸 수 있는 모든 전자전기 제품을 갖춰 놓고 최첨단 기술을 직접 체험해 보도록 했다. 장티에옌 하이얼 대변인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세계적인 그린 기업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중국의 전통차인 푸얼차를 세계화하는 작업도 이미 개시됐다. 중국 최대 차(茶) 업체인 룽룬그룹은 고급 푸얼차 5000세트를 베이징 올림픽 기념 음료로 판매 중이다. 올림픽 음료 부문 후원사인 코카콜라와 손을 잡았다. 푸얼차를 코카콜라와 같은 세계인의 음료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김치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에, 스시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데뷔한 것처럼 베이징 올림픽 때 ‘푸얼차’를 세계화하는 계기로 만들겠다는 것이다.중국 최대 가죽 신발 회사인 아오캉은 올림픽 피혁 제품 공급 업체 자격을 따냈다. 지난해 인도 미국 홍콩 등에 지사도 설립했다. 올림픽을 활용한 세계화 전략의 일환이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발레바데와 제휴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우시의 양말 업체 몽나 역시 올림픽을 통한 세계화라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양말 공급 업체로 등록했다. 미국 양말 시장의 3분의 1을 점유하고 있는 이 회사는 몽나 브랜드를 전 세계에 전파한다는 계획이다. 올림픽을 계기로 독일어 영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한국어권까지 커버하는 해외 영업팀도 구성했다.중국 기업들이 올림픽을 통한 세계화에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레노버 신화가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중국의 컴퓨터 업체 레노버는 올림픽 후원사가 됐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도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레노버는 올림픽 후원사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그해 IBM의 PC 부문을 인수, 세계 3위의 PC 업체로 도약했다. 이번 올림픽 성화를 제작하기도 한 레노버는 성화의 문양을 본뜬 성화 노트북을 전 세계에 공급하기 시작했다.중국 창청증권 관계자는 “중국 기업이 글로벌화하는 데 최대 걸림돌인 낮은 브랜드 인지도를 올림픽을 통해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해외 영업을 확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인수·합병(M&A)을 좀 더 원활하게 만들어 중국 기업의 글로벌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중국 기업들이 올림픽을 주목하는 이유는 아시아의 대표 기업들이 올림픽을 통해 세계무대에 본격 데뷔했다는 점 때문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은 소니 도요타 마쓰시타 등을 글로벌 컴퍼니로 도약시켰다. 서울 올림픽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한국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코카콜라 GE와 같은 글로벌 중국 기업을 탄생시킬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올 초 런던 증시에 상장한 중국 회사를 현재 74개에서 올림픽 이후 두 배로 늘리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올림픽 이후 글로벌 기업 군단에 차이나 바람이 거세질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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