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주 vs 동국제강 ‘최후 승부’ 임박

쌍용건설 M&A 어떻게 되나

쌍용건설 인수전의 마지막 경쟁 구도가 드러났다. 채권단의 매각 지분(50.07%) 중 24.72%에 대해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는 우리사주조합이 투자자로 끌어들인 ‘H&Q-국민연금 제1호 사모펀드’와 채권단이 진행한 공개 입찰을 통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동국제강-군인공제회 컨소시엄’이 서로 맞서고 있다.일단 아직은 동국제강보다 우리사주조합이 유리한 상황이다. 김영진M&A연구소 김영진 소장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우리사주조합”이라고 잘라 말한다. 우리사주조합이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권리 행사를 막을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사주조합이 24.72%를 모두 가져가면 기존 보유 지분(18.21%)을 더한 전체 지분율이 42.93%로 뛰어 쌍용건설의 최대 주주가 된다. 바로 종업원지주회사 형태다.하지만 이렇게 되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전체 보유 지분을 한 번에 깔끔하게 털어버리려던 채권단의 ‘매각 차익 극대화 전략’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리사주조합이 가져가고 남는 잔여 지분 처리도 골칫거리로 남는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기대할 수 없어 매각 가격이 낮아지고 적당한 인수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 동국제강도 경영권을 확보할 수 없다면 굳이 잔여 지분을 인수할 이유가 없다.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유일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사주조합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해 24.72%의 지분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돈을 손에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쌍용건설 매각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들은 모두 여기에서 시작된다. 현재 우리사주조합은 동국제강 컨소시엄이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주당 3만1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24.72%를 모두 사온다면 2281억 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코 만만치 않은 액수다.2003년 3월 쌍용건설 직원들은 퇴출 직전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마련한 320억 원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주가는 2000원대였는데 매입가격은 액면가인 5000원이었다. 채권단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졸업하는 등 채권단이 판단해 경영이 정상화되면 임직원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했다.쌍용건설은 2004년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했다. 하지만 채권단의 약속은 좀처럼 이행되지 않았다. 우리사주조합과 채권단은 우선매수청구권의 행사 가격과 행사 방법에 대해 처음부터 의견이 엇갈렸다. 매각 차익 극대화에 우선순위를 둔 채권단은 보유 지분 50.07%를 하나로 묶어 공개 입찰을 실시한 다음 최종 인수 가격이 정해지면 그 가격에 맞춰 사든지 말든지 선택하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우리사주조합은 애초 우선매수청구권은 임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기 위한 것이었지 주식을 비싸게 사가라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반발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채권단은 지난해 중반부터 공개 입찰을 통한 지분 매각 일정을 강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우리사주조합도 마냥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외부 투자자 유치에 나서 ‘H&Q-국민연금 제1호 사모펀드’와 손을 잡았다.이 펀드는 H&Q 코리아가 국민연금의 자금을 받아 설립한 사모 펀드(PEF)다. 전체 3000억 원 규모로 이 중 절반인 1500억 원을 국민연금에서 투자했다. 흥미로운 것은 ‘H&Q’와 ‘쌍용’이라는 이름이 함께 등장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H&Q는 지난 1998년 쌍용그룹으로부터 인수한 쌍용증권(현 굿모닝신한증권)을 4년 뒤 신한금융지주에 팔아 2000억 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이 때문에 한때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이 H&Q를 투자자로 끌어 온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둘째아들인 김 회장은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보유 지분을 모두 내놓고 현장에서 백의종군하며 쌍용건설 회생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김성한 쌍용건설 노조위원장은 “해외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 수주는 김 회장의 개인적인 역량과 네트워크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김 회장의 회사에 대한 기여나 애정은 노조도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김 회장은 기업 오너에서 전문 경영인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김 회장의 향후 역할도 쌍용건설의 매각 향방과 맞물려 있다.임유철 H&Q 부사장은 “앞으로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태생적으로 우리사주조합이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감추지 않는다. 7월 말 4000억 원 규모의 ‘H&Q-국민연금 제2호 사모펀드’도 출범해 자금 동원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H&Q 측은 전략 노출 우려로 구체적인 투자 방법과 투자 규모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밝히지 않고 있다. 인수·합병(M&A) 업계 전문가는 “여러 가지 구조가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상당한 지분을 취득한 주주가 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H&Q의 역할을 ‘임시 대주주’로 표현한다. 자금 부족으로 당장 종업원지주회사로 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H&Q가 중간 단계로 임시 대주주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H&Q-국민연금 사모 펀드는 5~7년 장기 투자하고 투자 회수 때도 적대적 M&A가 불가능한 구도를 만들어 주고 나가기로 했다”고 전한다.하지만 동국제강이 바보가 아닌 이상 우선매수청구권이라는 걸림돌을 알면서도 인수전에 뛰어들었을 리는 없다. 동국제강은 우선 대화와 설득을 강조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쌍용건설 직원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을 맞고 있다”며 “선택은 쌍용 직원들의 몫이지만 우리의 진정성을 알리고 동국제강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걸 설득하면 승산이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한다.동국제강은 자사의 글로벌 프로젝트와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한 군인공제회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능력을 지렛대로 쌍용건설을 한 단계 도약시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 놓고 있다. 하지만 동국제강이 ‘최후의 선택’을 느긋하게 기다리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국제강은 이미 입찰 보증금으로 200억 원을 내놓은 상태다. M&A 전문가들은 동국제강이 써낸 주당 3만1000원이라는 가격을 음미해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안에 모든 전략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동국제강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수 가격을 높게 제시해 우리사주조합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높은 가격을 쓸 수 도 없다. 그런 점에서 3만1000원은 절묘한 선택이라는 평가다. 입찰 경쟁을 벌였던 남양건설이 2만 원대 초반을 제시했던 걸 고려하면 2만5000원대 정도면 인수 안정권이다. 그런데 동국제강은 이보다 훨씬 높은 3만1000원을 써냈다. 우선매수청구권 행사 부담을 높여 H&Q 측을 압박하기 위한 전략이다. 매수 가격이 올라가면 펀드의 투자 수익률은 자연히 떨어진다. 한 M&A 전문가는 “현재 건설 시장의 펀더멘털이 깨져 있고 글로벌 금융 불안으로 M&A 자금 시장도 위축돼 있는 상황”이라며 “그 정도면 H&Q가 따라올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이제 공은 H&Q로 넘어갔다. 가장 큰 관심은 우선매수청구권을 실제로 몇 %나 행사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24.72%를 모두 행사한다면 그대로 게임은 끝난다. 반면 일부만 행사한다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현재 15% 행사 가능성까지 흘러나온다. 그 정도 지분만 확보해도 우리사주조합이 최대 주주로 올라서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이 경우 더 큰 분쟁 가능성도 있다. 우리사주조합이 15%만 가져가면 기존 지분과 우호 지분을 포함해도 총 지분율은 41.05%에 머무르게 된다. 반면 동국제강은 채권단 매각 지분 중 남은 지분을 인수하면 지분율이 35.06%가 된다. 지분율 차이가 불과 5.99%밖에 나지 않는다. 이 정도면 동국제강도 공개 매수라는 승부수를 던져볼 수 있다.장승규 skja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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